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질서의 오와 열
2016년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마고 로비의 할리 퀸이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탄생시켰음에도 세계관의 오점이 되었습니다. 할리 퀸이라도 살리고 싶었던 워너브라더스는 2020년 <버즈 오브 프레이>를 출범시켰지만, 그마저도 무위에 그치며 쓴웃음을 삼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도 세 번은 받아야 아웃이 된다며 세 번째 도전을 외쳤으니, 그것이 바로 이번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였죠.
미션 한 번 성공할 때마다 10년을 감형시켜 준다는 조건으로 최악의 장기수들을 제멋대로 굴리고 있는 아만다 월러 국장.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작전에 투입되는 면면들이 결코 멀쩡할 리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며 블러드스포트부터 할리 퀸에 이르는 새 멤버들이 또 하나의 자살 특공대를 꾸리고, 프로젝트 스타피쉬라는 국가기밀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DC의 이번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놀랍게도 마블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쭈욱 맡아 오고 있던 제임스 건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입니다. 2018년 즈음 제임스 건의 수위 높은 과거 트윗들이 발굴되며 디즈니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고, 그런 그라도 감싸 안겠다며 워너브라더스에서 잽싸게 데려가 맡겨 완성한 영화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였죠.
제임스 건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다며 비판들을 모두 변명 없이 받아들였고, 거기에 동료들과 팬들의 꾸준한 지지를 얹어 결국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의 감독으로 복귀했습니다. 단기간에 마블과 DC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모두 맡았으니 결과적으로는 커리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셈이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스타일의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기대하는 팬들의 희망도 대단했구요.
이번 영화는 할리 퀸과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소재를 살릴 마지막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제임스 건이라는 중심축도 잘 데리고 왔으니 신나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마고 로비, 이드리스 엘바, 존 시나, 비올라 데이비스, 조엘 킨나만, 데이빗 다스트말치안, 실베스터 스탤론, 마이클 루커, 네이단 필리온, 제이 코트니, 다니엘라 멜키오르, 피터 카팔디, 앨리스 브라가 등 출연진부터 옆동네 부럽지 않습니다.
2016년작 앞에 'The'를 붙이면서 마치 이번이 진짜임을 선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속편(시퀄)과 프리퀄, 스핀오프에 이어 리메이크, 리부트까지는 대강 들어봤어도 이번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속한다는 리런치(relaunch)는 또 생소하죠. 말 그대로 새롭게 선보인다는 뜻인데, 제작 단계에서부터 이번 영화가 기존의 DC, 그리고 할리 퀸 영화들과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하는 팬들도 많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번 영화는 기존 DC 영화들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이자 속편이 맞기는 합니다. 할리 퀸이나 아만다 월러, 릭 플래그, 캡틴 부메랑 등 기존 멤버들의 대사로 미루어 볼 때 지난 영화들에서의 사건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회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여행 쯤으로 정면돌파할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가 최소한의 예우겠죠.
극중에서는 애초에 '수어사이드 스쿼드(자살 특공대)'라는 단어부터 특정한 멤버들로 구성된 불변의 집단이 아니라, 죄수들 사이에서 '아만다 월러가 부르면 가게 되는 곳' 정도의 의미를 지닙니다. 전편에서 슈퍼맨같은 메타휴먼들이 날뛰면 맞서게 하겠다며 거창하게 등장시킨 속 빈 강정이 아니라는 것이죠. 속편은 속편이지만, 리런치라는 단어도 썩 어울리는 교통 정리가 맞습니다.
출발부터 속도감이 대단합니다. 본편이 아니라 예고편에 가까운 빠른 전개로 기본적인 무대 설정과 분위기를 한 번에 납득시키죠. 여기서의 분위기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과 제임스 건의 꾹꾹 눌러 왔던 B급 기질의 혼합물입니다. 대담하고 과감합니다. 터지고 찢기고, 잘리고 씹힙니다. 뭘 어떻게 하는 데 주저하는 것이 없습니다. 신선한 충격과 어이없음이 섞인, 대소와 실소 사이의 웃음을 끊임없이 노리죠.
여기서 갑자기 얘 머리가 터지면 웃기지 않을까 싶어 곧바로 터뜨립니다. 나사가 하나, 혹은 여러 개씩 빠져 있는 캐릭터들이 서로 자기가 제일 정상이라고 우기며 티격거립니다. 그러면서도 임무 수행도 소홀히 하지는 않고, 자신도 모르게 꽃피는 동료애도 무시하지 않습니다.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한 쪽이 중심을 잡을라치면 다른 한 쪽을 내밉니다. 물론 어영부영한 표류라고 느낄 나위도 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반가운 그림자도 왕왕 발견됩니다. 스타로드의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Awesome Mix)로 전 세계에 자랑했던 선곡 센스도 다시 한 번 뽐내고 싶어하고, 상황이 상황이었던 터라 그 당시 제임스 건을 지지했던 배우들의 카메오 등장도 팬들에겐 눈요기가 되죠. 여담으로 극중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쥐 배우(?) 중 한 마리는 크레딧에 'Crisp Ratt(크리스 프랫)'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비정상이라는 점이 바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최대 무기입니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최소한 과거사 등을 통한 부연 설명이 필요한 전개를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그냥 얘가 미친 놈이라는 이유 하나로 퉁칠 수 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정의를 수호한다며 사람을 패고 다니면 해명을 해 주어야 하지만, 변기 뚜껑을 쓰고 다니는 피스메이커에겐 그럴 필요가 없죠.
그래서 더욱 시원시원합니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가 연속적으로 이어져도 뭐 하나 귀찮게 덧붙일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악순환이 될 흐름이 여기서는 선순환이 됩니다. 머리에 전구를 끼운 악당이 술집에 나타니고 외계에서 온 거대 불가사리가 튀어나와도 이질감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의감에 불타는 모습이 이들의 존재 이유에 역행하는데, 마침 전편이 저지른 큰 실수인지라 반영할 여유도 있었구요.
머릿수로만 따지면 마블 유니버스 부럽지 않을만큼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등장시키면서도 놓치는 사람이 없고, 각자의 능력은 물론 단순한 대사와 따로 주는 회상 장면도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서사의 알맞은 분배에도 성공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나간 소리만 늘어놓는 정신나간 장면이 범람하는 영화치고는 나름대로의 규칙과 질서를 따르는 덕에 무리수로 느껴지는 요철도 없죠.
다만 여러 이유로 이제는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어진 할리 퀸은 여전히 주연급 비중과 활약을 가져가는데, 말 그대로 인간 병기인 동료들과 비교하자면 여전히 광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터라 어쩔 수 없이 튀는 편입니다. 그를 독보적인 캐릭터성이나 화면 연출로 상쇄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맨몸 액션만 놓고 보아도 청불 등급을 업은 과감하고 화끈한 기조를 만족시키지는 못하죠.
과감함이 양날의 검이 되는 순간도 분명 있습니다. 진지함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듯, 그래도 여기서라면 설득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순간조차 막나가길 반복합니다. 순수 코미디 영화가 아닌 이상 독재 국가와 그를 유지하는 권력은 일정 덩치 이상의 뿌리와 뼈대를 동반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나라를 굴리기는커녕 애완동물 키우기도 급급한 동네 복덕방이나 다를 바가 없죠.
어찌됐든 팬들이 무얼 원하고 기다리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감독의 영화입니다. '8분 전' 따위의 설명용 자막을 피어오르는 연기로 써서 표현하는 등 디테일한 연출에서도 B급 코믹스와 슈퍼히어로 팬들의 목마름을 채우죠. 이 작은 것들이 뭉치고 피칠갑 수위와 만나 예측 못한 진입 장벽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영화는 처음부터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