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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Jul 26. 2021

<방법: 재차의> 리뷰

생사 모두 허하기만


<방법: 재차의>

★★☆


 2018년 <챔피언> 이후 3년만에 돌아온 김용완 감독의 신작, <방법: 재차의>입니다. OCN 드라마 <나쁜 녀석들>의 극장판이 무려 관객수 457만 명을 동원한 사실에 자극을 받았는지, 2020년 tvN에서 방영된 <방법>도 극장으로 진출했죠. TV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각본을 맡아 엄지원, 정지소, 권해효, 오윤아, 김인권, 이설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피해자와 함께 발견된 용의자. 그러나 용의자의 시신이 이미 3개월 전 사망한 것으로 밝혀지며 경찰은 혼란에 빠집니다. 한편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기자 임진희는 라디오 출연 중 진범을 자처하며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게 되죠. 그렇게 이루어진 생방송에서는 새로 세 건의 살인이 예고되고, 베일에 싸여 있던 비밀들이 수면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영화의 부제이기도 한 '재차의(在此矣)'는 조선 중기의 수필집 <용재총화>에 등장한 단어로, 직역하자면 '여기 있다' 쯤의 의미를 가지는 단어입니다. 극중에서는 이것이 마치 초자연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다시 말해 '좀비'쯤의 의미를 지닌 한자어로 소개하고 있죠. 초반부 이를 한 번 설명한 이후에는 모든 인물들이 거의 의도적으로 좀비라는 단어를 배제하는 식입니다.



 출발부는 흥미롭습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범인은 이미 죽어 있습니다. 좀비 등 초현실적인 범죄 사건들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대부분은 누구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인공들끼리만 알음알음 아는 선에서 수사가 진행되는데, 특이하게도 <방법>은 매스컴과 공권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그 뒤에는 소위 말하는 높으신 분들의 그림자가 걸려 있는 탓입니다.


 연상호 각본답게 여러모로 <부산행>과 닮은 점이 꽤 있습니다. 좀비나 재차의라는 소재는 사건과 관계를 진행시키고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할 뿐, 정말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뒤편에 위치해 있죠. 물질만능주의에서 비롯된 부정, 그런 사달을 만들어낸 윤리 의식의 부재 등이 각본의 진정한 주인공입니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서로와 들러붙어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옴을 직접 보여주죠.



 물론 차이점도 있습니다. 이번 <재차의>는 아무래도 TV 시리즈의 연장선이다 보니, 2시간짜리 닫힌 이야기로 끝나는 영화보다 캐릭터들에게 좀 더 많은 비중을 주려 하죠. 일반적인 동종 영화의 캐릭터들은 재난 상황에서의 여러 군상을 대표하곤 하지만, <재차의>의 인물들은 지금껏 이 시리즈를 있게 한 주역들인 만큼 몇몇 장면에서는 사건에 앞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전체적인 얼개는 딱딱 맞춰져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완성도나 흥미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독자적인 판타지 세계관이 아니라 엄밀히 관객들과 같은 현실을 공유하지만, 누구도 쓰지 않는 고유명사들을 남발하는 이질감은 깜찍한 수준이죠. 전국구로 초자연적인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지지만 어째 주인공들을 제외하면 딱히 큰일 취급도 하지 않는 듯한 어색함도 한몫합니다.



 본능만 앞세워 깨물면 규칙도 질서도 없이 무분별하게 번져나가는 좀비와 달리, 재차의는 중심부에 분명한 조종자가 있기에 좀 더 효율적이고 조직적인 운영(?)이 가능합니다. 그 덕분에 어쩌면 소재를 영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은 훨씬 다분한 편인데, <방법>은 이름만 다르게 불러 주면 모두가 다르게 생각해 줄 거라고 믿는 듯 스스로 가능성을 제한하고 게으른 전개에 만족하죠.


 정지소의 소진, 오윤아의 미영, 고규필의 정훈, 이설의 제시 등 대부분의 캐릭터들마저도 만화적으로 한껏 과장된 언행으로 일관하며 초자연적인 소재를 어떻게든 현실적인 것으로 소화해내려던 영화의 시도를 미약하게 만듭니다. 그 가운데에 서 있는 엄지원의 진희는 등장인물들 중 가장 무색무취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중심을 잡기에는 힘에 부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와 마찬가지로 극장판을 보기 위해 원작 시리즈를 정주행하거나 하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지만, 외려 극장판이라는 포맷 자체에서 발목을 잡혔습니다. CG와 사건의 규모 등 영화쯤으로 건너가야 가능한 판을 신나게 벌였음에도 그 벌어진 틈을 채울 재료들은 마땅히 준비해 놓고 있지 않았네요. 단순한 팬서비스만으로 만족하기엔 그 틈으로 새는 게 꽤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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