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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30. 2021

<인질> 리뷰

아이디어 선점에만 급급한 결과


<인질>

★☆


 필감성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천만 배우의 대명사 황정민을 원톱으로 내세운 NEW 엔터테인먼트의 <인질>입니다. 제작비로는 80억 원을 들였고, 블록버스터로 분류하기는 애매함에도 지금 시기 대부분의 영화들이 그렇듯 2019년 말에 촬영을 마쳤음에도 정식 개봉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죠. 2015년 유덕화 주연작 <세이빙 미스터 우>를 원작으로 두고 있습니다.



 평소와 똑같던 어느 새벽, 신작 <냉혈한>의 제작보고회를 마치고 홀로 귀가하던 대한민국 톱배우 황정민. 그런 그의 앞에 팬을 자처하며 시비를 거는 일당이 나타나고, 쓴웃음으로 애써 무시하며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습격을 당하고 맙니다. 눈을 뜬 곳은 외딴 건물 안, 오늘 밤 10시까지 합의한 몸값을 주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협박과 함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죠.


 연초 <차인표>가 차인표를 차인표로 등장시키며 코미디에 도전했다면, 이번 <인질>은 황정민을 황정민으로 등장시키며 스릴러에 도전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딱히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도 이름과 얼굴은 물론 성대모사용 명대사 몇 개 정도는 줄줄 읊을 수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납치를 당한다는 설정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죠.



 <인질>은 준비 단계에서부터 이 호기심과 거기에 걸린 기대에 부응하려 노력합니다. 관객들의 몰입을 도우려 황정민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신인 혹은 얼굴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로 구성한 것은 물론, 제작보고회 단골 MC 박경림이나 동료 배우 박성웅, <베테랑>이나 <부당거래> 등 현실의 재료들을 아끼지 않고 가져다 썼습니다. 훌륭한 디테일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죠.


 먼저 대강 가상의 톱스타를 설정하는 대신 황정민이라는 실존 인물을 굳이 데려온 이유를 증명해야 합니다. 단순히 '황정민이 연기하는 황정민'이 보고 싶었다기엔 황정민은 2012년 <댄싱퀸>에서도 본인과 같은 이름의 캐릭터를 연기한 전적이 있죠. 그렇다면 모두가 상식처럼 아는 황정민이라는 배우의 특징이나 상징을 극중 묘수로 써먹는 효용이라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극중 범인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황정민이라는 톱스타를 납치한 이유 또한 설득해야 합니다. 큰 돈이 탐나서였다면 당장 어디 부자 동네 근처에서 외제차나 명품으로 도배한 사람을 노리는 편이 몇 배는 쉬울 텐데,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는 매니저와 소속사는 물론 사건이 터졌을 때 쏠리게 되는 전 국민의 관심까지 굳이 무릅쓸 분명한 명분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인질>은 그 어떤 것도 준비해놓지 않았습니다. 물론 범인들이 말 그대로의 사이코패스 혹은 소위 말하는 또라이라면 딱히 대단하거나 논리적인 동기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인질>은 악당들을 묘사하는 데 꽤나 공을 들이는 편이죠. 잔혹하고 무모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범하고 조직적이기에 수사망을 꾸준히 피하며 지금까지의 명성과 개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고 암시합니다.



 그러나 막상 극중에서 펼쳐지는 악당들의 행보를 되짚어 보면 처음 순간에서부터 아무런 계획도 없이 어설픈 허세와 충동으로만 움직였을 뿐입니다. 근본도 없이 화만 가득합니다. 들키지 않고 조직 범행을 이어 오며 아지트씩이나 되는 공간을 꾸리기 전에 이미 공중분해되었어야 마땅한 수준이죠. 도심 한복판에서 중범죄란 중범죄는 다 저지르고 다님에도 몇 번을 멀쩡히 걸어나옵니다.


 한두 번은 운이었다며 무마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연출의 게으름일 뿐입니다. 황정민이 납치되고 그 범인들이 이렇게나 무시무시한 사람이라며 잔뜩 위세를 떤 뒤엔 남은 것이 없으니 무리수에 무리수를 반복하죠. 한 쪽을 치켜세우는 가장 아둔한 방법이 바로 상대가 되는 쪽을 끌어내리는 것인데, 악당이 활약하려 경찰이 바보가 되더니 황정민이 활약하려 악당이 바보가 되는 자충수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스릴러에서는 선역과 악역이 각자의 위기를 맞이하고 이를 해결하거나 해결되는 단계가 필요하죠. <인질>은 이를 필요 이상의 운과 우연, 혹은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캐릭터들에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난데없이 나타나거나 튀어나오는 장치들이 상황을 끝내버리는 통에 그에 연관되어 있던 다른 인물이나 사건들은 거기에 있었을 필요가 없어지는 식이죠.


 후반부쯤 되면 전반부와의 충돌은 물론 똑똑하거나 치밀한 사람이 아무도 없음에도 판은 제멋대로 커지기만 합니다. 그 탓에 사실 이 모든 것이 <인질>이라는 영화를 찍는 영화 속 영화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생길 지경이죠. 악당들은 그들의 개성을 뒷받침하는 것이 무엇 하나 없음에도 스스로의 멋에 취해 영양가 없는 전형적 악행들만 무의미하게 반복하고, 황정민을 연기하는 황정민만이 유일한 볼거리로 남죠.



 범인의 정체나 의도를 궁금하게 하지도, 사건의 절묘한 해결 과정을 만들어 나가지도, 아래에 깔린 자신만의 메시지를 준비하지도 못했습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판정에 재심의를 2번이나 받았음에도 끝까지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자극적이고 불필요한 장면들 역시 어느 곳에도 도움이 되지 못하구요. 증명하거나 설명해야 할 것은 하나도 안지 못한 채 기본적인 납치 스릴러의 재미조차 갖추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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