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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pr 03. 2021

<노바디> 리뷰

극한의 정당방위


<노바디>

(Nobody)

★★★☆


 2015년 1인칭 액션 영화 <하드코어 헨리>를 만들었던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이 돌아왔습니다. 영화는 물론 <브레이킹 배드>와 <베터 콜 사울> 등 TV 시리즈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밥 오덴커크를 주인공으로 코니 닐슨, RZA, 크리스토퍼 로이드, 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프 등이 이름을 올렸죠. 1600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 덕분(?)인지 지금 시기에도 스트리밍이 아닌 극장행을 택했습니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 허치 맨셀. 출근부터 분리수거까지 잊지 않으며 일과 가정 모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하고 아들에게는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침입한 무장 강도에게 한 번의 반항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결국 오랜 세월 깨우지 않으려 했던 또 하나의 모습이 고개를 듭니다.



 포스터에서부터 <존 윅>의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실제로 <존 윅>의 제작자인 데이빗 레이치와 작가 데렉 콜스타드 등 그 멤버들이 대거 참여했고, 주연 밥 오덴커크와 바로 그 토비 맥과이어(?!)도 제작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죠. 제작진의 다른 작품들이 <데드풀>, <분노의 질주: 홉스 & 쇼> 등인 걸 보면 이번 영화의 지향점도 아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네이버에 기고했던 칼럼 중 소위 '직장인 판타지'를 소재로 한 영화들 목록을 정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평범하다못해 찌든 일상에서 말 그대로 영화와 같은 사건에 휘말리며 스스로 자신의 특별한 모습을 재발견하는 영화들을 모았었죠. 벤 스틸러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부터 제임스 맥어보이의 <원티드>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은 명단이었습니다.


 이번 <노바디>도 딱 그 명단에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일은 지겹고 가족들에게도 무시당하는 한 가장이 알고 보니 이보다 더 무서울 수 없는 인간 병기라는 설정이죠. 무시무시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보 기관들도 그 앞에서는 설설 기었지만, 합법적인 경로를 제외하고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한 탓에(!) 과거를 뒤로한 조용한 삶이 가능했던 겁니다.



 사회 생활 열심히들 하느라 모두의 가슴 속 한 명쯤 숨어 있는, 최소한 숨겨 놨다고 생각하는 파괴자를 정면으로 끄집어냅니다. 화끈하고 시원시원합니다. 손에 거치는 건 닥치는 대로 부수고 터뜨립니다. 내가 진짜 참을 대로 참으면서 깨끗하게 한 번 살아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된 거 갈 때까지 가 보겠다며 전속력으로 질주합니다. 누가 어떤 경고를 하든 허치에겐 애들 장난에 불과합니다.


 <존 윅>과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액션부터가 그렇습니다. 존 윅이 세련되고 깔끔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액션을 보여주었다면, 허치 맨셀은 맞을 거 다 맞고 숨이 가빠 비틀대면서도 죽이겠다고 덤비는 또 다른 의미의 실전 액션입니다. 칼에도 수 차례 찔리고 뼈는 몇 군데 부러지고도 남았을 것 같지만, 이 날만을 그리워하며 흘러드는 아드레날린을 반기는 베테랑의 무서운 즐거움이 배어나오죠.



 그러면서도 <존 윅> 시리즈 특유의 장점도 유지했습니다. 일정한 세계관의 한가운데에 관객들을 던져 놓고 그를 능동적으로 파악하게 하는 구성이죠. 관객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을 존 윅은 익숙하다는 듯 인사를 건네고, 콘티넨탈에서 사용하는 금화나 문신 등 영화를 이미 지배하고 있던 절대적인 관계와 규칙이 전개를 돕습니다. 보통은 진입 장벽이 될 것들이 영화의 성격과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죠.


 무엇보다도 60세의 나이에 액션 배우로 거듭난 밥 오덴커크의 이미지 변신이 영화의 중심을 책임집니다. 배 나온 코미디 배우 크리스 프랫이 스타로드가 되고 로맨스물의 왕자였던 콜린 퍼스가 킹스맨이 된 그 때의 감상이 되살아납니다. 듣자하니 이 영화를 위해 무려 2년 반의 트레이닝을 거쳤다는데, <존 윅 3>를 준비 중이었던 키아누 리브스와 할리 베리의 바로 옆에서 자괴감과도 싸워야 했다고 하죠.



 그렇게 모든 것이 준비된 91분 동안 짧고 굵게 몰아칩니다. 화끈한 액션 그 자체, 그리고 변신에 성공하는 허치 맨셀이라는 인물까지 크게 두 가지의 강력한 매력 포인트가 공존합니다. 겁이라는 것이 있었던 시절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허치 맨셀의 악에 받친 몸싸움은 연필과 강아지로 무장한(?) <존 윅>에 이어 또 하나의 팬층 두터운 액션 시리즈를 제대로 예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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