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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05. 2020

<도굴> 리뷰

삽질마저 입으로


<도굴>

★★


 '100억을 들여 만든 CJ 엔터테인먼트의 범죄 오락물'이라는 수식만으로 특별해진 요즘 극장가의 단비, <도굴>입니다. <도가니>, <수상한 그녀> 등의 조감독을 거친 박정배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죠. 이제훈, 조우진, 신혜선, 임원희, 송영창, 이준혁, 박세완, 허성태 등이 이름을 올렸고, 손익분기점 250만 명을 목표로 본의 아닌 장거리 레이스를 시작했습니다.



 떴다 하면 업계가 주목하는 유물들과 함께 이름을 날리게 된 천재 도굴꾼 강동구. 어느 날 그의 재능을 알아본 고미술계 엘리트 윤실장은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거래를 제안합니다. 그렇게 자칭 한국의 인디아나 존스로 불리는 고분벽화 도굴 전문가 존스 박사와 전설의 삽질 달인 삽다리를 비롯한 드림팀이 꾸려지고, 무려 서울 한복판을 노린 희대의 작전이 시작되죠.


 최소한 초반부는 여느 도둑질 영화, 작전 영화의 공식을 따라갑니다. 얼굴 마담 경 영화의 주인공 겸 중요한 순간에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갈 인물을 중심으로 무언가 위기 한 번씩은 넘길 특기를 가진 인물들이 모여들고, 맛보기용 이벤트 한두 개를 보여준 뒤 권모술수가 본격적으로 난무하는 본 게임으로 들어가죠. 영화의 재미는 멤버들의 소위 말하는 케미와 트릭의 영리함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도굴>은 동종 영화치고는 주인공 팀의 구성 인원이 다소 적은 편입니다. 달리 말해 챙길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챙기지 못합니다. 동구네 가족, 존스 박사, 삽다리 등 대부분의 팀원들은 서로와 초면입니다. 함께하게 되는 동기도 아주 너그럽게 봐 주었을 때 코미디로 간신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1차원적이고 뿌리도 없지만 왜인지 끈끈하기 그지없는 동료애를 이해하고 출발해야 합니다.


 이들의 개성이자 정체성이 되는 특기 역시 살리는 맛이 없습니다. 고분 벽화 전문가라 무슨 돌에 무슨 약품을 써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 삽질 전문가라 땅굴을 잘 파는 사람은 하나의 캐릭터를 정의하기엔 너무나 빈약한 설정이죠. 이 둘의 빈 존재감은 주인공 동구에게 돌아가는데, 이를 독식하고 지나치게 커진 동구의 그림자는 팀을 꾸리는 작전 영화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동구의 캐릭터가 매끈한 것도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건들건들거리고 능글능글대며 입만 열면 광고 카피로도 안 쓸 재담들을 늘어놓고, 엮인 과거사나 제 딴에는 머리 썼다며 뒤에서 벌이는 일들 역시 이토록 진부하고 예상 가능할 수가 없죠. 캐릭터 쪽으로는 최초이자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인 사람마저 건질거리가 없습니다.



 트릭의 영리함 쪽은 더욱 서글픕니다. 아주 자잘한 톱니바퀴와 퍼즐 조각이 기가 막히게 맞아들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비상함은 찾아볼 수 없죠. 그저 겉만 번지르르한 금고나 무덤을 누구나 생각할 만한 허무한 방법으로 뚫어내며 이들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우깁니다. 지문씩이나 되는 대단한 것이 필요한데 그 어려운 것을 이렇게 탁월하게 해냈다며 자찬하죠.


 2016년 영화 <마스터> 때와 비슷합니다. 액수나 덩치만 잔뜩 불려서 난이도를 얼핏 높아 보이게 만들지만, 그렇게 대단한 일치고는 놀라우리만치 허술한 행보로 일관하죠. 떡밥이나 복선을 뿌리는 방식마저도 처음부터 끝까지 개연성만 해칩니다. 집에서 TV를 볼 때도, 마당에서 고기를 구울 때도 웬 드론을 자꾸 날리나 싶더니 아니나다를까 후반부에 결정적인 억지를 부리는 식이죠.



 훔치고 속이는 쪽이 대단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져가게 내버려 두고 속는 쪽이 멍청해 보입니다. 가진 재료가 많지 않았음에도 조밀하지 못했고, 바라본 곳이 그렇게 거대하지 않았음에도 대담하지 못했습니다. 등장하는 누구도 자신에게 어울리거나 맞는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걸린 면면과 이름값, 충분한 독식이 가능한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놓친 것이 지나치게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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