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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17. 2021

<그린 나이트> 리뷰

무덤에서 요람까지


<그린 나이트>

(The Green Knight)

★★★★☆


 <피터와 드래곤>, <고스트 스토리> 등 가족 영화와 예술 영화의 경계를 넘어 다니는 데이빗 로워리 감독이 돌아왔습니다. 데브 파텔, 알리시아 비칸데르, 조엘 에저튼, 션 해리스, 사리타 초우드리, 랄프 이네슨 등과 함께한 <그린 나이트>죠. 국내엔 지난 8월 5일 개봉되었고, 감상을 망설이고 있던 차 정말 간만에 리뷰 요청이 들어와 기쁜 마음으로 관람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 왕은 원탁의 기사들과 사람들을 모아 놓고 멋진 영웅담을 하나 들려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때 한 녹색 기사가 나타나 부와 명예를 줄 테니 자신에게 무엇을 해도 무관하지만, 정확히 1년 뒤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그 행동을 돌려받으라 말합니다. 이에 아서 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며 기사의 목을 베고,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서두에서도 밝히듯 <그린 나이트>는 아서 왕 전설의 일부인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이야기(Sir Gawain and the Green Knight)>를 토대로 한 작품입니다. 원전이 워낙 오래된데다 작가도 밝혀지지 않았고, 같은 세계관의 이야기에서도 인물 관계도가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죠. 때문에 지금까지도 다양한 버전과 해석이 존재하며, 이번 <그린 나이트> 역시 그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보통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길 땐 각색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원작과의 차이점이 바로 감독의 의도가 되곤 하죠. 그 이유를 내세운다면 당연히 <그린 나이트> 역시 원작이 되는 이야기를 대강이라도 알고 있는 것이 좋지만, 모르고 간다고 해서 스스로 내리는 해석의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원체 영화가 난해한 탓에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줄 뿐이죠.


 상징적이고 불친절합니다. 화면이 흘러가는 대로 쳐다보고 있으면 도대체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웨인이라는 청년이 모험을 떠나고 그 모험이 종료된다는 사실만 얼핏 알 수 있을 뿐, 분명히 무언가를 의도하고 의미하는 장치들만 가득해 내용 파악이 영 쉽지는 않죠. <반지의 제왕>으로 대표되는 중세 판타지를 조금이라도 기대한다면 무조건 좌절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꽤나 훌륭한 미적 감각이 기본적으로 갖는 흡인력이 있습니다. 종종 가사를 알아듣는 구간이 전체의 절반이 채 되지 않음에도 매료되는 노래들처럼, <그린 나이트> 역시 러닝타임 내내 절제되지만 세련된 영상미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죠. 탐험심이 필수인 각본에 이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무기가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펼쳐지는 <그린 나이트>와 가웨인의 모험은 기사도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전에 의하면 기사도는 중세 유럽에서 기사로서 지켜야 했던 도덕을 뜻하며, 기독교의 윤리를 바탕으로 용기와 예의, 명예 등 기사라면 응당 지켜야 할 덕목을 가리키죠. 왕족의 피를 지니고도 평범한 청년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가웨인이 한 명의 어엿한 기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는 겁니다.



 영화 초반의 가웨인은 술과 여자를 탐하며 근거 없는 호기로 자신감을 대체합니다. 그러던 중 아서 왕이 제안한 게임과 녹색 기사의 등장으로 삶과 일상의 변곡점을 맞이하죠. 애써 따낸 기사라는 수식어는 동네 술집의 시비거리에 불과하고, 결과적으로 목숨만 오가게 된 판에서 이건 다 게임일 뿐 아니었냐며 현실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이라는 최후의 명예마저 내려놓을 겁쟁이는 아니었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나게 된 모험에서 가웨인은 끊임없이 전에 경험하지 못한 난관에 봉착합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가웨인을 시험하고 성장시키죠. 강도와 유령, 그리고 영주는 가웨인으로 하여금 기사라는 존재와 그 의미를 스스로, 혹은 강제로 탐구하게 합니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종의 교환이 이루어져야 하며, 순간의 선택이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도 있음을 배웁니다.



 끊임없이 성장하면서도 가웨인은 여전히 유약합니다. 걸음에 지쳐 거인들의 어깨를 빌리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들이 내민 손길에는 잔뜩 겁을 먹습니다. 그와 같은 순간에도 스스로를 굽히지 않고 당당히 나설 수 있는 것이 기사의 긍지겠죠. 시대는 하다못해 길을 빨리 가려고만 해도 미지의 두려움과 맞서는 미덕을 요구했고, <그린 나이트>는 계속해서 비슷한 순간들을 초현실적으로 환유합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소재가 있죠. 바로 원작에서 마녀 모건 르 페이의 자리를 가져가는 가웨인의 엄마, 그리고 그녀가 여행을 떠나는 가웨인에게 선물한 허리띠입니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둘의 존재를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상기시키며 둘이 가웨인의 모험에서 갖는 비중을 강조합니다. 해석의 방향과 무관하게 기승전결의 구조를 파악하는 힌트가 되기도 하구요.



 이가 아프다는 아서 왕, 녹색 기사가 가웨인이 아는 사람이라는 성 위니프레드, 영주의 성에서 만난 눈을 가린 여인, 정체모를 여우 등 모건 르 페이의 그림자는 여정 내내 가웨인의 뒤를 따릅니다. 이는 가웨인이 겪는 모든 일이 그녀의 작품이라는 가능성을 함축하죠. 권력욕과 대의 중 어떤 것이 더 강한 동력인지는 판단하기 나름이겠지만, 최소한 가웨인의 가장 효율적인 성장을 이끌어내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허리띠는 그런 그녀의 의도와 거기에 맞물리는 가웨인의 성장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매개체입니다. 그녀는 이 허리띠만 있으면 절대 죽을 일이 없다고 가웨인을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그 허리띠는 가웨인의 곁에 주술처럼 머물며 그의 심리적 안전장치로 기능하죠. 운명은 녹색 기사와 맞서려는 가웨인에게 허리띠를 포기하라고 회유하지만, 엄마의 안전한 품을 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웨인의 모험이 절정과 정점에 가까워질수록 가웨인의 심리적 은신처이자 도피처인 허리띠의 의미가 커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허리띠가 정말로 영험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브루스 웨인이 지하 감옥을 탈출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도움이 될 텐데, 안전과 다음 기회를 보장했던 죄수들의 밧줄이 거의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겠죠.



 종합적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가웨인의 성장과 운명을 그리고 있지만, 이야기의 시작과 마무리를 받아들이는 데엔 각자의 관점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비록 번역상 자막으로 온전히 전달되지는 못했으나, 녹색 기사의 마지막 대사만 해도 완전히 중의적이라 영화가 이러한 여러 해석들을 권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같은 장면과 대사를 각자 정반대의 근거로 써먹을 수 있기에 더욱 흥미롭기도 하구요.


 물론 전혀 다른 접근도 열려 있습니다. 붉은색, 노란색, 청색, 그리고 노란색과 청색을 합치면 나오는 녹색 등 의도적으로 배치된 색깔과 그 의미에 기초할 수도 있고, 거기서 녹색 기사를 대자연으로 치환하는 확장도 가능하죠. 마치 필터를 바꿔 얹으면 조금씩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창의적 미술품을 보는 것 같기도 한데, 어느 모로 보나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음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탐구와 탐험이라는 키워드는 가웨인을 넘어 영화 밖의 관객들까지 향합니다. 예전부터 봉준호나 크리스토퍼 놀란이 쉬운 영화들 중 가장 어려운 영화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여겼는데, 데이빗 로워리는 <고스트 스토리>와 <그린 나이트>를 통해 어려운 영화들 중 가장 쉬운 영화에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한 듯 하네요. 그 작은 차이가 대중에겐 각각 담벼락과 장벽으로 귀결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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