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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an 17. 2021

<소울> 리뷰

항상 감사하십시오 


<소울>

(Soul)

★★★☆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중에서는 여전히 굴지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픽사의 신작, <소울>입니다. 작년 초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이후 약 9개월만에 내놓은 작품이며, 픽사의 산 증인이자 <업>과 <인사이드 아웃>의 감독으로도 활약했던 피트 닥터가 또 한 번 총지휘를 맡았죠. 제이미 폭스, 티나 페이, 그레이엄 노튼, 앨리스 브라가, 안젤라 바셋, 레이첼 하우스 등이 목소리 출연진으로 활약했구요.



 뉴욕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던 조. 꿈에 그리던 최고의 밴드와 합주가 결정된 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영혼이 되어 '태어나기 전 세상'에 떨어집니다. 탄생 전 영혼들이 멘토와 함께 자신의 관심사를 발견한 뒤 지구로 향하게 되는 그 곳, 조는 거기서 유일하게 지구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이단아 22를 만나죠. 지구로 돌아가고 싶은 조와 지구는 죽어도 싫은 22의 뜻하지 않은 동행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라라랜드>에서 라이언 고슬링의 세바스찬은 재즈의 열렬한 팬을 자처합니다. 같은 곡도 들을 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각 악기들이 자신만의 시간과 존재감을 뽐내는 마법과도 같은 장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죠. 이처럼 창작자들은 시작과 끝이 전혀 다른 존재들이 만나 일정 순간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음악과 삶을 연결시키길 좋아합니다.


 주인공의 직업을 재즈 연주자로 설정한 <소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조는 자신만의 완벽한 하모니를 꿈꾸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곧장 나아가지 못하는 인물이죠. 그런 그가 본의 아니게 입성한 영혼들의 세계는 태어나기 전의 영혼들이 이런저런 성격과 특성에 더해 마지막으로 자신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내면 마침내 지구로 향할 수 있는 곳입니다.



 깔아 놓은 판만 봐도 목적지가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특별함을 내재하고 있고, 그것들이 서로와 만나 이룬 하모니는 매 순간이 소중한 일상을 완성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라는, 영화가 끝난 뒤 상영관 밖으로 나서는 첫 발걸음부터 다른 감상을 가져 보라는 메시지를 던지죠. 흔하지만 매번 새삼스러운 문장입니다.


 사랑스러운 상상력이 가득합니다. 아이들의 눈으로는 즐겁고 어른들의 눈으로는 은은한 소재와 장치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죠. 머릿속부터 사후세계까지, 무형의 과정에서 부품 하나하나가 맞물려 돌아가는 방식을 즐겨 들려주었던 픽사의 새로운 강의입니다. 해당 세계를 마치 비디오게임 스테이지처럼 구획을 나누어 구분하는 접근은 역시나 전작 <인사이드 아웃>의 그림자가 짙구요.



 다만 이 비주얼과 상상력의 파도에 우리의 주인공 조와 22마저 휩쓸립니다. 귀여운 디자인을 제외하면, 이 둘은 어쩌면 지금까지의 픽사 애니메이션 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매력이 떨어지는 캐릭터죠. 상황보다 한 박자 늦게 움직여 모든 행동이 예측 가능한 것을 비롯,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주객이 전도되어 막상 개개인의 서사에는 큰 신경을 쓰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당장 조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마무리엔 지금껏 그러지 않았던 누군가가 필요하죠. 매 순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언가를 당연히 여겼던 과거를 후회할 특정한 사건이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극중 조의 지난 삶은 무기력하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없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스스로도 자신의 예전 모습에 새삼스러운 충격을 받을 지경이었죠.



 그러나 막상 따져 보면 딱히 그렇지 않습니다. 조는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재즈를 향한 열정을 아낌없이 드러냈고, 언젠가는 훌륭한 연주자가 되겠다는 일념을 매일같이 되새기며 어떻게든 자신의 삶에 재즈를 입히고자 많은 것을 감수했죠. 영화 역시 분명히 조의 이런 노력에 동조하는 것처럼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메시지의 폭발력을 위해 조의 성격을 다소 괴팍한 것처럼 몰래 매만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분명하게 목표한 결과를 위해 과정을 얼버무리는 구성이 반복됩니다. 제리와 테리 등 의외로 허당기 가득한 영혼 세계 관리자들이야 애교로 봐 줄 수 있겠지만, 22는 물론 조마저 매 상황의 필요에 따라 일관성 없이 흐느적거리죠. 사랑스러운 비주얼과 막판의 한 방에 많은 것을 기대는데, 어찌저찌 포장해 도장 쾅 찍는 마무리마저 앞서 깔아 둔 모든 줄기를 깔끔하게 마무리지은 느낌은 전혀 아닙니다.



 들어맞지 않는 것들의 하모니를 내세운 영화치고는 불협화음이 꽤 있는 편입니다. 정말 여러모로 (또 다시 언급하는) <인사이드 아웃>에서 미처 써먹지 못하거나 남아 있던 아이디어들을 적당히 종합선물세트로 묶어낸 듯하죠. 그마저도 보드랍고 푹신한 최면술로 해결할 수 있다면야 그것도 픽사만이 가능한 능력이기는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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