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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17. 2021

<완다비전> 시즌 1 리뷰

우리 완다 부둥부둥 우쭈쭈


<완다비전> 시즌 1

(WandaVision: Season 1)

★★☆


 2020년은 <아이언 맨>이 나온 2008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마블 스튜디오가 단 한 편의 극장 개봉작도 내놓지 못한 해였습니다. 당초 개봉 예정작이었던 <블랙 위도우>가 4월에서 11월로 미뤄질 때만 해도 한 편으로 만족해야겠다고 예상했지만, 결국 해를 넘기고 말았죠. 불행 중 다행으로 TV 시리즈로도 세계관 확장을 꾀한 마블의 <완다비전>만이 팬들의 목마름을 축여 주었습니다.



 연이은 사건으로 친오빠와 연인까지, 사랑했던 모든 사람을 잃은 완다 막시모프. 한동안 종적을 감췄던 그녀가 어느 날 한 시골 마을에서 발견됩니다. 놀랍게도 그녀의 곁엔 타노스의 손에 파괴된 그녀의 연인 비전이 함께하고 있죠. 이에 사건 관계자들과 당국은 진상 파악을 위해 팀을 급파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진 그녀의 힘은 누구의 접근은 물론 탈출마저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마블이 기존 세계관 출연진들을 활용해 TV 시리즈를 내놓은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제시카 존스>, <루크 케이지>, <아이언 피스트>, <데어데블>과 그들이 뭉친 <디펜더스>도 있었고, 인기리에 종영한 <에이전트 오브 쉴드>나 <에이전트 카터> 등 벌써 머릿수도 많아졌죠. 그러나 어느 모로 보아도 영화 쪽 세계관에서는 끼워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더니 슬프게도 공중분해 엔딩을 맞이했습니다.



 이번엔 이야기가 다릅니다. 외부 방송사가 아닌 디즈니 본인들의 스트리밍 채널을 통해 직접 공개하고, 출연진부터 자본 규모까지 열과 성을 다한 티를 팍팍 냈죠. 올해만 해도 <완다비전>을 시작으로 다음 주에 시작되는 <팔콘과 윈터 솔져>, 그 이후 따라붙는 <로키>까지 라인업이 아주 짱짱합니다. 멤버 구성을 보면 단순한 외전이 아니라 정말로 극장판 세계관의 연장선이자 일부라고 보아야 합니다.


 첫 주자인 <완다비전>부터 그렇습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토르: 라그나로크> 사이에 사라졌던 헐크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 이후 <닥터 스트레인지 2>로 이어지는 완다 막시모프의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들려주죠. 30분짜리부터 50분짜리까지 총 아홉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엘리자베스 올슨, 폴 베타니를 필두로 반갑고 충격적이기까지 한 주조연진을 자랑합니다.



 TV 시리즈라고 해서 살살 나갔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애초에 완다가 염력과 변신 등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초능력의 소유자다 보니 제작비는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죠. 9개 에피소드에 총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들였다는데, 이는 무려 <토르: 라그나로크>나 <아이언 맨 3>보다 높은 금액입니다. 초반 에피소드들이 단순한 흑백 시트콤인 걸 고려하면 실로 엄청난 숫자입니다.


 흑백 화면비처럼 실험적인 연출도 시도하고, 또 그를 활용한 떡밥이나 복선을 후반 에피소드에 해결하는 등 보는 맛이 꽤나 좋습니다. 한 번 끝나면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TV 시리즈의 강점 혹은 약점을 십분 활용해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여유도 부리구요. 엄청난 인기 덕에 후반부 에피소드 공개일엔 디즈니 플러스의 서버가 일정 시간 마비되는 추이가 매주 반복되곤 했습니다.



 그렇게 풀어놓는 이야기는 꽤나 야심찹니다. 쉴드가 있으니 소드(Sentient Worlds Observation and Response Department, S.W.O.R.D.)라는 단체도 만들어냈고, <엔드게임> 이후의 세상과 지금껏 단독 영화가 없어 깊은 곳까지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던 완다 막시모프의 내면까지 탐구하죠. <토르>, <앤트맨>, <캡틴 마블> 등 다른 시리즈들과의 작은 연결점도 하나씩 집어넣구요.


 그 중심엔 당연히 완다가 있습니다. 엄청난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자신의 현실 조작 능력으로 하나의 마을을 도피처로 탈바꿈시키죠. 그 곳에서라면 남편 비전이나 귀여운 이웃들과 함께 모든 것을 잊고 알콩달콩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면할수록 덩치를 키우는 깊은 곳의 진실과 그를 추적하는 것을 넘어 이용하려는 세력의 등장으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는 구조죠.



 주인공이니 선으로 시작합니다. 그런 선을 가로막는 세력은 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의 선함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상대가 악함을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합니다. 그것이 바로 <완다비전>이 택한 방식입니다. 비전을 하나의 인격이 아닌 대량 살상용 안드로이드로밖에 보지 않는 소드의 헤이워드나 후반부 완다의 힘을 노리는 누군가의 비인간성으로 완다의 순수함과 결백함을 반증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완다는 누군가의 눈엔 인간이 아닌 것이 당연한 안드로이드를 자신의 연인이라 생각했습니다.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더라도 그를 잃은 슬픔으로 하나의 마을을 통째로 점거했습니다. 그 곳의 주민들은 정신 조작을 당해 완다가 만들어낸 세상의 부품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완다는 제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고, 여기 가만히만 놔두면 조용히 잘 살겠다고 울부짖습니다.



 완다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초반부에야 본의 아니게라도 그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완다비전>은 후반부를 넘어 마지막화에서까지 이 입장을 고수합니다. 심지어 가족애에서 비롯되는 신파까지 끼얹어, 모니카의 입을 빌려 기어이 완다의 숭고한 '희생'을 강조하죠. 당장 어벤져스 시리즈의 악당으로 등장해도 무관한 설정임에도 위대한 찬사의 대상이 됩니다.


 세계관 전작들의 악당들을 떠올려 보면 이 시리즈가 얼마나 주인공 친화적인 관대함으로 억지를 부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애초에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주제의식과도 정면 충돌합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사실상 자신들의 과오를 만회하느라 소코비아라는 국가를 희생한 결과물이었고, 그렇게 탄생한 <시빌 워>의 지모는 비록 악을 자처했음에도 어벤져스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죠.



 그러나 <완다비전>은 지극히도 1차원적입니다. 완다는 연인을 잃었고 가족을 희생했으니 이보다 더한 형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누구 때문에 어디서 시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언 맨> 시리즈가 토니 스타크를 묘사하는 방식과 얼핏 비슷하지만, 일말의 가책에 고뇌했던 토니와는 달리 완다 쪽은 본인과 친구를 포함한 모두가 진심으로 감싸고 보듬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이쯤 되면 연출의 신선함부터 풍부한 개성까지 평소였다면 커다란 장점이 되었을 요소들마저 이를 정당화하고 눈속임하려는 수단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이마저도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가히 <인크레더블>의 팬 무비에 가까운 퀄리티로 떨어지며 뒷심을 잃구요. 이 모든 것이 절대악 완다의 탄생기였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캐릭터와 대사로 강요한 감성과 동정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최소한 흥행과 잠재력만큼은 분명합니다. 측정 기준에 따라 역대 모든 TV 시리즈들 중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고도 볼 수 있는 수준이죠. 분명 출발은 훌륭했고 증명한 것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마치 너무 정이 들어 버린 친구의 악행을 그럴 리 없다며 인정하지 못하듯, 필요한 곳에서 맺고 끊지 못해 분량은 넘치고 사설은 길어졌습니다. 시작점과 도착점은 맞았으나 여정은 뒷걸음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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