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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20. 2020

<미드나이트 스카이> 리뷰

버릴 욕심을 버리지 못한


<미드나이트 스카이>

(The Midnight Sky)

★★☆


 <모뉴먼츠 맨>, <서버비콘>, TV 시리즈 <캐치 22> 등 감독 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조지 클루니의 신작, <미드나이트 스카이>입니다. 넷플릭스와 손잡은 이번 작품에서도 감독과 제작자, 주연까지 1인 3역을 맡았죠. 펠리시티 존스, 데이빗 오예로워, 카일 챈들러, 캐올린 스프링올과 함께했고, 릴리 브룩스 달튼의 소설 <굿모닝 미드나이트>를 원작으로 두고 있습니다.



 원인 불명의 재앙으로 종말을 맞이한 지구, 북극에 남겨진 과학자 어거스틴은 우주선에 탑승하지 못한 소녀 아이리스를 발견합니다. 한편 인류의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났던 우주선 에테르의 과학자들은 임무를 끝마치고 지구로의 귀환을 준비하죠. 그러나 지구의 상황을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에게 어거스틴은 애타는 무전을 보내고, 그렇게 시작된 짧은 교신은 많은 것을 바꿔놓게 됩니다.


 구도는 분명합니다. 남은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자진해서 홀로 남기로 한 어거스틴, 그리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되고 만 에테르의 과학자들이죠. 선택했든 선택하지 않았든 이제 그들에게 달린 가능성은 너무나도 크지만, 그 누구도 그 정도의 무게감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그런 막중한 책임감이나 종족의 미래에 집중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우주로 나아가는 SF 영화들의 단골 소재인 유대와 희망을 다루는 영화죠. 가장 먼 곳까지 나아간 뒤에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들이 눈에 밟힙니다. <인터스텔라>, <애드 아스트라>, <퍼스트 맨> 등 우주의 조용한 진공 상태에서 떠올리기엔 더없이 좋은 재료입니다.


 캐릭터 구도도 단순하고 소재도 분명하지만, 이를 전달하는 방식은 한없이 투박합니다. 영화의 줄기는 크게 어거스틴의 이야기와 에테르의 이야기로 나뉩니다. 어거스틴은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에테르의 과학자들은 지구와의 교신을 위해 온갖 장애물들을 이겨내죠. 한 사람의 생존과 집단의 생존은 각각 본능과 연대라는 속성을 갖는데, 이 둘은 본래 좀처럼 서로와 섞이지 않는 재료들입니다.



 달리 말해 이 두 줄기는 영화의 거의 최후반부까지 서로의 감상을 방해합니다. 같은 장르의 전혀 다른 영화들을 제멋대로 교차 편집한 듯, 하나의 집중을 다른 하나가 끊임없이 끼어들어 흩뜨리죠. 거기에 어거스틴의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 시점으로 또 한 번 찢어지며 감독의 구구절절한 과욕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그래비티>에서 중간에 사라진 본인의 분량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죠.


 그렇게 빙빙 돌아 완성한 그림이 오직 <미드나이트 스카이>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라면 나름대로의 가치를 완성할 텐데, 그마저도 영 평범합니다. 어째 섞이지 않을 것 같더니만 역시나 무리수도 두어 개 던집니다. 특수한 곳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예찬하기에는 특수함의 정도가 좀 지나칩니다. 실제 상황에서 퍼즐이 이렇게 맞춰진다면 그 영험함에 굴복해 누구나 신실해질 것 같기는 합니다.



 작품성을 인정받는 동종 영화들처럼 일정한 가치를 파내려가 탐구하고도 싶었고, 상업성을 인정받는 동종 영화들처럼 볼거리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둘의 공존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쉽지 않을 뿐이죠. 그럴듯하고 심지어는 뛰어나기도 한 하나하나의 장면들을 한 실타래에 엮으려면 때로는 슬프지만 포기하는 것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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