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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11. 2021

<아이> 리뷰

달리지 않아도 걸을 용기


<아이>

★★★


 장편 데뷔하는 김현탁 감독과 김향기, 류현경이 뭉친 롯데 엔터테인먼트의 2021년 첫 번째 작품, <아이>입니다. 약 16억 원 정도의 저예산으로 완성한 영화인지라 손익분기점도 4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하죠. <소울>, <새해전야>, <몬스터 헌터>와 함께 설 극장가를 노린 영화들 중에서는 포스터에서부터 가장 가족과 가까운 영화임을 어필하고 있는 듯 합니다.



 누구보다 강한 생활력으로 하루하루 살아온 아동학과 졸업반의 보호종료아동 아영. 돈이 필요했던 아영은 6개월 아들 혁이를 홀로 키우는 워킹맘 영채의 베이비시터가 됩니다.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혁이를 키워보려는 영채는 사랑 가득한 아영의 모습에 조금씩 안정을 되찾죠.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혁이에게 발생한 사고의 책임을 두고 갈라선 둘은 거대하고도 차가운 현실의 벽과 마주하게 됩니다.


 어두운 곳에도 빛이 있음을, 빛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증명하려는 영화입니다. 손가락질받는 것이 두려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좀 어떠냐고 당당하게 되물을 용기를 주려는 영화죠. 이미 지나갔거나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매달리는 대신, 오늘과 지금에 충실하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위안을 향합니다.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지금의 나는 이미 무너졌기에 무언가를 해내거나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이는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묻어버리는 것을 넘어 도움과 위로의 손길마저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지죠. 류현경의 영채가 이 고리에 갇혀 자아를 잃어버린 인물이라면, 김향기의 아영은 이를 끊어내고 어떻게든 전진하려 애쓰는 인물입니다.


 때문에 당연히 영화의 초점은 아영에게 맞춰집니다. 10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아영은 계속되는 불행의 시작점에도 좀처럼 굴하지 않습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포기하라고 말하고 또 행동함에도 그를 끊어낼 내적 의지를 끊임없이 다집니다. 어린 나이에 무너져도 몇 번을 무너졌을 일이 영화 내내 이어지지만 결코 굴하지 않습니다.



 대단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살다 보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 뻔한 구렁텅이에 들어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 틀렸음을 자신의 힘으로 증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틀렸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불행을 전염시키고 있던 영채에게, 영채처럼 손쉬운 선택에 잠식된 많은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아이를 돌봐야 합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의 미래가 걸려 있습니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시작이 걸려 있습니다. 스스로 움직이기 전까지는 제아무리 주변에서 떠들거나 떠밀어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능만큼 좋은 동기는 없습니다. <아이>의 아이는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시작점인 셈이죠.



 메시지 전달법이 아주 세련된 영화는 아닙니다. 아영의 굳건함을 드러내기 위해 불행을 밀어넣는데, 친구 경수나 변호사 승우 등 이야기의 줄기가 되는 아영과 영채, 혁이의 이야기와는 전혀 무관한 사건들도 끼어 있어 다소 작위적이라는 인상이 있죠. 아영을 유일한 주연으로 삼으려는 의도와 영채까지의 두 명을 공동 주연으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충돌한 지점이 더러 보입니다.


 아영의 발목을 잡는 사람들의 명단을 꼽으면 영채가 꽤 위에 나올 것이라는 사실도 영화의 뒷맛을 썩 좋게 하지는 못합니다. 아주 냉정히 말하자면 혁이를 모든 행적의 면죄부로 삼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죠. 못될 때는 한없이 못됐지만 사실 잘 몰라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것이라고 이야기하기엔 그와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한 채 사라져간 캐릭터들도 꽤나 많습니다.



 포스터 카피처럼 세상에 홀로 맞서던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 가족의 새로운 의미를 되새기는 영화라고 수식하기엔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가족은 수단일 뿐, 힘들고 불행하다는 생각이 그 고달픔과 불행을 강화하고 있음을 자각하라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합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게 들리는, 그러면서도 누군가 보듬어 주고 달래 주길 바라는 사람일수록 받아들일 지점이 더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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