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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pr 05. 2021

<노매드랜드> 리뷰

길에서 찾는 길


<노매드랜드>

(Nomadland)

★★★☆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까지 굵직한 부문마다 이름을 올린 <노매드랜드>입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데이빗 스트라탄 등이 출연하죠. 2015년 장편 데뷔한 중국계 감독 클로이 자오 감독의 신작으로, 자연 풍광 가득한 예술 영화 쪽 전문임에도 올해 말 개봉 예정인 마블 스튜디오의 <이터널스>를 맡으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2008년 경제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홀로 남겨진 펀. 추억이 깃든 도시를 떠나 작은 밴과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의 세상으로 떠납니다. 그 곳에서 펀은 각자의 사연을 안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을 만나고, 광활한 자연과 길 위에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그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제목에 들어간 '노매드(nomad)'의 사전적 정의는 '방랑자' 내지는 '유목민' 쯤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문맥을 반영해 현재 통용되는 단어로 의역해보자면 '자연인' 정도가 가장 알맞을 것 같네요. 넓디넓은 평지와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는 산이라는 국가별 환경 차이가 있을 뿐, 세상과 사람에 치여 자신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고 판단한 곳으로 향한 뿌리는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그렇게 <노매드랜드>는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는 자연인들의 삶을 조명합니다. 이렇다할 기승전결 없이,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연기하는 펀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녀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명씩 들려줍니다. 연인, 가족, 직장 등 차마 소리내어 말하기도 아픈 기억 탓에 지붕이 있는 삶을 멀리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구성만 놓고 보면 영화와 다큐멘터리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죠.


 이는 <노매드랜드>가 택한 촬영 방식 덕분입니다. 실제로 극중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펀과 데이빗 스트라탄의 데이브를 제외한 대부분의 캐릭터는 배우가 아닌 실제 유랑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펀은 이들의 전체이자 일부를 대표하는 리포터이자 진행자 역할을 하는 셈이고, 그를 통해 스크린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를 능동적으로 제거하죠.


 자연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등장하는 밥 웰즈는 이 접근법의 정점 중 하나입니다. 실존하는 인물이 스스로를 연기하는 사례에 가깝지만,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털어놓는 사별한 아들 이야기는 실제 본인의 이야기입니다. 반면 이 대화에서 교환되는 펀의 이야기는 각본상 지어낸 이야기죠. 다시 말해 흔히 진실과 허구를 교묘히 뒤섞어 덩치를 키우는 작업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한 결과물이 되겠습니다.



 여기에 스스로 감독 테렌스 맬릭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공공연히 피력했던 클로이 자오의 영상미가 더해집니다. 이 때의 영상미란 마치 진열용 TV를 보는 듯한 대자연의 풍광을 가리키죠. 이 사람들이 자연으로 파고들었던 이유엔 출발점과 도착점이 있을 겁니다. 그 출발점은 모두 다르지만 도착점은 이 곳으로 같습니다. 영화는 이 곳이 그들의 도착점이 된 이유를 단어가 아닌 화면으로 설명합니다.


 이 때문인지 <노매드랜드>는 제작비가 고작 500만 달러에 불과함에도 본토에서는 무려 아이맥스 상영을 성사시켰습니다. 거대자본 블록버스터들의 눈요기용으로만 여겨졌던 아이맥스 화면이 마치 차세대 영상 기기 출시 초반의 자연 다큐멘터리 유행 시절로 회귀한 것만 같죠. 아쉽게도 2주짜리 이벤트용 상영을 제외하면 현지에서도 스트리밍 공개된 영화라 국내에선 사실상 불가능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상기한 이유들 탓에 대중 친화도는 낮고 진입 장벽은 높은 영화입니다. 각본의 아래쪽엔 2008년 미국 경제 붕괴가 자리잡고 있어 국내 관객들에게는 어필할 여지가 더욱 부족하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그보다 한 발 더 깊은 곳엔 끝내 다시금 붙잡아 보는 믿음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관계를 향한 믿음이죠. 사람을 치유하는 건 결국 또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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