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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26. 2021

<크루엘라> 리뷰

주인공 인형놀이


<크루엘라>

(Cruella)

★★☆


 그대로 만들어도 어색하고 바꿔 만들면 더 어색한 디즈니 실사영화 목록의 신작, <크루엘라>입니다. 주인공 엠마 스톤과 함께 엠마 톰슨, 조엘 프라이, 폴 월터 하우저, 마크 스트롱, 커비 하웰 밥티스트 등이 이름을 올렸죠. <아이, 토냐>의 크레이그 질레스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101마리 달마시안>의 바로 그 크루엘라를 스크린에 옮겨 담았습니다.



 어릴 적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여의고 혈혈단신으로 런던에 도착한 에스텔라. 우연히 만난 재스퍼, 호레이스와 함께 도둑질로 길거리 생활을 연명하던 그녀는 서서히 자신에게 대단한 예술적 재능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매일같이 동경하던 한 백화점에 취직하게 된 에스텔라는 떼놓을 수 없었던 과거와 운명적으로 재회하고,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인 '크루엘라'로 다시 태어나게 되죠.


 같은 집안의 <말레피센트>나 청불 등급(미국 기준) 영화들 중 역대 최고 흥행에 성공한 <조커>처럼, 이번 <크루엘라> 역시 고전 악당의 기원을 다루며 일종의 재해석을 시도합니다. 모피와 담배를 사랑하며 달마시안의 가죽(!)에 집착하는 옆집 부자였던 크루엘라 드 빌이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겪으며 자라 왔기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는 영화죠.



 때문에 본의 아니게 전작의 역할을 하는 <101마리 달마시안>의 크고 작은 설정들을 기억하거나 알아두고 가는 것이 의외로 중요합니다. 세세한 줄거리까지 파악할 시간이 없다면 최소한 크루엘라의 성인 드 빌(De Vil)이나 저택 이름인 헬 홀(Hell Hall)을 포함해서 재스퍼와 호레이스, 로저와 아니타, 퐁고와 퍼디타 등 이름만 보고도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정도는 되어야 하죠.


 물론 전작을 알고 간다고 해서, 특히 전작에 유별난 애정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번 <크루엘라>에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옮겨 붙으리라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각색과 창작은 종이 한 장 차이인 경우가 많고, 각색 중에서도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을 존중하는 각색이 있는가 하면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하는 각색이 있기 때문이죠.


 크루엘라라는 캐릭터 자체의 기승전결만 본다면 전자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까지 모두 고려한다면 영화 <크루엘라>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니코틴 중독과 악독한 성미를 갖게 된 이유로 불우한 성장 환경과 패션 업계에서의 지대한 스트레스를 제시하는 건 흥미로운 배경 설명이 되겠으나, 아니타 달링의 인종과 직업을 바꾸며 팬들의 논쟁거리를 만드는 접근은 필요 이상으로 모험적이죠.



 <101마리 달마시안>과의 연결성을 떠나 하나의 독립된 영화와 각본으로 따졌을 때에도 <크루엘라>의 매력은 다소 들쑥날쑥합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주인공이 파란을 일으키며 하나의 아이콘으로 거듭나는 문맥은 매력적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실현되는 과정에서의 디테일은 꽤나 어설프거나 엉성하게 넘어가는 순간이 많죠.


 근본적인 이유로는 <크루엘라>가 실사와 만화가 각각 가지고 있는 전개상의 편의를 스스로의 필요에 맞춰 취사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절벽에서 밀어 죽이는(!) 장면과 주인공이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를 휘적거리며 여러 장정들을 때려눕히는 장면이 공존합니다. 평범한 주먹질조차 뻔히 허공에 휘두르는 연출을 하는 영화가 범죄와 악을 논하고 있으니 큰 그림의 아귀가 맞지 않죠.



 이 모든 이질감이 선사하는 빈 자리 탓에 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의 카리스마에 많은 부분을 기댑니다. 할리 퀸 영화들처럼 인형놀이를 하듯 미술팀과 의상팀의 노고까지 녹여 캐릭터를 향한 팬심을 겨냥하죠. 자신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만끽하며 세상 따위 내 발 밑에 굴복시키겠다는 두 인물의 자기애는 스스로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제 3자들의 자존감을 자극할 필살기입니다.


 다시 말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주인공의 안과 밖 치장에 쏟아부어 그 이외의 것을 덮으려는 영화입니다. 좋게 말하면 선택과 집중이고, 반대로 말하면 잠재력의 부족입니다. 얽힌 이름들만 싹 바꾸면 그저 천부적인 패션 디자이너의 탄생을 다룬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죠. 오히려 의도적으로 꾸준히 등장하는 달마시안들은 크루엘라와 바로네스의 대립이라는 중심 줄기에서 겉돈다는 인상마저 받을 수 있습니다.



 아마 감독도 관객과 팬의 입장이 되어 엠마 스톤에게 많은 힘을 실어주려고 했던 듯 합니다. 영화 중반부 분수대 앞에서 크루엘라가 자신의 내면을 독백으로 풀어내는 롱테이크는 그 의도의 정점이 되겠구요. 그러나 배우의 넘치는 역량을 담아내기에 크루엘라라는 그릇은 완벽히 준비되어 있지 못했고, 그런 캐릭터를 유일한 뼈대로 삼은 영화는 단단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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