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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Sep 15. 2018

<명당> 리뷰

땅에 묶이고 악에 매여


<명당>
★★★


 <관상>이 처음 제작될 때만 해도 그럴 계획이었던가 싶지만(?), 이어진 <궁합>과 함께 '역학 3부작'을 완성한 박희곤 감독의 <명당>입니다. 제목만으로도 거대한 퍼즐의 조각을 하나씩 나눠가진 듯 하죠. 사극에 로맨틱 코미디를 끼얹은 듯했던 <궁합>이 관객수 900만 명의 <관상>에 비하면 주춤했던 듯 하죠. 하지만 조승우, 지성, 김성균, 백윤식, 문채원까지 이름을 올린 <명당>은 그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가져가기엔 충분했습니다. 



 인간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한다는 땅의 기운을 점치는 지관 박재상.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던 장동 김씨 가문의 계획을 막으려던 그는 가족을 잃는 참사를 당하죠. 13년 후, 더욱 공고해진 장동 김씨 세력에 맞서 세상을 뒤집고 싶은 왕족 흥선이 재상 앞에 나타납니다. 뜻을 함께하게 된 둘은 실세 김좌근 부자에게 접근하지만, 왕까지도 발 밑에 굴리는 그들의 뿌리를 뽑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죠.

 <명당>은 소재가 소재인 만큼 <궁합>보다는 <관상>과 큰 줄기를 같이합니다. 콧망울이 어떻고 귓볼이 어떠하니 이러저러한 팔자렷다, 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흥미를 끌었던 그림이 재현되죠. 옆에 자란 나무가 어떻고 수맥이 어떠하니 가문에 이러저러한 일이 있겠다, 하는 예언으로 명성을 떨치는 재상의 입담만으로도 초반이 훌쩍 지나갑니다. 

 그 뒤엔 역시 왕이 될 얼굴/땅을 둘러싼 음모가 펼쳐집니다. <관상>이 후반부에 접어들며 누군가의 얼굴보다는 수양대군과 역모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명당>은 비교적 꾸준한 소재 활용도를 유지합니다. 물론 명당이 정말로 효험이 있다는 마법의 전제가 필요하긴 하지요. 특정한 효과(?)가 있는 명당에 선대의 묘를 모시면 그 효과가 꽤나 직접적으로 발휘됩니다. 



 하지만 <명당>은 고증과 픽션을 토대로 사건을 말이 되게 꾸려내는 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인물에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주인공인 조승우의 박재상부터가 그렇죠. 지관은 땅의 기운을 읽어내는, 주요 설정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명당 판독이 끝난 뒤엔 지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주인공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굳이 결투의 현장에 지관을 동행하는 등의 억지를 부립니다.

 결국 재상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명당이라는 권력에 눈을 팔기에 행동이 뻔해지고, 재상은 언급한 이유로 중반부 이후 존재 의의를 급격히 잃어버립니다. 제 3자의 감정이 이입될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뻔한 선악 대립은 어찌나 티를 내려고 안달인지, '나쁜 사람들'은 어둡고 칙칙한 의상만 골라입은 것은 물론 요샌 디즈니도 안 할 악당 웃음을 몇 번이나 내지릅니다. 옷에 따른 선악의 구분은 더럽혀진 옷에 인물의 심리가 그대로 반영되며 의도를 더욱 명확히 하죠.



 결과적으로 역학 3부작은 역학이라는 소재가 영화화에 아주 적합한 대상은 아님을 간접적으로 증명했습니다. 역학은 결국 운명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기에 그것을 미리 읽어내는 학문이 되는데, 사극에 녹여내는 순간 대부분 역학 없이도 잘만 하던 왕권 다툼에 그치고 말죠. 운명에 순응하는 입장과 바꾸어 나가는 입장 모두 장르를 불문하고 흥미로운 영화들이 많았던 것을 떠올려 보면, 소재에 더욱 충실한 구성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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