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Jan 24. 2021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리뷰

소문나 버린 동네 잔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劇場版 「鬼滅の刃」 無限列車編)

★★★


 흥행은커녕 손익분기점만 넘어도 감지덕지인 극장가 한파에 대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관객수 천만과 2천만을 넘어 본토 역대 박스오피스 종합 1위를 달성하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갖고 있던 기록을 19년 만에 깬 영화가 나타났으니, 바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죠. 메가박스 단독 개봉작으로 예고되었으나, 엄청난 인기 덕에 1주일의 여유를 두고 모든 극장 상영이 확정되었구요.



 혈귀들이 창궐한 세상, 가족들을 여의고 비밀조직 귀살대에 들어간 탄지로. 믿음직한 동료인 젠이츠, 그리고 이노스케와 함께 새로운 임무 수행을 위해 무한열차에 탑승한 탄지로는 귀살대 최강의 검사 렌고쿠와 합류합니다. 열차 안에서 수십 명의 승객들이 사라졌다는 흉흉한 소문에 주인공 일행은 범상치 않은 혈귀의 존재를 예감하고, 그들의 목숨을 건 혈전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소울 보러 온 사람: ???


 가뭄에 단비인 <소울>이 지나가고 나면 또 다시 메마른 극장가를 살리기 위해 다들 진심입니다. 선개봉에 만족하지 못한 메가박스는 개봉일마저 앞선 유료 시사를 3일에 걸쳐 진행하고, 일부 상영관 이름마저 <귀멸의 칼날>의 캐릭터 이름으로 바꾸는 등 온 정성을 기울이고 있죠. CGV는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역사상 손에 꼽을 아이맥스 개봉까지 성사시켰습니다.


 <무한열차편>의 관람은 순전히 이 대단한 기대와 성과 덕분이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이 탄지로라는 것 외에는 딱히 아는 것도 없었지만, 얼마나 엄청난 작품이기에 독립된 영화도 아닌 극장판이 역대 박스오피스 1위라는 성적을 거두었는지 궁금한 마음뿐이었죠. '렌고쿠 쿄쥬로관'으로 이름까지 바꿔 단 상영관에 빈 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찬 관객들이 그 인기를 벌써 증명하는 듯했습니다.



 전반적인 구성은 소년 만화의 공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우선 큰 그림으로는 혈귀와 귀살대가 대립합니다. 혈귀 측은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상현과 하현이라는 간부 집단, 그리고 그 외의 조무래기 잔당들로 구성됩니다. 우두머리의 피를 받아 간부가 되면 엄청난 수명과 재생력을 기본으로 각자의 고유한 초능력을 하나씩 갖고 귀살대와 맞섭니다.


 귀살대는 '큰 어르신'이라 부르는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주(=기둥)라는 간부 집단, 그리고 나머지 귀살대원들로 구성됩니다. 귀살대는 소질이 있는 아이들을 데려와 성장시키는 쪽이고, 힘을 증명하면 주로 승급합니다. 이들은 물, 화염, 번개, 짐승 등의 속성을 지닌 '호흡'이라는 검술을 구사해 혈귀들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수호합니다.



 일단 친절합니다. 첫 등장한 주인공들은 굳이 서로를 이름으로 호칭하며 관객들에게 각자를 소개합니다. 정신나갈 듯이 쾌활한 친구가 있으면 끝도 없이 소심한 친구가 있고, 그 사이의 유일한 정상인(?) 주인공은 차분히 중도를 지키죠. 기본적인 액션으로 문을 연 뒤 각자의 대사와 사연으로 개성을 확보합니다. 젠이츠나 이노스케보다는 탄지로와 렌고쿠에게 훨씬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져 있죠.


 초중반부는 일종의 최면술인 악역의 능력을 통해 각자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꺼내놓으며 많은 설명을 단축합니다(줄로 손과 손을 묶어 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안에서 팽이라도 돌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픈 가족사는 물론 결정적인 동기에 이르기까지, 원작을 아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모두에게 나름대로의 존재 의의를 확보하는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그렇게 탄지로의 활약이 지나가면 렌고쿠를 필두로 한, 마치 전혀 다른 에피소드를 가져다 붙인 듯한 전개가 이어집니다. 전반부에 부족했던 액션의 함량을 끌어올리며 다분히 소년만화와 그 극장판다운 화면을 선보이죠. 반대로 말하자면 탄지로와 하현 엔무의 전반부는 의외로 즐길거리가 부족한 편입니다. 몇 되지 않은 조연들의 활용도 미미한 것은 물론 동일한 감정적 접근을 꽤 반복적으로 시도하죠.


 앞서 언급한 친절함에 더해 독무대를 하듯 관객들을 응시하며 자신의 능력과 계획을 줄줄 읊어대는 악역 등 극장판 안에서의 설정들은 필요 이상으로 구구절절한 반면, 배경 지식이 있어야만 하는 몇몇 지점들은 또 알아듣는 사람만 알아들으라는 듯 지나갑니다. 카구라 춤 이야기나 대사는커녕 얼굴조차 나오지 않는 동일한 캐릭터를 누군가는 '무잔', 또 다른 누군가는 '키부츠지'라고 부르는 사례가 대표적이죠.



 쏟아지는 분량 대비 효율을 따지면 무색무취한 탄지로보다는 신념과 힘으로 무장한 렌고쿠 쪽이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주인공 캐릭터 특유의 타고난 무한한 재능, 본능적인 분량 확보력을 제외하면 딱히 탄지로만의 특징을 따지기도 애매한 탓이죠. 그럼에도 영화는 네즈코를 비롯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되풀이하며 그 빈자리를 가리려 애씁니다.


 주의 활약이나 탄지로의 가족사 등 시리즈 팬들에게는 희로애락을 선사하기에 충분하겠지만, 모든 것이 생소한 관객들에게는 드라마와 액션, 제공하는 정보와 교훈 등 이래저래 균형이 어중간합니다.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목표로 하는 영화라면 당연히 후자보다는 전자 쪽을 신경쓰겠으나, 본의 아니게 커져 버린 규모에 스스로도 약간은 갈팡질팡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아름다운 존재라거나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등 지금껏 수많은 각본에서 수없이 많은 방식으로 활용한 메시지를 코 앞에 흔듭니다. 자연스레 녹여내기엔 힘에 부친 탓인지 일장 연설도 서슴지 않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독립된 하나의 영화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보다는 초인기작 열풍의 연장선으로 바라봐야 맞는 듯 한데, 그러기엔 종합 1위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놀라울 따름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소울>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