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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08. 2021

<블랙 위도우> 리뷰

갔지만 보내지 않으려


<블랙 위도우>

(Black Widow)

★★★☆


 2019년 7월 개봉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이후 만으로 2년이 흘렀습니다. 어느새 일 년에 세 편씩 만났던 마블 영화가 극장에 돌아오기까지 참 오래 걸렸습니다. <베를린 신드롬>의 케이트 쇼트랜드가 메가폰을 잡고 스칼렛 요한슨, 플로렌스 퓨, 데이빗 하버, 레이첼 와이즈, 레이 윈스턴, 윌리엄 허트, 올가 쿠릴렌코까지 힘을 합친 <블랙 위도우>죠.



 시빌 워 사태로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몸이 되어 도피 생활을 시작한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 그러던 중 지금의 자신을 만든 용병 양성소인 레드 룸이 세상으로부터 숨어 반인륜적 작업을 이어 오고 있었음 알게 되죠. 더 이상의 고통과 희생은 없어야 된다는 대의로 무장한 그녀의 곁엔 어벤져스라는 가족을 만나기 전, 기억 속 저편에 잠자고 있던 사람들이 함께합니다.


 시기는 전개상 당연히(...) <시빌 워>와 <인피니티 워> 사이를 다룹니다. 그러면서 나타샤 로마노프라는 캐릭터와 관련해 관객의 입장에서는 짐작만 할 수 있었던 떡밥과 뒷이야기들을 풀어나가죠. <어벤져스> 1편부터 줄기차게 언급되었던 그 부다페스트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환각에서 나왔던 레드 룸은 무엇인지 등 다 말해 줄 테니 여기 앉으라는 영화입니다.



 그렇게 <아이언 맨 2>의 조연으로 시작해 어느덧 어벤져스의 지긋한 원년 멤버 대접을 받게 된 나타샤의 일대기가 펼쳐집니다. 옐레나와 멜리나, 알렉세이, 드레이코프, 메이슨 등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하며 그를 풍부하게 만들죠.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어떤 일을 겪었기에 지금의 나타냐 로마노프와 블랙 위도우라는 인물이 완성되었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습니다.


 캐릭터의 개성대로 기본적으로는 첩보 영화로 분류해야 맞겠습니다.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의 형태나 도덕성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조직'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이 걷는 길을 그대로 걷죠. 수백 수천의 인원을 거느리는 조직의 수장이 개인적인 관심을 둘 정도로 뛰어난 요원이 환멸을 느껴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달리는 전개입니다. 제이슨 본 시리즈부터 <레드 스패로> 등을 떠올릴 수 있겠죠.



 물론 거기에 마블 세계관만이 가능한 향기를 첨가합니다. 혈청을 맞아 초인적인 힘을 내는 슈퍼 솔져, 한 번 본 것은 무엇이든 따라할 수 있는 신체능력의 태스크마스터 등 일반적인 첩보물에서는 등장시킬 수 없는 소재를 개성으로 내세워 영화의 장점을 강화하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듯한 타격감과 피격감 위주의 맨몸 액션이 뒷받침되며 더욱 큰 폭발력을 냅니다.


 의외로 드디어 솔로 영화를 맞이했음에도, 그리고 거기서 오로지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만을 늘어놓음에도 불구하고 나타샤 로마노프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지는 못합니다. 그녀의 기승전결은 이미 여러 영화들을 거치며 완결이 되었고,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히 채워넣을 수 있는 빈 자리를 굳이 보여주겠다는 결정은 오히려 나머지 부분을 망칠 위협으로 변모하기가 너무나도 쉽죠.



 그 반대급부로는 옐레나와 알렉세이 등 새로 등장한 인물들의 개성과 존재감이 있습니다. 마치 <아이언 맨 2>에서 블랙 위도우를 처음 본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과 같은 원리죠. 스포트라이트에 놓일 인물들의 머릿수를 일정 이상으로 유지해야 하는 시리즈에게는 선순환이라면 선순환일 수도 있겠지만, 오롯이 블랙 위도우만의 영화를 기대한다면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지점입니다.


 시리즈를 넘어 세계관을 꾸린 영화들의 신작이 갖는 양날의 검입니다. 마블 영화이기에 별다른 것이 없어도 막대한 기대를 안을 수 있지만, 그에 신나서 벌인 단독 행동이 다른 영화들의 완성도를 건드릴 수 있죠. 쉬운 예를 들자면 이 슈퍼히어로가 이러저러한 악당을 상대하는 동안 저 슈퍼히어로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는 의문이 있겠습니다.



 애석하게도 <블랙 위도우>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시빌 워 사태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는 전제가 있기는 했지만, 후반부 레드 룸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외계 침공을 대비하던 토니 스타크가 정기점검 중에 리모컨 하나로 끝낼 규모입니다. 도망 중인 요원 한 명이 끝장내자고 마음먹자마자 멸망하는 악당이 세계의 질서를 통제하고 있었다는 설정은 우스울 뿐이죠.


 이를 타파하려 무리수를 던지고, 무리수를 상대하려 또 다른 무리수가 등장합니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완전히 통제하는 약물이 난데없이 개발되었고, 그 약물을 단박에 치료하는 해독제도 뚝딱 튀어나왔습니다. 인간의 페로몬과 뒷덜미의 칩 하나로 신체와 정신까지 완벽히 지배합니다. 이럴 거면 힘들게 사람을 양성할 것이 아니라 완성된 누군가를 강제 포섭하는 접근이 당연함에도 애먼 곳에 힘을 빼고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이 꽤나 명확히 분리되는 영화입니다. 나타샤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전자라면 속 빈 강정이었던 레드 룸이 후자입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자리가 바뀌어야 맞고, 그렇지 않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 옳은 수순입니다. 그러나 <블랙 위도우>는 팬들이 블랙 위도우라는 캐릭터에게 내어 준 가슴 속 자리 덕에 균형을 지탱합니다. 진즉 했어야 했던 대우를 이제사 해 주었다는 만족이 감상의 핵심이 되겠습니다.


+ 넷플릭스의 <디펜더스> 때와는 달리, 디즈니 쪽에서는 디즈니 플러스의 드라마 시리즈를 세계관의 동등한 구성물로 취급하는 분위기죠. 온전히 이해하려면 <팔콘과 윈터 솔져>의 배경 지식이 필요한 이번 <블랙 위도우> 쿠키 영상이 그를 증명합니다. 양날인 것만으로도 위험한 검이 무게마저 날이 갈수록 묵직해지는 이 흐름이 뒤늦은 후회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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