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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11. 2021

<프리 가이> 리뷰

주인공에서 주인으로


<프리 가이>

(Free Guy)

★★★☆


 <박물관이 살아있다 3> 이후 <기묘한 이야기>를 만든 뒤 영화감독으로는 7년만에 돌아온 숀 레비의 신작, <프리 가이>입니다. 당초 작년 여름 시즌을 겨냥하고 제작되었으나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며 1년을 넘어갔네요. 라이언 레이놀즈를 주인공으로 조디 코머, 타이카 와이티티, 조 키리, 웃카시 암부드카, 릴 렐 호워리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제작비로는 1억 달러가 조금 넘게 들었다고 하죠.



 안정적인 직장, 절친, 아침을 여는 커피, 그리고 총격전과 날강도까지. 오늘도 변함없이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하는 '프리 시티'의 가이는 여전히 시린 옆구리를 부여잡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만 그리던 그녀가 눈 앞에 나타나고, 갖은 노력 끝에 드디어 말을 거는 데에도 성공하죠. 그러나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사실들은 가이와 가이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됩니다.


 게임에 문외한이어도 'NPC'라는 말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겁니다. 'Non-Player Character'의 약자로, 말 그대로 플레이어가 아닌 캐릭터를 뜻하는 말이죠. 게임 속 상점 주인이나 마을 사람 등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게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지만, 진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매일 매 순간 똑같은 말과 똑같은 행동만 하면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상상을 해볼 수 있겠죠.



 과연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 감독이 반길 만한 설정입니다. 거기에 항상 판에 박혀 있으리라고만 여겼던 게임 속 세상을 누빈다는 설정까지 더하면 <주먹왕 랄프>, <레디 플레이어 원>, <스파이 키드 3D>, 웹툰 <전자오락수호대> 등 다양한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주인공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존재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죠.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메시지를 찾습니다. 사람들은 자라면서 누구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시기를 거칩니다. 그러나 각자의 다양한 성장 과정을 거치며 어쩌면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게임 세상의 부품인 NPC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애석하게도 누군가는 그것을 어른이 되고 철이 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곤 하구요.



 <프리 가이>는 NPC인 주인공의 이름을 평범함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인 '가이'로 정한 것에서부터 분명한 의도를 드러냅니다. 여느 신나는 영화들처럼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맹목적인 긍정에 매달리지 않죠.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존재나 등장이 아니라, 내가 살아서 숨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라 이야기합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데 무슨 의미가 있냐는 좌절에 전하는 작지만 큰 위로죠.


 단단한 메시지를 꾸미는 즐길거리도 상당합니다. 항상 기분이 좋은(...) NPC들의 나사 빠진 상호작용부터 실사로 구현된 거대한 가상 현실을 무대로 한도 없이 뻗어나가는 물리 법칙까지, 가진 재료들의 적절하고 유쾌한 활용법을 잘 알고 있죠. 최소한 중반부까지는 그저 프리 시티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가이의 모습만 보고 있어도 기본적인 집중이 보장될 정도입니다.



 거기에 <데드풀> 이후로 제대로 즐기는 자 모드가 된 라이언 레이놀즈 특유의 4차원 연기가 또 다시 물을 만났습니다. 20세기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되며 이제 필터 없이 들이받는(!) 개그들도 검열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많았는데, 미키의 삼엄한 감시망 아래에서도 몰래 몰래 팔꿈치로 쿡쿡 찌르며 낄낄대는 듯한 연기와 소화력으로 매 순간 화답하죠.


 N차 관람을 부르는 소소한 재미와 특급 카메오들도 가득합니다. 벽돌 하나하나까지 창조해 넣은 세계를 다룬 영화답게 러닝타임 내내 열심히 눈을 굴리면 보상이 따릅니다. 버그를 찾아 벽이란 벽은 다 들이받다가 결국 튕기는 데 성공(?)하는 플레이어를 구현하는가 하면, 누구도 예상치 못한 특별출연과 엔딩 크레딧까지 보고 나서야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며 감탄할 이름들도 많죠.



 이처럼 가이의 일대기는 신선함과 발랄함으로 가득하나, 정작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키스와 밀리의 이야기는 중간 광고마냥 흐름과 집중을 방해합니다. 게임 저작권을 놓고 벌이는 게임사와의 갈등은 이야기 자체로 보나 영화 전반의 방향성으로 보나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하죠. 거기에 얹는 성급한 로맨스는 선을 넘어 그토록 도구가 되지 않겠다며 날뛴 가이의 노고마저 반박하는 지경입니다.


 아무리 게임 세상을 무대로 했다지만, 개발자들이 대강 어려운 단어 쓰면서 키보드 열심히 두들겨 엔터 키로 마무리하면 다 끄덕여줄 줄 아는 배짱도 아슬아슬합니다. 유쾌함을 더할 때야 웃고 넘어가도, 진지하고 사실적인 전개를 요하는 순간에서조차 어물쩡 동일하게 접근한다면 그저 게으른 것에 불과하겠죠. 타이카 와이티티가 넉살스레 소화하는 앤트완만이 영화 속 현실 세계의 거의 유일한 장점입니다.



 그럼에도 자신만의 에너지와 매력이 충만한 영화입니다. 유쾌하지만 유치하지 않고,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균형을 지켜냈습니다. 특정 게임을 원작으로 삼아 스크린에 구현한 영화들보다 그저 게임이라는 소재를 다룬 영화들의 성공률이 높은 이유도 짐작해볼 수 있겠구요. 무엇보다도 라이언 레이놀즈가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 목록에 이렇게 또 한 편이 추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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