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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18. 2021

<더 퍼지: 포에버> 리뷰

과다출혈에 잊힌 시류


<더 퍼지: 포에버>

(The Forever Purge)

★★☆


 일정 시간 동안 모든 범죄가 허용되는 무법천지의 개막. 이 하나의 문장으로 무려 다섯 편의 영화를 이어 온 <퍼지> 시리즈는 매번 제작비의 10배 이상을 거둬들이며 승승장구해 왔습니다. 설정만 공유할 뿐 감독과 배우진까지 매번 바뀌며 수혈에 수혈을 거듭해 왔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번 <더 퍼지: 포에버>로 시리즈의 마지막을 선언했네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정착한 멕시코 부부 아델라와 후안, 그리고 텍사스 부촌에서 마구간과 농장을 꾸리며 안락하게 살아가는 딜런 가족은 긴장 속 올해도 찾아온 퍼지 데이를 맞이합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퍼지 데이가 종료되고 일상으로 복귀하지만, 영원한 퍼지를 통해 조국의 정화를 외치는 강경 세력이 등장하며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기 시작하죠.


 인간의 밑바닥을 구경하자는 목적 하에 모든 구성 요소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설정과 관람등급을 등에 업고 두려울 것이 없어진 카메라는 거칠 것 없이 모두를 평등하게 대합니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배우들의 이름값도 옅어지며 굳이 끝까지 살려 둘 필요도 줄어들었고, 그렇게 더욱 과감한 전개로 시리즈의 존재 의의에 충실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질렸습니다. 돈은 벌 만큼 벌었으니 무언가 족적을 남기고 싶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모은 자본으로 이제는 합법적이고 명예로운 일을 해 보고 싶은 사업가의 마음가짐입니다. 인종에서 시작해 장벽으로 끝나는, 어느새 사회 깊이 뿌리내려 뚜렷해진 혐오라는 키워드를 퍼지와 연결지으면 꽤 그럴듯한 그림이 나올 것만 같습니다.


 이번 <더 퍼지: 포에버>는 바로 그 야망을 옮긴 작품입니다. 시리즈 중 퍼지 데이라는 중심 소재의 영향력은 가장 적지만, 어쩌면 그를 가장 현실에 가깝게 옮긴 속편이죠. 1편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로 '퍼지 데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한들 영화 속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일정한 문명인의 단계에 진입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근 몇 년 동안 미국 사회를, 나아가 전 세계를 강타한 몇몇 사건들은 그를 반증했습니다. 퍼지 데이라는 거창한 구실 없이도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습니다. 바꿀 수 없고 선택하지 않은 것을 잣대로 내세워 선을 그었습니다. 21세기라는 것을 믿을 수 없는, 같은 문명인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사건과 행위들이 한 해가 멀다하고 자행되었죠.


 물론 작용엔 반작용이 뒤따릅니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고, 고통은 흉터를 남길지언정 성장의 원천이 됩니다. 폭력과 혐오를 앞세운 사람들이 나타나자 평화와 안식으로 반격하는 사람들도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등장은 예측할 수도 막을 수도 없지만 인류는 항상 그에 대항하는 백신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럴 것이라는 믿음만으로도 사람들은 마지막 희망을 이끌어내곤 합니다.



 각본을 구성하는 메시지는 고무적이지만, 갈수록 유혈과 살육을 즐기는 블룸하우스는 빈 자리가 생기면 작품성보다는 상업성을 먼저 채워넣는 제작사죠. 블룸하우스의 이름을 널리 알린 <파라노말 액티비티>나 <해피 데스데이> 시리즈, 심지어는 이전까지의 <더 퍼지> 시리즈였다면 맞는 선택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번 <포에버>만큼은 조금이라도 더 진중했어야 했습니다.


 캐릭터부터 연출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안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밖과 불협화음을 냅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기억에 남을 만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점프 스케어를 남발하는 연출은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가중합니다. 한껏 무고하고 불쌍한 주인공 일행이 말초 신경으로만 움직이는 잡졸들을 만나 탈출하는 과정이 단순히 반복될 뿐, 여타의 의미 부여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죠.



 영화의 의의나 방향만큼은 시리즈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쉽게 쉽게 벌어 온 전철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인물이나 사건의 서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 자신이 없으니 이를 마무리해 전달하는 뉴스 진행자의 입을 빌려 딱딱하게 읊는 데 그치죠. 제작 단계에서부터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공표를 해 두었으나, 통장 잔고를 보면 또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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