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시시한 허풍선이
<23 아이덴티티>와 <글래스>로 화려한 귀환에 성공한 M. 나이트 샤말란이 다시 주특기로 복귀했습니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비키 크리엡스, 루퍼스 시웰, 알렉스 울프, 토마신 맥켄지, 켄 렁 등이 뭉친 <올드>죠. 피에르 오스카 리바이와 프레데릭 피터스의 그래픽 노블 <샌드캐슬(Sandcastle)>을 원작으로 두고 있습니다. 샤말란의 스릴러 중에서 원작이 있는 영화는 <올드>가 처음이라고 하죠.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러 두 아이를 데리고 휴양지로 떠난 가이와 프리스카 부부. 여러모로 기대 이상인 리조트 덕에 신이 난 우리의 주인공들은 곧이어 해변에서 하루 일정을 시작합니다. 함께 놀러 온 리조트 손님들과 심심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해변이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비밀을 품고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죠.
설정만큼은 꽤나 매력적입니다. 서두는 일단 흥미진진하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갈런지 한 번 보고 싶기는 합니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해변이라니, 캐릭터들이 어떻게 되건 일단 그 신기한 해변의 내막이라도 서둘러 알고 싶은 마음이 동합니다. <싸인>, <해프닝>, <레이디 인 더 워터> 등 신이 잔뜩 나 있던 샤말란이 연이어 내놓았던 미스터리 스릴러들의 특색을 간만에 재현했죠.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B급 영화들이 그렇듯, 신선하거나 자극적인 설정들은 오로지 관객들을 의자로 끌어모으는 데까지만 효력을 발휘합니다. 이렇다할 뼈대 없이 살만, 혹은 더 겉부분에 있는 옷만 가지고는 사람은커녕 마네킹 구색을 갖추기도 힘들죠. 간혹 기적적으로 그에 성공해 명작으로 남는 영화들도 있으나, 할리우드가 기억하는 샤말란은 딱히 그런 쪽의 재능을 발전시키지는 못한 감독이었습니다.
이번 <올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무지 뭐가 뭔지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의 등장까지는 좋습니다. 시간은 누구도 주체할 수 없이 빨리 흐르는데 탈출할라치면 눈 앞이 깜깜해지며 다시 원래의 자리에서 깨어납니다. 거기에 하나둘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고, 이 모든 사달의 뒤에 은밀히 서 있는 그림자의 존재도 묘사됩니다. 여기서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성공으로 향하는 길은 크게 두 개입니다.
하나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은 채 의미와 철학에 집중하는 길입니다.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와 이들이 선택받은 이유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포트라이트에 놓이는 것은 바로 이 무대에서 이 다양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각자의 모습이고, 이를 통해 영화와 감독은 인간 단면의 무언가를 강조합니다. 미스터리는 그 말을 전하는 매개체에 불과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흥밋거리로 남습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을 설명하며 오락과 상업성에 집중하는 길입니다. 사실 이 현상은 초자연이지만 초자연이 아닌 것이었으며, 영화의 전개는 이 비밀을 밝히고 배후를 처단하려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이 길을 선택한 이상 영화는 이제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말이 되는 이유를 적절히 제시해야 하고, 이토록 귀찮은 무대를 펼친 정당성도 확보해야 하죠.
어느 모로 보나 전자가 나은 길입니다. 물론 난이도로 따지면 후자에 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보통은 완전히 한 쪽으로 기울기보다는 한 쪽을 선택한 채 다른 한 쪽의 향기를 입히는 식이죠. 그러나 <올드>는 포스터와 예고편 등 대부분의 홍보 수단에서 완전한 전자를 지향했음에도 완전한 후자에 속합니다. 중반부를 넘어서면 미스터리를 거의 SF에 가까운 억지로 풀어내려 용쓰죠.
쉽게 말해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 시간이 빨리 흐르는 해변이 있는 이유, 주인공 일행이 거기에 당도한 이유 등 영화의 모든 구성 요소에 메모지를 하나씩 붙여 가며 설명에 나서는데, 이 메모지가 한 장 한 장 늘어갈수록 새로운 메모지를 필요로 하는 물음표만 늘어납니다. 여기서만 벌어질 수 있었던 우연이 아닌, 과학적 근거가 붙은 필연이 되는 순간 소재의 잠재력은 걷잡을 수 없이 낭비된 꼴이 되죠.
미스터리를 다루려면 어둠 속에서 손에 든 것만 눈 앞에 들이밀며 흥미를 유지해야 하지만, <올드>는 켜 달라고 하지도 않은 불을 먼저 켜면서 구석구석을 보게 만들어 버리죠. 때문에 미처 보이지 않았고 볼 필요도 없었던 빈틈과 허점들도 하나둘 밟힙니다. 작은 상처가 순식간에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번지는 장면에 '과학적'인 잣대를 들이민다면 이들은 영화 내내 쉬지 않고 먹기만 했어야 맞는 거겠죠.
이런 오류들은 비단 사건뿐만 아니라 인물들에게도 옮겨붙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스터리를 유지하려면 소극적이고 아둔해야 하고, 이를 논리와 과학으로 풀어내려면 적극적이고 현명해야 합니다. 극중에서도 불과 하루만에 벌어지는 일이라 거의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일관성조차 확보하는 데 실패하죠. 6살 꼬마였던 아이들이 몸만 컸다고 난데없는 지식과 어른스러움을 갖추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알렉스 울프와 토마신 맥켄지 등 주목받는 신예들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팬텀 스레드>의 동네 웨이트리스 역일 때야 얼추 캐릭터와 들어맞았던 비키 크리엡스의 연기력은 절망적일 따름입니다. 가뜩이나 인물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마당에 머릿수는 필요 이상으로 많으며, 그 절반 이상은 멀쩡하질 않으니 나머지의 노력도 대부분은 무용으로 돌아가고 말죠.
2000년대에 받았던 비판들은 사실 본인이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이고, 그 주장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일념에 불탄 샤말란이 아주 의도적으로 그 때 그 시절과 똑같이 만든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 때도 맞지 않았던 아귀는 10년이 지난 지금엔 한 마디 더 어긋나고 말았죠. 모두가 도약이라 생각했던 <23 아이덴티티>와 <글래스>는 일종의 한눈팔기였다고 결론지은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