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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7. 2021

<로키> 리뷰

장난기를 잊은 장난의 신


<로키>

(Loki)

★★★


 <완다비전>, <팔콘 앤 윈터 솔져>에 이은 마블의 2021년 세 번째 TV 시리즈, <로키>입니다. <팔콘 앤 윈터 솔져>와 마찬가지로 6부작으로 제작되었죠. 로키 역의 톰 히들스턴을 주인공으로 오웬 윌슨, 구구 음바사 로, 운미 모사쿠, 소피아 디 마르티노, 리차드 그랜트, 조나단 메이저스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다른 시리즈들에 비하면 새로 합류한 얼굴들이 가장 많은 편이죠.



 뉴욕 상공에 치타우리를 잔뜩 불러 한 번 뒤집어 보려던 로키. 그러나 어벤져스의 활약으로 계획은 무산으로 돌아가고, 토르의 손에 잡혀 아스가르드로 끌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 헐크의 습격(?)으로 테서랙트가 수중에 굴러들어오죠. 신나서 탈출한 것도 잠시, 순리대로 흘러가야 할 운명을 거슬렀다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타나 수갑을 채웁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다른 시간대의 인피니티 스톤을 찾으러 뉴욕 사태 때로 돌아갔던 바로 그 순간입니다. 앤트맨이 토니 스타크의 아크 리액터에 장난을 친 통에 소동이 벌어졌고, 해당 시간대의 로키는 아스가르드에 잡혀가는 대신 테서랙트를 들고 도망쳤죠. TV 시리즈 <로키>는 바로 그 로키의 탈출에서 시작되는 사건들을 다룹니다. 외전과 속편 사이의 어딘가라고 할 수 있겠죠.



 TVA(Time Variance Authority)라는 범우주, 범차원적 시간선 관리 단체가 등장하고, 해당 기관의 요원들은 모든 차원의 모든 시간대를 자유자재로 왕래하며 단 하나로 유지되어야 하는 절대적 시간선을 지킵니다. 워낙 방대한 개념이다 보니 어쩌면 지금껏 마블 유니버스에 등장한 그 어떤 소재보다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마블 입장에서는 모든 창작 가능성을 정당화할 수단을 얻은 셈이구요.


 하지만 우리의 로키는 그 와중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가장 배신할 것 같은 사람 대회를 열면 순순히 1위를 할지, 1위할 것이라는 기대를 배신해서 꼴찌를 할지(?) 궁금할 인물이죠. 잡혀간 건 잡혀간 거고, 우주의 질서를 다루는 공간에서조차 로키는 자신만의 계획을 가지고 또 다시 움직입니다. 전지적 제 3자인 시청자조차 그의 다음 발자국을, 심지어는 이전 발자국조차 믿을 수 없죠.



 모두의 각기 다른 예상을 깨고 움직이는 로키를 통해 <로키>는 TVA라는 우주적 집단을 훑어 내려갑니다. 현재부터 기원까지, 말단부터 최심부까지 파고들죠. 그 과정에서 등장하고 드러나는 인물들과 사건은 가족인 오딘과 토르, 프리가는 물론 로키 자신마저도 이제껏 보지 못했던 스스로의 새로운 모습을 이끌어냅니다. 로키의, 톰 히들스턴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원맨쇼죠.


 하지만 <로키>는 시리즈 중반부 로키와 동일한 입지의 뉴페이스를 투입합니다. 소피아 디 마르티노의 실비죠. 자신의 수고를 덜어 줄 일말의 가능성만 있다면 일단 칼을 숨기고 보는(그러나 결코 집어넣지 않는) 로키의 성격 덕에 나머지 여정을 함께하는 인물입니다. <엔드게임>까지의 어벤져스 시리즈 멤버들을 은퇴시키려는 마블이 내세운 또 한 명의 신예입니다.



 이렇게 합류한 실비는 어느 모로 보나 톰 히들스턴의 로키에게 집중되어야 하는 스포트라이트를 매 회 매 사건마다 꾸역꾸역 나누어 가지며 이야기의 응집력을 해칩니다. 변주했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신선함을 느끼는 특징이 있다면 결코 손대지 말아야 할 특징도 있습니다. 자신만의 확신과 계획으로 뭉쳐 혈혈단신으로도 결국엔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것이 바로 후자에 속하는 로키의 개성이죠.


 왕비나 공주가 아니라 여왕의 입지를 굳힌 <겨울왕국>의 엘사에게 연인을 만들어 준다면 당연히 그 시도만으로 캐릭터성이 망가진다는 지적이 가능합니다. 같은 맥락으로 <로키>의 실비는 존재만으로 2011년 <토르: 천둥의 신>부터 10년을 있어 온 로키라는 캐릭터를, 그리고 마침내 무대 한가운데에서 아껴 두었던 모든 것을 마음껏 펼쳐놓을 <로키>라는 기회를 조각조각 무너뜨리고 말죠.



 그렇게 즉흥과 계획 사이에서 춤추던 로키는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평범한 영웅으로 전락합니다. 캡틴 아메리카부터 아이언 맨까지, 일생일대의 선택을 눈앞에 두고 누구보다도 영웅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보다도 인간적이었던 인물들은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지만 딱히 로키에게서 보고 싶었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다름아닌 로키가 단독 시리즈를 맡은 당초의 이유로부터 갈수록 멀어지죠.


 분신술과 초록 광선을 뿜는 마법을 숨쉬듯 해낼 수 있음에도 최소화한 액션은 심심하기만 합니다. 전 우주의 질서를 관리하는 기술력의 소유주치고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TVA의 설정들은 방패를 든 캡틴 아메리카 선에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죠. 라멘티스나 알리오스 등 막상 벌어지는 사건에 비해 필요 이상으로 덩치만 키운 눈요기들에 막대한 제작비가 실시간으로 날아갑니다.



 슬프게도 예상을 벗어난 캐릭터들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의외로 각본입니다. <로키>는 수많은 작품에서 수많은 방법으로 다루어졌던 운명론을 다시 한 번 자신만의 방식으로 꺼내듭니다. 일반적으로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의견과 자유 의지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는 의견이 대립하곤 하는데, <로키>는 전자를 물리적으로 가능케 하는 TVA와 후자의 현신이나 마찬가지인 로키를 대립시키죠.


 흥미롭게도 이야기가 전개되며 모두가 똑같은 진실에 접근함에도 불구하고, TVA와 로키는 운명론에서 갖고 있던 각자의 자리를 서서히 바꾸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간선 질서의 유지를 신성시하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개개인의 존재 의의를 갈망하는 반면, 그것이 아니꼬워 파멸시키겠다던 개인은 절대적 질서의 존재 의의를 못내 되돌아봅니다.


 <로키>는 쉽게 둘 중 어느 쪽을 찬양하거나 우위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한 쪽에 자리를 잡고 다른 한 쪽을 바라보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변수와 사연을 안은 균형추임을 알고 있습니다. 여섯 개의 에피소드는 그 추에 덮여 있던 베일을 치우고 양 쪽을 한 번씩 세상에 보여주듯 톡톡 치는 과정이죠. 모든 인물들은 여기에 사용되는 부속에 불과한데, 하필 로키가 거기에 끼어 있음이 애석한 경우입니다.



 예상치 못한 손실이자 예상치 못한 수확입니다. 캐릭터의 깊이를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맞바꾸는 작업은 보통 드라마보다는 영화의 불가피한 선택이죠. 이쯤 되면 로키는 주연이 아니라 주인공의 길에 끼어드는 조연으로 활약할 때 가장 큰 시너지를 발휘하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형세를 보니 시즌 2 확정에 <앤트맨 3>와의 연결점도 확보한 듯 한데, 어찌됐든 놓칠 수 없는 작품이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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