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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28. 2020

<콜> 리뷰

수신자 아주 부담


<콜>

★★


 야심찬 개봉을 준비하다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고,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창고행을 선택하느니 넷플릭스를 향하는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냥의 시간>을 시작으로 <승리호>, <차인표>, 이충현 감독의 이번 신작 <콜>도 마찬가지죠. 박신혜, 전종서, 김성령, 이엘, 이동휘, 오정세, 박호산이 뭉친 90억짜리 야심작입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서연. 집에 있던 낡은 전화기를 집어든 그녀는 영숙이라는 이름의 낯선 여자와 통화를 하게 됩니다. 놀랍게도 영숙은 20년 전의 같은 집에 살던 사람이었고, 마침 또래였던 둘은 우정을 쌓아가게 되죠. 그러던 어느 날 둘은 각자의 현재에서 서로의 인생을 바꿀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고,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폭주로 이어지며 서연을 위협하기 시작하죠.


 전화기는 물론 우체통, 무전기 등 시간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매개로 삼아 전개됩니다. 오가는 내용에 따라 로맨스부터 스릴러까지 천차만별로 변신할 수 있고, <콜>은 보시다시피 후자를 택했죠. 왜인지는 몰라도 20년 전 같은 장소에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할 수 있다며 출발합니다. 최소한 여기서만큼은 이게 왜 가능하고 이 전화기가 어디서 왔느냐는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박신혜의 서연인 듯 하지만 자연스레 이목이 쏠리는 쪽은 전종서의 영숙입니다. 캐릭터의 매력이나 배우의 캐릭터 소화력 등 어느 쪽으로 보아도 후자가 워낙 강렬합니다. 사이코패스 캐릭터 특유의 연기를 위한 연기가 영화 내내 반복되는 터라 그런 감상을 가져가기가 아주 용이하죠. 정색에 욕설에 광기 가득한 웃음에 잔혹한 유혈 사태까지, 영화나 배우나 작정하고 몰아칩니다.


 사실 여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이 쪽이 강력하고 나머지가 허약합니다. 일부러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였다면 성공이었겠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한 결과라면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대차게 주인공 위치에서 출발한 서연만 봐도 일정 시점 이후에는 생각도 목적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인물로 전락합니다.



 시간을 건드리는 영화들이 저지르는 얼렁뚱땅식 전개도 빠지지 않습니다. 과거의 행동이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기준과 양상을 어느새 영화 마음대로 주무르며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장면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죠. 설정은 각본에게 이용당하고 각본은 캐릭터에게 이용당합니다. 오디션용 데모 테이프가 아닌 이상 단 한 명의 캐릭터에 영화 전체의 호불호가 달려 있음은 치명적인 허물입니다.


 스포트라이트가 영숙에게 넘어간 순간부터는 목적지도 없이 그저 앞으로만 달리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불사의 초인으로 만들더니 하나씩 스러지는 주조연들을 연료 삼아 무대를 고조시키는 데에만 정신이 팔리죠. 불을 피우는 불씨는 쏙 빼놓은 채 활활 타는 불꽃에 감탄하라는 강요가 영화의 기승전결을 관통합니다. 디테일은 다 태워버려 관심을 줄 여지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틀을 깨는 신선함과 규범을 벗어난 일탈을 자주 헷갈리는 영화입니다. 본인만 잘 할 수 있어서 해내는 성과와 남들이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닌 과오가 뒤섞여 있죠. 애석하게도 <콜>은 한두 번으로도 결정적인 후자에 점점 취해 가는 영화구요. 그래도 앞으로 최소한 전종서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만큼은 존재감을 발휘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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