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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an 11. 2021

<걸> 리뷰

홀로 바로서기보단 바로 홀로서기


<걸>

(Girl)

★★★


 신인 감독 루카스 돈트와 신인 배우 빅터 폴스터가 합을 맞춘 <걸>입니다. 2018년 열린 제 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포함한 4관왕에 올랐던 작품이죠. 감독은 본인이 18살 시절 만났던 벨기에의 트랜스젠더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흐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각본을 집필했고, 공식 석상에서도 몽세쿠흐와 함께하며 영화의 의미와 의의를 더하기도 했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경계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16살 라라. 가족의 따뜻한 지지와 함께 매일같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조금이라도 변해 있을 내일을 기대합니다. 호르몬 치료와 학업, 그리고 발레 연습을 병행하며 진정한 자신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지만, 어떤 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 현실의 벽은 라라의 안과 밖을 오늘도 흔들어 놓죠.


 어느 하나 새삼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어제 봤던 사람을 오늘 또 보듯 편안하게 출발합니다. 각 캐릭터가 누구고 어떤 사람인지는 러닝타임이 흐르며 하나하나 스스로 자연스럽게 파악해야 합니다. 친절하게 한 명씩 나와서 소개를 해 주거나 각자의 상황을 굳이 대사로 풀어 설명하지 않습니다. 마치 정말로 이웃에 사는 사람인 양, 내레이션마저 없는 <인간극장>의 한 편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그것이 <걸>의 힘입니다. 제 3자에게 무엇도 강요하지 않은 채 라라를 자신의 고민을 안고 있는 하나의, 보통의 사람으로 조명합니다. 여성이 되고 싶은 바람은 발레를 잘 하고 싶은 기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발레에 이끌린 사람은 뛰어난 발레리나가 되려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그와 같은 순수한 에너지는 어떤 판단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듯 하죠.


 직면하는 사건 역시 영화의 러닝타임을 채워넣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개입과 존재는 라라의 일상을 위협하지만, 그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적대하기보다는 라라가 마주칠 수 있는 수많은 난관들 중 하나를 묘사할 뿐이죠. 고통을 표현하면서도 혐오나 악감정을 조정하지 않는 섬세함이 <걸>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다만 바로 그 섬세함이 105분의 러닝타임을 버겁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뚜렷한 사건이 없으니 바로 옆에서 일상을 따라가는 것 외엔 보여줄 것이 많지 않고, 특정 시점부터는 한두 번으로도 족한 나열식 장면들이 단순히 반복되기도 하죠. 최소한 라라의 아버지인 마티아스 정도는 라라의 내면을 밖으로 꺼내놓는 매개 이상의 대접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이 마티아스는 따지고 보면 라라가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고민할 수 있는 정신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여유를 제공하는 인물입니다. 무한한 사랑과 지지로 라라를 하나의 영혼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라라의 교육과 성장을 위해 모든 것을 제쳐두죠. 어쩌면 이야기의 공감대를 최대화하기 위해 이처럼 완벽한 캐릭터의 존재감을 최소한으로 낮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확실히 진입이 마냥 쉽지는 않습니다. 먼저 가시를 세우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열려 있는 영화도 아닙니다. 동종 영화들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의외로 <걸>은 주연배우의 연기가 마냥 돋보이는 편도 아니죠. 순전히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에 집중해야 하는데, 지탱해야 할 가지의 개수와 무게에 비하면 줄기의 두께가 다소 아슬아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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