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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09. 2021

<승리호> 리뷰

무한한 유한함


<승리호>

★☆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과 송중기가 다시 뭉쳤습니다. 충무로산 영화치고는 눈이 번쩍 뜨일 240억 원짜리 SF 영화, <승리호>죠. 장르 면에서나 제작비 면에서나 캐스팅 면에서나 제작 초반부터 엄청난 관심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작년 여름 즈음부터 여러 대목을 노리고 개봉을 조율했으나 연속 불발되었고, 결국은 넷플릭스의 품을 택해 지난 2월 5일 공개되었죠.



 때는 2092년,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는 조종사 태호, 우주 해적단의 선장이었던 현숙, 갱단 두목에서 건실한 기관사가 된 타이거 박, 평생의 꿈을 안고 사는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까지 뭉친 우주 쓰레기 처리선 승리호. 어느 날 사고 우주정을 수거한 승리호는 그 안에 숨어있던 의문의 인간형 로봇 도로시를 발견하고, 돈이면 껌뻑 죽는 주인공 일행은 도로시를 거액과 맞바꾸기 위한 위험한 거래를 계획하죠.


 우주 활극 장르에 충실한 볼거리와 떄깔로 눈길을 확 잡아끕니다. 최근 여러 흥행작들이 한국영화계의 기술력을 만방으로 증명한 바 있지만, 토종 거대자본 블록버스터의 존재감은 여전히 아주 잘 살아있죠. 다른 곳도 아닌 우주를 무대로 이 정도의 오락성 가득한 액션을 뽑아냈다는 사실만으로 극장이 아닌 넷플릭스행을 아쉬워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볼거리와 영화의 완성도는 꽤나 독립적이라는, 어쩌면 통계적으로 비례보다 반비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여러 영화들이 증명해 온 바 있습니다. 특히나 제작 환경이 제한적인 곳에서는 걸린 돈이 많아질수록 들어가는 입김과 봐야 할 눈치도 함께 커지고, 그에 따라 각본의 만듦새 또한 단순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곤 하죠.


 슬프게도 <승리호> 또한 그 서글픈 예상을 딱히 빗나가지 않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엘리시움>, <로그 원> 등 여러 동종 영화들의 향기를 풍기며 출발한 승리호는 아이의 등장과 동시에 말 그대로 우주 전체에 가득했던 각본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포기하고 들어갑니다. 티없는 순수함으로 뭉친 아이는 각본상의 성배가 되어 모든 난관과 악행을 피해 가는 해피엔딩으로의 치트키로 작동하죠.



 쳐다만 봐도 착해진다고 주장하는 아이의 존재는 가뜩이나 말밖에 없던 승리호 선원들의 몰개성을 악화시켜 그러지 않아도 뻔했던 기승전결의 선명도를 몇 배로 끌어올립니다. 너무나도 구멍이 많아 그냥 동네 건달들의 허세 허풍 가득한 영웅담으로 들리기까지 하는 승리호 선원들의 과거사들은 그저 중후반부에 걸친 자본주의 돈 폭탄의 가장 빈약한 근거로밖에 작동하지 않죠.


 언뜻 보기에만 그럴듯하고 툭 치면 무너질 듯한 뼈대는 비단 주인공 일행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인류의 미래와 행성의 미래를 논하고 종족 단위의 계층 갈등을 하나의 세계관에 녹인 영화치고는 허술한 곳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나치게 많고 다양한 잠재력 그 자체가 각본상의 가장 크다못해 점점 커지는 구멍으로 작용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수많은 무리수를 또 다른 무리수로 막아냅니다. 이 쪽에 있는 구멍을 막기 위해 뜯어낸 저 쪽에서 몇 배는 큰 구멍이 만들어지길 반복합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인피니티 스톤급 소재인 나노봇이 대표적이죠. 아무런 준비도 근거도 없이 슬쩍 끼워넣어서는 이것이 SF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미덕이라는 듯 한 번도 버거운 비상 탈출구를 제멋대로 남용합니다.


 이처럼 장면 하나하나를 마구잡이식으로 전진시켰으니 그것들이 연결된 기승전결이 멀쩡할 리 없습니다. 캐릭터의 구성이 엉망이니 그들이 일으키고 만들어내는 관계들에 어떤 끌림도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태호가 이렇게 하건 현숙이 저렇게 하건 기대가 되지도, 실망스럽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틀에 박혀 있던 결론과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 끌기라 그저 지겹기만 합니다.



 예상을 상회하거나 벗어나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들어맞거나 그조차도 미치지 못하는 순간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설리반의 질병이나 현숙의 과거, 나노봇의 출처 등 정작 필요한 것은 설명하지도 않은 채 타이거 박의 활약이나 영화 패러디 등 러닝타임의 낭비가 지나치죠. 통째로 덜어내도 전개나 캐릭터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액션과 눈요기에 도취되길 반복합니다.


 당장 메인 악당의 계획부터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못해 당연히 훨씬 똑똑하고 정교한 꿍꿍이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 예상될 지경이지만, 되는대로 나아가는 뻔뻔한 전진은 처음이 어려울 뿐입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니 이전까지의 경로는커녕 방금 서 있었던 지점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죠. 이를 보고 즐기기만 하면 되는 오락 영화라고 변명하기엔 그것까지 챙기는 데 성공한 친구들이 차고 넘칩니다.



 조연 혹은 단역 배우들의 끔찍한 연기에 예고편에서부터 화제가 되었던 만화영화급 대사들까지 합쳐지면 그러지 않아도 부족한 살림에 남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본 건 많은데 보여줄 건 없습니다. 꿈꾼 것은 많으나 깨고 보니 그저 깜깜합니다. 이쯤 되면 2020년 영화계의 최대 피해자는 극장도 관객도 아닌 넷플릭스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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