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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an 07. 2021

<나의 마더> 리뷰

엄마는 다 알아


<나의 마더>

(I Am Mother)

★★★☆


 신예 그랜트 스푸토어가 감독, 각본, 제작까지의 1인 3역을 맡은 <나의 마더>입니다. 클라라 루고르와 힐러리 스웽크가 등장하고, 주연급 캐릭터인 로봇 '마더'의 목소리로는 로즈 번이 이름을 올렸죠. 2019년 중순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구요. 원제 <I Am Mother>와 수입된 제목 <나의 마더>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텐데, 영화를 보고 나면 꽤 큰 오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류가 멸종된 지구. 인공지능 로봇을 엄마라 부르며 자란 소녀는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시설에서 완벽한 보호와 교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소녀는 바깥 세상은 위험해 인간이 견딜 수 없다는 마더의 가르침을 철썩같이 믿고 있죠. 그러던 어느 날 등장한 낯선 여자는 지금까지의 모든 믿음을 흔들기 시작하고, 십수 년을 버틴 모녀의 유대에도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풍경은 익숙합니다. 희고 깨끗하지만 차갑고 날카로운 미래형 벙커 인테리어를 무대로 고유하지만 평범한 로봇이 돌아다닙니다. 처음 나올 때는 한두 번쯤 신기한 식량이나 시설 등으로 눈길을 붙잡고 시작하죠. 바깥 세상은 무슨무슨 이유로 절대 나갈 수도 없고 나가서도 안 된다고 하지만, 너도 나도 우리의 주인공도 언젠가는 한 발짝 나가보리라 속으로 열심히 다짐하고 있습니다.



 SF와 실험 정신의 만남에서는 종종 기대 이상의 대담함을 갖춘 작품들이 나오곤 합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영화들이야 결과적으로는 권선징악을 바탕으로 한 안전한 길을 추구하겠지만, 이처럼 딱히 미련이 없는(?) 영화들은 장르 특유의 잠재력을 훌륭하게 끌어올리곤 하죠. 극중 과학기술을 단순히 부족한 설득력 사이의 벽돌이 아니라 매끄럽게 굴러가게끔 하는 윤활유로 사용합니다.


 <아이 엠 마더>가 그렇습니다. 익숙한 광경이 선사하는 편안함으로 관객들을 유인하고, 이내 자신만의 신선함으로 색을 드러냅니다. 동종 영화들이 평범해지고 또 특별해지는 지점을 정확히 알고 구분합니다. 힘을 쏟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가볍게 전진하고, 힘을 주어야 하는 곳에서는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생각할 여지와 시간을 제공하죠.



 때문에 이것이 일종의 진입 장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퍼즐 조각들을 하나둘씩 꺼내놓지만, 이 퍼즐은 조각이 몇 개 빠져 있어도 전체적인 그림을 일단 이해하는 데엔 큰 어려움이 없죠.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완전한 기승전결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화 역시 이를 굳이 다른 캐릭터의 입을 빌리거나 추가적인 러닝타임을 할애해 설명하려 하지 않구요.


 다행히 단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영화가 단서를 단서라고 따로 포장하거나 이야기하지 않을 뿐입니다. 슬쩍 지나가는 단어와 숫자들을 인물과 사건에 적절히 연결시켜야 하죠. 소녀가 아는 것, 낯선 사람이 아는 것, 그리고 마더가 알고 들려주는 것을 이어붙여야 합니다. 조각들이 하나가 되어 '아이 엠 마더'라는 제목으로 꼭대기에 별을 달면 비로소 어머니의 뜻이 완성되죠.



 공간은 벙커가 전부고 캐릭터는 셋뿐임에도 무려 전 인류를 들먹이는 각본이 무리수 없이 맞아들어갑니다. 인공지능의 생각이라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각본이 자신의 포부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적당한 자본과 만났습니다. 장르 특성상 돈으로 규모를 불려 볼거리만 나열하면 된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이런 영화들의 주기적인 등장과 활약은 언제나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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