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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11. 2020

<조제> 리뷰

눈만 부시게


<조제>

★★


 국내 사업 철수 탓에 몇 남지 않은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의 신작, <조제>입니다. <더 테이블>과 <최악의 하루> 등을 맡았던 김종관 감독이 간만에 내놓은 장편이고,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리메이크한 작품이기도 하죠. 작년 초 <눈이 부시게>로 호흡을 맞추었던 한지민과 남주혁을 필두로 조복래, 박예진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집, 그 곳에서 책을 읽고 상상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살고 있는 조제.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영석은 천천히, 그리고 솔직하게 그녀에게 다가갑니다. 하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사랑이 설레는 한편 가슴아픈 조제는 자신에게 찾아온 낯선 감정을 밀어내고, 조제의 그런 모습까지 품고 싶은 영석은 한 발짝 더 나아가죠.


 별다른 줄거리 없이 두 주인공의 감정선만으로 기승전결을 지탱하는 영화입니다. 이누도 잇신 감독의 원작은 20대의 강렬하지만 한편으로는 연약한 감정선을 중심에 두었다면, 김종관 감독의 이번 작품은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사랑을 예쁘게 묘사하는 데에 열을 올렸습니다. 주워 입었지만 스타일링은 완벽한 여러 겹의 옷부터 창문에 내리쬐는 한 줄기 햇빛까지 놓치려 하지 않죠.



 바로 그것이 <조제>의 시작이자 끝이고 넘지 못하는 한계입니다. 그저 모든 것이 감성적이고 예쁘기만 합니다. 몇 안 되는 등장인물들의 절절한 사랑을 소재로 했다면 응당 두 사람의 내면을 켜켜이 바라보아야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지에 집중합니다. 문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이 둘이 좋은 사람이고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설득에 실패한다는 것이겠죠.


 당장 영석부터가 그렇습니다. 이성 관계부터 복잡하고 무책임하지만 이마저도 잘생기고 속은 착한 청년의 일탈도 아닌 일상으로 그려집니다.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이지만 무언가 열심히 노력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이리저리 생각 없이 살면서도 일이 대강 알아서 잘 풀리는 덕에 살아가는 것처럼 묘사되죠. '삶을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갈 수 없는 오늘의 20대'를 단단히 착각한 듯한 캐릭터입니다.


 조제도 다를 것은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반말부터 내뱉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고, 어디서 주워듣고 읽은 것들로 재구성한 망상을 자신의 인생에 가득 채워넣으며 살아가고 있죠. 그 누구에게도 연민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지만, 외려 그런 모습으로 자신의 연약한 면을 누구에게나 강조합니다. 영화 주인공이라는 입지와 한지민이라는 배우를 제하면 긍정적인 속성은 몇 남지 않는 인물이겠죠.



 그럼에도 영화는 둘이 함께하는 모든 순간을 마치 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함으로 장식하려 애씁니다. 조명부터 음악까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고, TV 전시장에 틀어놓을 법한 영상에 해시태그 붙이면 딱 좋을 문구들을 내레이션으로 넣습니다. 시를 완성하고 싶어 회심의 예쁜 단어들을 잔뜩 늘어놓았으나 운율은커녕 문장도 완성하지 못해 방황하는 글자들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주연들도 힘을 쓰지 못하니 몇 안 되는 조연들조차 통째로 덜어내도 이상하지 않을 분량만을 챙겨가고, 그런 인물들과의 이야기가 또 다시 주연들의 이야기에 영향을 끼치니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결국 영석과 조제는 서로와 있을 때에만 평소 드러내지 않던 각자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주장하기엔 이야기의 힘이 약하고 엉뚱합니다.



 그러다 보니 감독의 사심이 잔뜩 들어간 커피와 위스키 찬양마저도, TV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상표의 남용도, 관광청 지원이라도 받았나 싶은 서양 찬가마저도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영상 화보집 내지는 뮤직 비디오로 써먹기엔 훌륭한 재료가 되겠지만, 외면만 건져내고 잘 만들었다고 만족하기엔 아깝게 가져온 것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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