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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28. 2020

<사운드 오브 메탈> 리뷰

소리죽여 소리내기


<사운드 오브 메탈>

(Sound of Metal)

★★★☆


 2013년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작가였던 다리우스 마더의 감독 데뷔작, <사운드 오브 메탈>입니다. <베놈>, <로그 원>의 리즈 아메드와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올리비아 쿡을 비롯해 폴 라시, 마티유 아말릭 등이 이름을 올렸죠. 미국에서는 11월 말 일부 극장에서 상영된 뒤 12월 초부터 아마존 프라임을 통해 스트리밍 공개되었습니다.



 연인 루와 함께 유랑하며 드러머의 꿈을 펼치고 있는 주인공 루벤. 곧 앨범도 내고 투어도 돌자며 하루하루 고된 삶을 이어가고 있던 그에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청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죠. 머지않아 청각을 완전히 상실할 것이라는 소식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서서히 사라지는 소리에도 루벤은 좀처럼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신체적 장애를 소재로 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그를 딛고 일어서는 용기와 희망을 노래하고 찬미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잠시, 오늘의 내 모습이 앞으로의 내 모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전진하는 모습을 천천히 다루려 하죠. 연인, 동료, 스승 등 적재적소에 배치된 조력자들은 주인공의 재기에 한 자리씩 차지하며 전형적이지만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운드 오브 메탈>의 노선은 조금 다릅니다. 일단 언급한 전개가 특징인 대부분의 영화들과 달리 <사운드 오브 메탈>은 실화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긍정적인 모습만을 보여주거나 굳이 아름답지 못한 곳까지 어떻게든 포장하려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있을 법한 무대만 꾸며놓고 나면, 그 위에서는 있는 그대로에 주목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역시 스스로의 이런 속성을 알고 강화합니다. 드러머나 떠돌이 등 루벤을 수식하는 특수한 단어들은 천천히 지워지고, 청각 장애를 마주한 한 명의 인간만이 스포트라이트 안에 남죠. 그렇게 영화는, 그리고 관객은 뜻하지 않은 장애를 받아들이고 적응해 가는 한 사람이자 모든 사람의 모습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문득 묻어나오는 지독함마저 전혀 과장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마냥 아낌없이 퍼주는 성인처럼 묘사할 요량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만 영화는 그 여러 사람 중에서도 모든 사건의 한가운데에 있는 주인공 루벤에게 좀 더 주목할 뿐입니다.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예상치 못하게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삶이 흘러가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잘못된 것이 아니기에 고쳐야 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속 편한' 말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할 수 없는 눈물을 거쳤을 것입니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이제는 탄탄해진 그 뭉치의 한 타래를 새삼스럽게 드러내는 영화구요.


 홀로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으로 연기력을 쥐어짜내지도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지나치게 빠져들어 감정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건조한 다큐멘터리도 아니지만 영화적으로 과장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마치 자신을 촬영하라고 허락한 누군가의 브이로그를 전지적 시점에서 관찰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이끌어내는 몰입도도 대단하죠.



 커다란 눈에 감정을 담아내는 리즈 아메드의 존재감이 영화를 지탱하고, 포스터에 적힌 올리비아 쿡보다는 폴 라시의 여운이 좀 더 깊습니다. 제목이나 포스터만 보고 장애와 맞서 싸우는 뮤지션의 음악 인생을 기대하면 낭패겠지만, 비슷한 소재나 각본을 차용한 영화들 중 동종으로 묶을 영화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만의 색을 확보하는 데엔 확실히 성공한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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