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가서 명중
2000년 장편 데뷔작 <Blinkende lygter(Flickering Lights)>부터 모든 영화들을 매즈 미켈슨과 함께하고 있는 앤더스 토마스 옌센 감독의 신작, <라이더스 오브 저스티스>입니다. 덴마크 감독의 덴마크 영화인지라 원제도 덴마크어로 되어 있죠. 뜻은 '정의의 기수'로 영어판과 동일합니다. 이번에도 함께한 매즈 미켈슨과 니콜라이 리 코스, 라스 브리그만, 안드레아 게드버그 등이 출연했죠.
가족과 떨어진 채 지내던 현직 군인 마르쿠스는 열차 사고로 갑작스레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계획 범죄임을 주장하는 두 남자가 등장하죠. 우연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고자 평생을 바쳤다는 둘은 마르쿠스와 함께 목숨을 건 추격전을 시작하고, 무너진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얼핏 보면 인간 병기급 주인공이 혈혈단신으로 나서 앞에 거치는 것들은 죄다 썰어 버리는 줄거리가 예상됩니다. 얼마 전만 해도 밥 오덴커크의 <노바디>가 비슷한 전개로 간만의 액션 쾌감을 선사한 바 있구요. 카리스마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매즈 미켈슨이 나섰으니, 또 한 번 자신의 과거를 안고 조직 하나쯤은 그대로 부숴 버리는 전개를 기대하게 되죠.
분명 초반만 해도 영화는 그 기대를 그대로 실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가 보아도 비극적인 열차 사고가 사실은 치밀하게 계획된 잔혹한 범죄였음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만, 워낙 허황된 예측으로 보이는 터라 공권력을 포함한 누구도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아끼는 아내를 잃은 사람에게는 그 작은 의심 하나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여정의 출발점이 되죠.
그런데 영화는 중후반부에 걸쳐 노선을 변경합니다. 복수극을 가장해 결핍된 사람들의 내면을 파고듭니다. 주인공인 마르쿠스는 물론 딸 마틸드, 얼떨결에 동료가 된 오토와 레나트, 에멘탈러 모두 각자의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들은 갖고 있는 사연부터 취하는 태도까지 서로 섞일래야 섞일 수 없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시간을 다툼과 화해로 보내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홀로 담아두며 감내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그렇게 접근했다간 곪아서 돌이킬 수 없어지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후자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 자신을 드러내고, 그것이 가져온 어떤 결과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치유하는 상처입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없기에 대부분은 전자 취급을 하며 흉터를 지니게 됩니다.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파 보았던 사람들 중 다른 사람들이 자신처럼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다시 꺼내면서까지 그를 실천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액션은 살에 불과하고, 누구보다 용기가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누구보다 용감해 보이는 사람에게 악수를 내미는 미묘한 역설과 이질감이 진정한 뼈대가 되어 영화를 지탱합니다.
기대를 벗어났지만 오히려 더욱 흥미롭습니다. 안정적인 상업성을 택하는 주류 영화들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아픔이라는 것은 객관적이면서도 사적이기에 자칫 이를 무기 삼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거나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는데, 선악 구도와 유머를 적절히 섞어 마지막 순간까지 균형을 맞추는 데에도 그럭저럭 성공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