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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24. 2020

<원더 우먼 1984> 리뷰

옳다 못해 옳지 못한


<원더 우먼 1984>

(Wonder Woman 1984>

★★


 DC의 구원자가 돌아왔습니다. 패티 젠킨스, 갈 가돗, 크리스 파인, 로빈 라이트, 코니 닐슨에 크리스틴 위그, 페드로 파스칼까지 뭉쳤습니다. 여름도 되기 전에 만났어야 했으나 결국 한 해가 끝나기 직전에야 마주하게 된 <원더 우먼 1984>죠. 전편 때만 해도 1억 5천만 달러였던 제작비를 2억 달러까지 올려 받았지만, 본토를 포함한 많은 국가들에서는 슬프게도 스트리밍 공개를 결정했습니다.



 모든 것이 활기찼던 1984년, 원더우먼 다이아나 프린스는 고고학자 직함을 달고 인간들 사이에서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지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고대 유물이 등장하며 사회는 서서히 혼란을 맞이하고, 비루했던 지난날을 뒤로하려는 악인들의 등장과 수십 년을 그리워했던 연인의 귀환으로 다이아나는 일생일대의 대결과 선택을 눈앞에 두게 되죠.


 여느 수퍼히어로 영화들이 그렇듯 일단 집중 유발용 액션으로 시작합니다. 꼬꼬마 시절의 다이아나가 고향 데미스키라에서 개최된 운동회(?)에 출전합니다. 꼬맹이임에도 불구하고 제우스의 딸이라는 치트키로 장성한 전사들을 농락하려 하죠. 다른 영화였다면 역시 영웅감이라며 칭찬받았을 지 모를 임기응변이 반칙이라며, 친히 여왕께서 내려와 우승자 따위에겐 눈길도 주지 않으며 교훈을 안깁니다.



 시작부터 뭔가 이상합니다. 상황과 대사의 조화가 납득이 될 듯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만고불변의 진실만이 진리이니 그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가 뭘 어떻게 했든 앞뒤 사정이 뭐든 무조건 진실이 최고이자 최선이라고 말합니다. 연설 없이도 직접 느끼게 하는 것이 일류, 영화가 끝날 때쯤 참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 이류라면 초장부터 튀어나오는 공익광고는 삼류를 넘어섭니다.


 어쨌든 아이맥스로 보면 눈이라도 즐거우니 넘어간다고 칩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더 이상합니다. 외딴 정글 한가운데도 아닌, 동네 쇼핑몰 창고에서 발견된 고대의 유물이 알고 보니 손대고 말만 하면 소원을 이뤄 주는 희대의 인피니티 스톤이라고 합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쯤에 나와도 간당간당할 설정입니다. 게다가 이를 유일하게 노리는 건 세기의 악당이나 세력도 아닌 웬 실패한 사업가입니다.



 감수해야 하는 전제가 한두 개가 아니지만, 여기까지도 딱히 불만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갖고 펼쳐내는 전개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여기까지 이해해 주는 배려심이라면 모든 걸 포용해주리라 믿고 마구 달리기 시작합니다. 너무나 거대한 설정들을 너무나 작고 하찮은 규모로 굴리느라 뒷감당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단 판을 키워 놓고 대충 장르 특유의 초능력으로 수습하길 반복합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설정의 무한한 가능성은 영화의 모든 것을 갉아먹습니다. <루시>, <트랜센던스>, <엑스맨: 아포칼립스> 등 제약 없는 만능을 등장시킨 영화들은 이토록 엄청난 능력을 이런저런 상황에 써먹지 못한 캐릭터들의 자멸을 그리며 기승전결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리고 말죠. <원더 우먼 1984>는 다른 초능력자들이 트럭 단위로 존재하는 수퍼히어로 세계관이라 문제가 더욱 큽니다.



 과욕은 참사를 부른다는 둥 실체 없는 허상은 독으로 돌아온다는 둥 갖다붙일 메시지는 차고 넘치지만, 메시지가 영화를 선행해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이 대사를 하기 위해 이 상황을 만들고,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이 캐릭터를 만들고, 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캐릭터를 오염시키는 최악의 수가 이어집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 쿠키 영상에 나왔던 캡틴 아메리카의 선전물이 한 수 위죠.


 그 소중하다는 메시지마저도 신파와 전형, 이보다 1차원적일 수 없는 캐릭터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이 뒤섞여 빛을 잃고 맙니다. 주조연들의 회개에 감회되어 나도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이 아닌, 조금만 더 똑똑하고 교묘하게 행동하지 못한 캐릭터들의 아둔함에 의문을 갖게 되죠. 바라기 전에 숙고해야 하는 것은 영화의 토대를 만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 말이었습니다.



 와이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액션마저도 무게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그를 필사적으로 숨기려 정신없이 확대하고 전환되는 값싼 연출은 상황을 악화시킵니다. 이는 비행을 포함, 7년 전 <맨 오브 스틸>보다도 훨씬 퇴화한 CG와 맞물려 무려 액션 명장면 없는 수퍼히어로 영화를 완성하죠. 아무리 엉망이어도 건질 장면은 있었던 전작들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식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1편 말미, 다이아나가 뜬금없이 무한한 인류애를 발산하며 무매력 악당의 전형이었던 아레스를 박살냈던 장면이 있었죠. 그간 받았던 지적 탓인지 최근 감독 패티 젠킨스는 그 장면이 자신의 기획이 아닌 제작사의 요구였다는 인터뷰를 했지만, 영화의 시작부터 끝을 그 감성으로 도배한 속편은 그 발언을 한낱 변명으로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감독의 색채라면 3편은 결단이 절실합니다.



 체로 거른 듯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속편으로도, 세계관의 일원으로도, 독립된 영화로도 실패했습니다. 바바라 미네르바, 맥스웰 로드, 스티브 트레버, 심지어는 주인공 다이아나 프린스마저 그 어떤 매력이나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1984년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라 80년대마냥 촌스럽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 정도의 맹목적인 낡음은 80년대도 거부할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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