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방탈출 좋아했네
매 해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는 B급 영화들 가운데에도 생존자는 언제나 있습니다. 하나만 터지면 초대박이라는 믿음으로 자극적인 소재와 아드레날린을 깨우는 데에만 집중하는 영화들이죠. 2019년 단돈 9백만 달러를 들여 무려 1억 55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이스케이프 룸>도 영광의 명단에 합류하는 데 성공했고, 그렇게 2년만에 덩치를 불려 다시 돌아왔습니다.
출구 없는 탈출 게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조이와 벤. 게임을 설계한 의문의 조직 미노스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뉴욕에 도착한 두 사람은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휘말려 지하철에 갇히고 맙니다. 순간 다른 칸과 분리된 열차 안에는 초고압 전류가 흐르고, 그 곳에 타고 있던 6명 모두 과거 게임의 최종 승리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진정한 챔피언들의 토너먼트가 시작됩니다.
수상하게 돈이 많은 미지의 악당들이 아무나 잡아다가 생존 게임을 벌입니다. 동종 업계 영화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설정이고, 돈과 생존 앞에서 끝도 없이 추악해지는 인간을 고발한다며 의미를 가져다 붙이기도 용이하죠. <이스케이프 룸> 시리즈는 거기에 방탈출의 껍데기를 씌워 좀 더 대중적인 노선을 택했습니다. 서바이벌 장르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아닌 것만으로도 그를 짐작할 수 있구요.
전편이 대놓고 속편을 예고하면서 끝나기도 했지만, 전편의 특정한 인물이나 소소하게 지나갔던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는 장면이 많아 복습은 필수입니다. 그 때문인지 지난 이야기를 요약하는 초반부를 포함해 전편의 장면들은 회상으로 떠올리는 구간도 더러 있죠. 보긴 봤지만 몇몇 장면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이전의 인물 관계도 정도는 파악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새로 펼쳐지는 탈출은 <이스케이프 룸> 시리즈의 무한 증식 가능성을 활짝 열어둡니다. 새로운 참가자와 새로운 방만 있으면 에피소드 형식으로 한없이 찍어낼 수 있는 구조죠. <앤트맨> 시리즈의 배스킨라빈스처럼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미노스의 마수가 뻗치지 못하는 곳은 없으니, 그저 미노스는 계획이 다 있다는 문장 하나만 있으면 많은 설명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영화 스스로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실험한다는 인상까지 남깁니다. 처음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배경 설명은 한두 줄로 끝이 나고, 어차피 중요한 것은 주인공 조이와 미노스의 대결이기에 누가 어떻게 죽어나가든 딱히 관심을 줄 필요가 없습니다. 머리를 쓰건 몸을 쓰건 보다 보면 역할 또한 자연스레 배분되기에 각 스테이지의 구조만 적당히 말이 되게 만들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되어 있죠.
실제로 이번 <노 웨이 아웃>은 러닝타임 내내 그에 충실합니다. 별다른 부연 설명 없이 방에 던져 놓고 탈출합니다. 출구는 또 다른 방의 입구가 되어 또 탈출합니다. 그 과정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사상자가 발생하지만 괘념할 것은 없습니다. 따져 보면 미노스와의 대결 쪽은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방탈출이 워낙 시선을 잘 끌어 주어 딱히 불만들은 없어 보입니다.
주연배우 테일러 러셀의 바닥을 치는 연기력이나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미노스의 영향력 등 영화 안팎으로 걸리는 것이 없지는 않지만, 보여주는 게 있으니 속편 하나 정도는 이렇게 때워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만 여기에 취해 3절과 4절을 넘어가면 <더 퍼지>나 <쏘우>같은 인공호흡기 시리즈가 탄생하는 것이죠.
소재나 전개상의 욕심을 내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닿기만 해도 타 버리는 레이저나 흩뿌리는 염산 비 등 마음만 먹으면 관람등급을 한껏 끌어올릴 재료들을 준비까지 해 두었지만, 기승전결의 단순함을 고려해 영화의 일관성을 지켰습니다. 방탈출 유행은 이제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음에도 흥미가 동하는 것을 보면 분명한 성과는 있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