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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10. 2021

<새해전야> 리뷰

행복 역병


<새해전야>

★☆


 <결혼전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홍지영 감독 신작, <새해전야>입니다. 제목에서 얼핏 보이듯 전작 <결혼전야>와 비슷한 옴니버스식 구성을 택한 영화죠. 김강우, 유인나, 유연석, 이연희, 이동휘, 염혜란, 유태오, 수영(소녀시대) 등이 이름을 올렸고, 제목을 보나 영화 내용을 보나 원래 예정대로 작년 말에 개봉되었어야 하는 영화가 애석하게도 해를 넘기고도 한 달을 기다렸습니다.



 강력반에서 좌천되어 신변보호 업무를 떠맡게 된 형사 지호, 이혼소송 중인 재활 트레이너 효영. 도망치듯 아르헨티나로 향한 와인 배달원 재헌과 일방적인 결별로 홧김에 떠난 진아. 결혼 자금을 사기로 날릴 위기에 처한 용찬과 대륙의 예비신부 야오린. 수준급 실력의 패럴림픽 국가대표 래환과 긍정왕 원예사 오월. 새해까지 남은 시간 일주일, 한 뼘 더 행복해지고 싶은 커플들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줄거리도 없이 캐릭터만 나열했는데도 분량이 넘칩니다. 보시다시피 <새해전야>는 각자의 사연을 안은 네 커플의 이야기를 번갈아 나열하죠. 물론 아주 독립적이진 않은, 최소한의 연결고리는 하나씩 갖고 있지만요. 왜인지 모르게 살짝 들뜨는 연말연시, 그래도 다가오는 새해는 끔찍한 올해보다는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네 커플의 이야기와 영화를 관통합니다.



 기승전결이랄 것이 없습니다. 사건과 사건을 나열할 뿐입니다. 분위기, 연기, 대사, 감정까지 모든 것이 과장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주머니에서 박카스 하나 꺼내서 내밀고 옆에 큼지막한 상표 하나 띄우며 다 풀릴 것 같습니다. 눈물을 흘려도 슬프지 않고 화를 내도 격앙되지 않습니다. 그저 뭐든 예쁘고 예쁘게 연출하는 데에 온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대사보다 조명에 더 많은 신경을 쓴 듯 합니다.


 이해가 되는 것도, 이해를 하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세상엔 이미 행복한 사람과 앞으로 행복할 사람만 존재한다는 흑백논리로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모든 대사와 연기가 작위적이라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장면이, 상황이, 각본이 멀쩡할 리 없습니다. 결혼이건 새해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아무 단어나 가져다 붙이면 영화계 모든 배우들을 끌어다가 전집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쉽게 말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전개를 만들어 보려다가 정말 방법이 없어서 딱 한 번 쓸 법한, 소위 '영화이기에 가능한' 진행을 남발하고 또 남발합니다. 마음만 예쁘게 먹으면 일이 알아서 굴러가고 착하게 굴면 세상이 나서서 자신을 위해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런 무의미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나열하면서 새해에는 조금 더 행복해지라는 주장은 거짓을 넘어선 위선입니다.


 이런 가운데 세상 스포트라이트는 혼자 다 받는 인물과 배우들이 그 이상의 무언가가 되려는 욕심이라고는 전혀 없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합니다. 그저 직업과 성별만 바꿔 단 물량공세 캐릭터 열전엔 아무런 개성도 찾아볼 수 없죠. 네 쌍씩이나 되는 커플이 등장하지만, 대충 무작위로 섞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대리석 집에서 창가에 걸터앉아 와인을 홀짝대는 그림만 나오면 그만입니다.



 폭죽 터지는 페레로 로쉐나 행운을 빈다는 맥도날드 광고에 수십 초쯤 되어 나와도 돌아서면 잊어버릴 알맹이입니다. 이렇게 제멋대로 굴어도 먹고 살 걱정 하나 없이 언제 어디서나 풍족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면야 누구나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만, 귀엽고 깜찍하니까 봐 달라고 우기기에도 무엇 하나 함량을 충족하는 쪽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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