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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an 05. 2021

<차인표> 리뷰

웃기지도 못하고 우습지도 않은


<차인표>


 이 시국에 꺼내들었다간 텅 비어버릴 잔고가 두려워 스트리밍으로 향한 영화들이 많죠. 그러나 자신들의 극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경쟁자의 품을 선택한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롯데 엔터테인먼트의 작품임에도 롯데시네마 대신 넷플릭스로 공개된 <차인표>가 내린 결단입니다. 2021년 1월 1일, 올해를 여는 영화가 되어 말 그대로 안방극장을 향한 영화죠.



 손가락만 흔들어도 모두가 껌뻑 죽었던 왕년의 대스타 차인표. 하지만 화려했던 나날은 과거일 뿐, 영화는커녕 예능이나 광고도 한 편 한 편이 버겁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아지도 산책시킬 겸 가볍게 등산을 나서고, 비어있던 근처 여고 샤워실에서 먼지를 씻어내던 중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하죠. 놀람도 잠시, 벌거벗은 채로 카메라에 찍히지 않겠다는 일념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배우가 본인을 연기합니다. 얼핏 신선한 아이디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의외로 별다른 잠재력이 없는 설정입니다. 몰락한 스타 캐릭터야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물리도록 등장했고, 그를 실화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는 오히려 가리고 조심해야 할 여지만 늘릴 뿐이죠. 그나마 기대할 만한 것이라곤 자기 얘기를 저렇게까지 해내는 자학 내지는 자뻑 개그 정도입니다.



 <차인표>는 바로 그 기대에 안착합니다. 극중 본인 말마따나 모범적이고 젠틀한 이미지를 추구했던 배우 차인표가 대담하게 망가지는 모습에 영화의 모든 잠재력을 쏟아넣죠. 진흙탕에 얼굴을 박고, 샤워하다 말고 거울 속 본인 모습에 도취하고, 말도 안 되는 고민을 당당하고 뻔뻔하게 머리 밖으로 꺼내놓습니다. 소화될 듯 소화되지 않는 그 이질감이 바로 <차인표>의 승부수죠.


 B급 코미디를 노리는 대부분의 영화들은 B급 코미디가 완성되는 정확한 과정을 모릅니다. 인물부터 사건까지, 해당 장면과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 요소들이 일관적으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야 하죠. 하지만 많은 영화들은 웃음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만을 모방해 직전과는 전혀 무관한 진땀 마무리를 B급 감성이라 우깁니다. <차인표>도 마찬가지구요.



 민망한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길게 잡아늘인 뒤 그럴듯한 클래식 음악을 까는 연출은 이제 B급이라 부르기도 어설픕니다. 얌전하고 신사적인 사람이 급발진해 내뱉는 쌍욕도, 만화적으로 과장된 조연과 단역들이 부리는 진상도 다를 것은 없습니다. 어디서 보다 못해 실망과 충격일 뿐이었던 장치들이 세상에서 가장 재치있는 것으로 포장되어 반복적으로 나열됩니다.


 <차인표>라는 영화에 차인표를 캐스팅한 것은 당연히 있는 그대로의 차인표를 보기 위함이겠죠. 그러나 <차인표>의 차인표는 오로지 <차인표>를 위해 만들어진 차인표를 연기한다는 느낌밖에 주지 못합니다. 여기서 시작된 의문은 이 영화가 굳이 이렇게 만들어져야 할 이유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제목이, 주연이, 캐릭터가 '차인표'일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죠.



 결국 <차인표>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차인표라는 배우에 대한 배경 지식과 차인표를 향한 애정, 특정한 유머 코드까지의 세 가지 영역이 겹쳐야 합니다. 셋 중 하나라도 가지지 못하면 즐기지 못하는 것을 넘어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확률이 굉장히 높구요. 용감하게도 <차인표>는 코미디가 웃기지 못할 때, 차인표가 통하지 않을 때의 그 어떤 준비도 해 놓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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