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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05. 2021

<모가디슈> 리뷰

전진을 아낀 진전


<모가디슈>

★★★☆


 출범 역사상 가장 극심한 침체기에 빠진 극장가를 살릴 첫 번째 주자, 류승완 감독과 롯데 엔터테인먼트의 250억 대작 <모가디슈>입니다. 관객이 없으니 큰 영화가 없고 큰 영화가 없으니 관객이 없는 악순환을 끊고자 극장가의 모든 구성원들이 힘을 모았습니다. 650만 명에 달하던 손익분기점은 합의 끝에 350만 명 선으로 내려왔고, 운명을 결정할 개봉까지 이루어졌습니다.



 대한민국이 UN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기,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는 일촉즉발의 내전이 일어납니다. 통신마저 끊긴 그 곳에 고립된 대한민국 대사관의 직원과 가족들은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오직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내죠. 그러던 어느 날 밤, 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북한 대사관 일행들이 도움을 요청하며 역사에 남을 동행이 시작됩니다.


 류승완은 <베를린>과 <베테랑>으로 명실공한 상업 영화 감독의 자격을 입증했습니다. 누군가에겐 평생의 업적이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한 번 달성한 뒤에는 그 다음 목표를 찾아 나서기 마련이죠. 그 의지를 내세워 만든 다음 영화가 바로 <군함도>였고, 관객수 659만 명을 동원했으나 손익분기점이 무려 800만 명이었던 탓에 아주 자랑할 만한 수치는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의미와 시대를 담겠다는 의지는 끊기지 않았습니다. <군함도>를 영점 조정의 기회로 삼아 다시 한 번 역사적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 도전했습니다. 소재 선택 단계에서부터 뭐가 어떻게 흘러가고 어떤 방식으로 연출될 것인지 뻔히 예측 가능한 굴레에서 벗어나, 무엇을 어떻게 각색하고 또 실제 역사는 어땠는지 궁금하게 만들 신중함이 엿보이죠.


 다시 말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여느 영화들이 저지르는, 실화라는 사실을 덮어놓고 무기로 삼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진부하고 단조롭다는 지적을 실화 내용이 원래 그렇다는 변명으로 무마하려는 시도죠. 관객들은 같은 이야기도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아둔하지 않습니다. 떨어지는 완성도의 이유를 안이 아닌 밖에서 찾는 것부터가 잘못되었죠.



 그렇게 <모가디슈>는 121분의 러닝타임 동안 잘 만든 상업 영화가 갖추어야 하는 두 가지 덕목인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외줄을 탑니다. 의미와 흥미를 한아름 안은 채 적재적소에 필요한 양을 골고루 담아내려 노력하죠. 미처 몰랐지만 들으면 궁금하기는 한, 그러면서도 다큐멘터리처럼 단순한 사실 전달이 아닌 살아 숨쉬는 캐릭터와 요동치는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다행히도 이 시도는 내내 꽤 성공적입니다. 초반부 짤막한 몇 개의 에피소드만으로 모가디슈라는 공간, 그리고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캐릭터들의 개성을 확립해내죠. 무대와 인물의 색을 굳게 세워 놓으면 그 뒤로는 억지를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이 벌어지면 누구는 이렇게, 다른 누구는 저렇게 행동하고 생각할 것이라고 누구든 자연스럽게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합니다.



 그 중심에는 다른 누구보다 김윤석의 한신성 대사가 있습니다. 모든 인물들과 교류하며 각자를 빛나게 하는 동시에 김윤석 배우의 탁월한 연기력으로 스스로의 존재감도 잊지 않는 캐릭터죠. 특히나 <모가디슈>가 인물과 사건 중 어느 한 쪽을 더 밀어주거나 내세우지 않고, 인물 쪽에서도 특정한 개인을 단일 주인공으로 삼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꽤나 대단한 공로입니다.


 다만 의외로 시각적인 볼거리는 딱히 많지 않습니다. 내전으로 인한 교착 상태에 접어드는 중반부부터는 그나마 등장하는 액션조차 소모전 정도에 불과하고, 사건의 전개도 더뎌지죠. 상황의 변화 폭이 크지 않은 탓에 캐릭터들의 입체성을 드러낼 기회도 많지 않고, 그러면서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예상되는 상황에 예상되는 대사나 행동 한두 개씩 던지는 엑스트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아마 개봉 후에는 꽤 자주 비교될 벤 애플렉 감독의 <아르고>, 혹은 그 비슷한 전개가 특징인 영화들처럼 탈출 과정이 하나의 작전으로 취급되어 매 단계가 땀을 쥐는 긴장의 연속인 영화도 아닙니다. 오히려 매 순간 생사가 달려 있는 위기 상황인 것치고는 설정 구멍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무런 설명도 없는 속 편한 진행이 갑자기 튀어나올 때도 있구요.


 그럼에도 <모가디슈>는 그마저도 스스로가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그리고 지키려 노력하고 있음을 드러냈던 균형의 일부로 녹여냅니다. 웃음과 눈물, 그리고 그를 포괄하는 신파까지, 마음만 먹으면 극한까지 몰아붙여 쥐어짤 수 있는 기회마다 눈을 감으며 인내를 발휘하죠. 대부분의 블록버스터들이 들인 돈 생각에 증명된 노선만 보고 냅다 돌진했던 전례만 해도 셀 수 없을 겁니다.


 예를 들어 영화의 중심 소재 중 하나인 남한과 북한의 협력이라는 소재만 해도 척 하면 척 예상되는 그림이 꽤 많습니다. 민족과 동포를 강조하며 눈물샘이나 애국심을 자극하는 흐름이 교과서적이죠. 그러나 <모가디슈>는 이를 본능적이고 인도적인 차원에서만 간략하고 담백하게 묘사할 뿐, 협동을 대단하거나 절대적인 가치로 치켜세우는 아주 작은 움직임조차도 의도적으로 배제합니다.



 훌륭한 배우는 꼽을 수 있어도 모자란 배우는 꼽을 수 없고, 아쉬운 장면은 꼽을 수 있어도 튀는 장면은 꼽을 수 없습니다. 개성적이면서도 안정적이고, 무료할지언정 정돈되어 있습니다. 선악이나 정치적 이념 등 영화의 안팎으로 편을 나누어 맹목적인 지지를 바라지도 않죠. 정말 여러모로 섬세한 고심의 흔적이 엿보이는 가운데 그를 적당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티낼 줄도 아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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