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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Sep 12. 2018

<물괴> 리뷰

익숙한 혼종


<물괴>
★★


 할리우드는 여름과 겨울 시즌을 노리지만, 충무로 한정 성수기로는 명절을 빼먹을 수 없습니다. 이번 추석 역시 배급사별 네 편의 대작이 줄을 서고 있죠. CJ의 <협상>, 메가박스플러스엠의 <명당>, NEW의 <안시성>이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포문을 가장 먼저 연 것은 롯데의 <물괴>입니다. 듣자하니 입소문 내는 데에도 혈안이 되어 시사회 일정도 제비뽑기로 정했다고 하죠.



 중종 22년, 거대한 물괴가 나타나 백성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물괴와 마주친 백성들은 그 자리에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살아남아도 역병에 걸려 끔찍한 고통 속에 죽는다는 소문이 퍼지죠. 모든 것이 왕위를 노리는 관료들의 계략이라 여긴 중종은 옛 내금위장 윤겸을 궁으로 불러들여 수색대를 조직합니다. 그렇게 윤겸과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료 성한과 외동딸 명, 왕이 보낸 허선전관은 물괴의 실체를 찾아 길을 나섭니다.

 기술의 발전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충무로의 괴수물은 한 편 한 편이 특별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제외하면 <차우>, <7광구>, 멀리 가면 <용가리>까지(더더욱 멀리 가면 <불가사리>까지도 나오겠지만요), 한국에서 '시도한' 영화라는 의의 이상의 결과를 냈던 작품은 드물죠. 이번 <물괴>는 사극과 괴수물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더욱 실험적인 지위를 가져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물괴>는 꽤 흥미로운 시점에서 괴수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괴수의 확실한 존재를 밝히지 않는 것이죠. 흉측한 괴물이 사람들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도 모자라 스치기만 해도 삽시간에 죽어 버리는 병균까지 옮기다니, 그러지 않아도 혼란한 민심을 흔들기에는 더없는 이야기입니다. 두 눈으로 본 적도 없는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철석같이 믿으며 불안과 공포를 전염시키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듯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내 자신이 가져갈 수 있었던 장점들을 하나씩 포기합니다. 그리고는 멈추지 않고 단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왕위를 노리는 간신들의 암투, 괴수물의 액션은 물론 남자 대 남자의 우정, 젊은 남녀의 사랑, 뜨거운 부성애, 심지어 자잘한 코미디까지, 약간의 여지만 있어도 죄다 바구니에 담으려 듭니다. 각각의 장면에만 어울리는 속성을 되는 대로 갖다 붙이다 보니 일관성이 떨어집니다. 

 전하려는 말의 무게에 비해 그를 전달하는 방식은 숙고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절벽도 뛰어오르는 괴물을 가두겠다고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타넘을) 궁의 문을 닫는 것이 최후의 계획이라거나, 눈이 퇴화해 소리에 민감하다던 괴물이 산개한 엑스트라들을 추풍낙엽처럼 밟아 버립니다. 딱히 필요하지 않은 장면들을 위해 정말 필요한 장면들을 희생합니다. 괴물의 등장과 함께 장점과 잠재력이 사라지는 괴수물이라니, 서글픈 역설입니다.



 이 쪽의 교훈과 저 쪽의 서사, 요 쪽의 개그와 조 쪽의 연설이 뒤섞이며 캐릭터들의 매력도 증발합니다. 특히 박성웅의 진용과 최우식의 선전관은 그 파도에 휩쓸려 존재감을 잃은 대표적인 피해자들입니다. 반면 혜리의 명이는 캐릭터를 모든 상황에 개입시키려는 과욕이 무리수가 되었구요. <조선명탐정>의 영역까지 넘보는 결말은 영 좋지 못한 의미의 화룡점정입니다. 그렇게 모든 쪽으로 뻔해지며 새로움이라고는 괴수의 울음소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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