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바뀌었고 계보가 이어졌습니다. 마이클 조던과 2D 벅스 버니가 뭉쳤던 <스페이스 잼>은 르브론 제임스와 3D 벅스 버니로 쌍두를 바꾸어 돌아왔죠. 거기에 돈 치들, 세드릭 조, 그리고 미리 알면 재미없는 카메오들로 출연진을 가득 채웠습니다. 제작비는 25년 전1편의 딱 두 배인 1억 6천만 달러를 들였고, 극장 개봉과 동시에 HBO 맥스로도 공개됩니다.
농구보다 게임 제작이 더 좋다는 아들과 오늘도 서먹한 농구 스타 르브론 제임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기와 영향력을 질투한 한 인공지능의 계략으로 가상 세계에 떨어지고(!), 초현실을 넘나드는 농구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위기를 맞이합니다. 그렇게 르브론은 워너브라더스에서 구할 수 있는 친구들과 함께 드림팀을 결성해 일생일대의 시합에 나서죠.
돈과 돈이 만나 더 많은 돈을 만들어내려는 전편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전편이 온갖 브랜드를 그대로 읊으며 영화와 광고 사이에서 표류했다면, 이번엔 워너브라더스의 저작권 창고를 통째로 들고 와서 그 가운데를 마음대로 헤엄치죠. 똑같이 보따리 하나를 그득 챙겨들고 왔음에도 내용물은 예전과 다른데, 그것도 유행이 반영된 거라고 생각하면 흥미롭긴 합니다.
<주먹왕 랄프>가 마블과 스타 워즈는 물론 디즈니 공주란 공주는 다 데려와서 자랑했던 건 애교 수준입니다. <레고 배트맨 무비>에서 보여주었던 곳간을 <레디 플레이어 원> 식으로 풀어냅니다. 애초에 사건의 시발점을 대놓고 워너브라더스 본사 서버(!)로 설정해 둔 데에서부터 본인들이 디즈니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보여주겠다는 야망이 느껴집니다.
그렇게 루니 툰은 물론 <매드 맥스>, <해리 포터>, <왕좌의 게임>, <매트릭스>, <릭 앤 모티>, <그것>, DC 유니버스, 심지어는 <카사블랑카>에 이르기까지 소위 '팝 컬쳐' 팬들을 즐겁게 할 화면으로 러닝타임을 가득 채웁니다. 보는 내내 예전 LA에서 갔던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투어의 추억이 간간이 떠올랐으니 팬심 저격은 제대로 한 셈이죠.
그런데 이 반가운 것들이 묶인 울타리를 영화라고 부르기가 설핏 애매합니다. 전편 역시 설정을 설정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로 일종의 오락거리를 뭉친 덩어리에 가까웠지만, 이번 속편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죠. 물론 가족영화를 지향하며 두툼한 부자 가족애 껍데기를 뒤집어 씌우기는 했으나, 그마저도 비집고 나올 정도로 자유분방한 알맹이 탓에 힘이 부칩니다.
알면 재미있는 것이 있고 알아야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애석하게도 후자에 가깝습니다. 모르면 이야기와 상관없는,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 범람하는 광경을 물음표 가득 띄우며 멍하니 바라만 보아야 합니다. 기승전결의 모양새나 갈등의 맺고 끊음 모두 어른들보다는 아이들을 겨냥해 말랑한 편이지만, 정작 아이들은 이 영화를 만들어진 의의대로 100% 즐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죠.
게다가 전편의 마이클 조던과 너드럭스의 대결은 그래도 농구라고 부를 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점수차가 1000점까지도 벌어지는(...) 르브론 제임스와 군 스쿼드의 농구가 아닌 무언가는 버저비터의 감동을 선사할 전제조차 마련하지 못하죠. 후반부 실사도 3D도 아닌 기술력이 벅스 버니를 넘어 돈 치들에게 다다를 때쯤엔 유치함보다는 기괴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스스로가 스스로와 충돌하는 영화입니다. 바꾸고 진화하려면 더욱 과감해야 했습니다. 뼈대는 가만히 둔 채 리모델링만 거듭하다 보니 과거도 미래도 아닌 무언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루니 툰 친구들이 롤라 버니에게 농구 규칙부터 배우는 장면을 보면 전편은 아예 잊은 모양인데, 스페이스도 잼도 준비하지 않은 채 레거시만 챙기려다 자멸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