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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r 18. 2021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리뷰

그와 그들의 한풀이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Zack Snyder's Justice League)

★★★


 이 시국이 막은 영화가 있다면 이 시국이 가능케 한 영화도 있습니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OTT 시장 덕에 대기업들의 고객 유치 경쟁이 심화되었고, 원년 강자 넷플릭스와 신흥 대세 디즈니 플러스의 약진에 모두가 잔뜩 달아올랐죠. 이에 워너브라더스의 HBO 맥스가 비장의 카드를 꺼냈으니, 모두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잭 스나이더 버전의 <저스티스 리그>였습니다.



 슈퍼맨의 죽음 이후 비탄에 빠진 지구. 하지만 모두가 슬픔에 젖어있는 이 때, 배트맨 브루스 웨인과 원더우먼 다이아나 프린스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자신을 막을 유일한 존재의 죽음을 기다린,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수 세기를 기다린 존재의 부활이 바로 그것이었죠. 둘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달은 둘은 자신들과 함께할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찾아나서기 시작합니다.


 20세기 액션 영화들 이후 <누구누구의 어쩌구저쩌구> 식 작명은 참 오랜만입니다. 그것도 대부분은 비디오 한 번이라도 더 빌려 보게 만드려는 수입사들의 전략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이번엔 진짜입니다. 잭 스나이더가 운을 떼었으나 <어벤져스>의 조스 웨던이 마무리한 2017년의 <저스티스 리그>가 마침내 말 그대로의 본모습을 드러냈네요.



 사실 조스 웨던판이 훌륭했다면, 최소한 만족스럽기라도 했다면 아무도 찾지 않았을 영화입니다. 완성도를 둔 잡음도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누가 봐도 서로 다른 사람이 만든 것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이어붙은 이질감이 가장 큰 이유였죠. 직전까지의 장면들과 전혀 무관한, 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안전한 공식들로 대강 마무리된 순간이 너무나 많으니 당연히 본래의 의도가 궁금한 이치입니다.


 오래도 걸렸습니다. 스나이더컷이라는 버전 자체의 존재 유무부터 논란의 대상이었고, 추진부터 공개까지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그것만으로 하나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도 될 지경이었습니다. 지구와 크립톤이 일렬로 정렬된 우주의 기운 덕에 빛을 볼 수 있었고, 일부 재촬영 분량도 있기는 하나 대부분은 조스 웨던판에서 잘린 장면들을 재가공하고 재활용했다고 하죠.



 러닝타임이 무려 242분입니다. 4시간이 넘습니다. 이 정도면 이것마저도 원래 공개해달라고 했던 '스나이더컷'은 아닐 겁니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그것도 거물급 주인공들을 줄줄이 등장시키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4시간이면 사실 반칙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편집될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죄다 풀어놓으면 되고, 거기에서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역량의 부족이라는 설명뿐이죠.


 실제로 이번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이를 아주 즐깁니다. 통편집해도 무방한 장면들도 아낌없이 집어넣고, 원래 속도로 돌리면 러닝타임 3분의 1은 아낄 정도의 슬로모션도 남발합니다. 하다못해 화살이 멀리멀리 날아가는 장면에서도 매 초를 곱씹죠. 조금이라도 의미있는 장면만 나오는 집어넣는 OST마저 이를 끝까지 들려주기 위해 영상을 늘어뜨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 특정 영화의 정식 속편들을 이야기할 때에도 전편 관람이 의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최소한 이번 영화는 조스 웨던판 <저스티스 리그>의 감상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영화적인 재미나 완성도를 떠나 같은 영화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죠. 리메이크, 리부트, 리런치 등 역사상 어떤 단어도 이 둘의 관계와는 다릅니다.


 그 관점에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는 2017년 <저스티스 리그>보다 나은 영화입니다. 대부분의 리뷰나 감상에서 지적되었던 장면이나 대사, 전개는 이번 버전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300>이나 <왓치맨>, 심지어는 <배트맨 대 슈퍼맨>으로도 셀 수 없이 증명했던 잭 스나이더 특유의 환상적인 연출은 스트리밍 공개라는 사실이 통탄스러울 뿐이죠.



 줄거리부터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저스티스 리그가 마더 박스들의 융합을 막아야 한다는 대전제만 같을 뿐, 이들이 모이는 과정이나 활약의 양상, 순간순간의 전개는 모두 다르죠. 이전 영화가 버린 장면이 이렇게나 많고 다양하다는 사실에 4시간 내내 놀랄 수 있습니다. 작게는 개입하는 인물들의 비중이 다르거나 크게는 아예 다른 인물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죠.


 덕분에 일부 캐릭터들의 비중과 존재감도 몰라보게 늘었습니다. 에즈라 밀러의 플래시와 레이 피셔의 사이보그가 대표적이죠. 언뜻 훑고 지나갔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았던 각 행동별 동기나 기승전결이 모두 확보되었고, 덕분에 캐릭터의 깊이 또한 비교할 수 없어졌습니다. 아쉽게도 레이 피셔의 경우 그렇게까지 떠안겨 준 스포트라이트를 소화해낼 힘이 떨어지는 모습이 꽤 자주 보입니다.



 코믹스 팬들에게는 더더욱 훌륭한 선물입니다. 최종 악당 자리를 스테판울프가 아닌 다크사이드에게 준 것부터 그러한데, 다크사이드의 이리저리 꺾이는 레이저인 '오메가 생션'이나 이전판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수많은 조연과 카메오들이 팬들의 가슴을 뛰게 하죠. 소위 말하는 덕후들이 무엇을 바라고 기다리는지 꽤 공들여 분석한 티가 여러 군데에서 납니다.


 이것이 역효과가 날 때도 물론 있습니다.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브루스가 꾸는 꿈 장면처럼, 그냥 슈퍼히어로 액션이 보고 싶어서 간 관객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장면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순간도 더러 있죠. 원작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겨냥할 땐 영화의 재미만으로 자신이 본 장면을 능동적으로 이해할 욕구라도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이번 영화 역시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맴돕니다.


 배리 앨런이 아이리스 웨스트를 구해내는 장면이나 사이보그가 자신의 능력을 하나하나 탐구하는 장면 등도 또 다른 욕심을 부린 결과물입니다. 앞뒤 전개상 통으로 잘라내도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순전히 팬들에게 이런 장면들이 있었음을 거의 고발하다시피 집어넣은 장면들이죠. 글을 하나의 흐름이 아닌 잘 쓴 문단의 연속으로 구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마저도 대부분은 잭 스나이더의 이전 DC 작품들과 조스 웨던판 <저스티스 리그>의 상위 호환이지만, 이를 완전하고 순수한 성과로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음을 수많은 사람이 수 년간 씹고 뜯은 작품이라면 자연히 오답 노트는, 그것도 정상 분량의 2배를 가져간 노트는 멀쩡한 것이 당연합니다. 이마저도 망치면 스스로의 능력을 맹신하거나 능력이 아예 없는 것이겠죠.


 이전 버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적당한 장면은 사실 맨 처음에 기획된 스나이더판에 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진실은 본인만이 알겠지만, 조스 웨던판과 동시에 공개된 것이 아닌 이상 최대한 공정한 비교를 위해서는 러닝타임이라도 비슷하게 맞춰야 했죠. 흐물대는 클라이막스나 섞일 듯 섞이지 않는 캐릭터들의 시너지 등 지금까지도 여전한 단점들엔 더 이상 내세울 변명이 없습니다.



 따져 보면 여기에 쓰인 재료들도 전부 다 준 뒤 4시간짜리로 자유롭게 편집하라고 하면 조스 웨던 또한 또 다른 방식으로 볼 만한 <저스티스 리그>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분명한 성과이자 DC 팬들에게는 간만에 찾아온 축제 기회가 아닐 수 없겠지만, 멀리 사라진 가능성의 더미에 땅을 치기엔 여러 가지 의미로 늦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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