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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15. 2020

<내가 죽던 날> 리뷰

외딴 눈물


<내가 죽던 날>

★★★


첫 작품 <밀정> 이후 4년만에 한국영화 사업을 접는다고 발표한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의 <내가 죽던 날>입니다. 다행히 이 영화와 더불어 이미 제작에 들어갔던 <조제>, <킬링 로맨스>까지는 개봉을 하겠다고 하죠. 박지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김선영, 이상엽, 문정희, 조한철, 김태훈 등이 이름을 올린 11월의 몇 안되는 기대작이구요.



 태풍이 몰아치던 밤, 외딴 섬 절벽 끝에서 유서 한 장만을 남긴 채 사라진 소녀 세진. 오랜 공백 이후 복직을 앞둔 형사 현수는 이 사건을 실종으로 종결지으려 그 곳으로 향합니다. 조금씩 세진의 행적을 추적해 나가던 현수는 수사가 진행될수록 어딘지 모르게 자신과 닮아 있는 그녀에게 점점 더 몰두하게 되고, 어느새 이면에 감춰진 진실 앞에 한 걸음씩 다가섭니다.


 수사물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사건의 해결이 핵심이라 권선징악 내지는 정의구현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들이 있죠. 주인공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크게 기여하며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고, 영화의 재미는 사건의 기승전결은 물론 주인공이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에도 달려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사건이 조금 단순해도 주인공의 매력으로 벌충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러나 나머지 한 유형은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사건 그 자체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단순히 이 사건에 접근할 수 있는, 혹은 관심을 갖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경우가 많죠. 주인공이 누구도 알 수 없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곳에 자신만의 이유로 걸음을 들여놓으며 영화가 진행됩니다. 이 때의 재미는 인물보다는 사건의 촘촘한 얼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되죠.


 <내가 죽던 날>은 단연 후자입니다. 모두가 대충 넘어가고 싶어하는 사건에 본의 아니게 눈을 두게 된 현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이를 파헤쳐야 할 이유를 발견하는 과정이죠. 다만 이 때의 동력은 진상을 세상에 드러내려는 정의감이 아닌, 자신이 이제껏 갖고 왔던 아픔을 누군가는 갖지 않았으면 하는 일종의 연민이자 동질감에서 시작됩니다. 인물의 감정선과 사건의 진행은 한 편의 책처럼 흘러가구요.



 마치 하나의 커다란 3D 퍼즐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큰 사건을 쪼개서 조각을 맞춰 가는 것도 맞지만, 현수라는 외부의 조각마저도 여기에 함께 끼워맞추며 평면이 아닌 입체적인 조각을 만들어나가죠. 각 인물들의 조건과 상황은 이 날 이 순간 서로와 만나길 기다린 것처럼 절묘히 맞아떨어집니다. 맞춰지는 순간의 쾌감과 구성의 현실성을 맞바꾸었다고 할 수 있겠죠.


 영화는 초중반부를 넘어 꽤 오랜 순간까지도 단서를 최소한으로만 유지합니다. 그러나 큰 그림이 대강 보이는 순간부터는 기다렸다는 듯 가지고 있던 감정과 재료들을 한꺼번에 분출하죠. 때문에 인물들의 감정 변화나 관계의 발전이 급작스럽다고 느낄 여지도 만연합니다. 이 그림에 들어가지 않는 이야기들에 굳이 장면과 시간을 할애한 이유도 확실히 증명하지 못하구요.


 흑과 백을 구분하듯 아주 또렷하게 그어 둔 선과 악의 경계 역시 언급한 비현실성과 맞물립니다. 착한 사람이 착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나쁜 사람의 나쁜 짓을 이용합니다. 경외가 아닌 연민에서 출발하는 호의는 주관적이고 수동적입니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특수합니다. 특수함과 특수함이 끊임없이 맞물려 그들만의 이야기라는 도장이 찍히는 순간 어떤 눈물도 공감을 살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하죠.



영상보다는 텍스트가 더 잘 어울릴 기승전결입니다. 근래의 작품들 중에서는 비록 장르는 전혀 다르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생각이 더러 났네요. 후시 녹음한 맥주 광고를 방불케 했던 마지막 장면은 짧은 시선 교환으로 대체해야 했고, 이 과감함을 영화 전체에 둘렀다면 좀 더 기획 의도에 맞는 태가 갖춰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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