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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31. 2021

<D.P.> 리뷰

의무가 져야 할 의무들


<D.P.>

★★★★


 2015년 연재되었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D.P>입니다. <차이나타운>, <뺑반>의 한준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 조현철 등이 이름을 올렸죠. 지난 8월 27일 총 6부작으로 공개되었고, 설정상 다음 시즌의 제작도 충분히 가능해 보입니다. 제목인 <D.P.>는 'Deserter Pursuit(탈영병 추적)'의 줄임말이구요.



 집에서건 밖에서건 사는 게 영 쉽지만은 않은 청년 준호. 그렇게 흘러 흘러 입대하게 되지만, 외부와 차단되어 완전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이 곳에서의 적응도 영 요원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타고난 눈썰미와 운이 만나 탈영병들을 추적하는 특수 보직 DP로 차출되고, 그렇게 각자의 수법과 사연을 안은 각지의 탈영병들을 찾으며 전역을 향해 달려가게 되죠.


 탈영병들을 잡는 군인. 따져 보면 소위 말하는 '한국식 신파'의 효력을 몇 번이고 검증한 바닥에서 진작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은 것이 신기한 소재입니다. 모두가 익숙하다고 여겼던 무언가의 익숙하지 않은 면을 드러내 보인다는 점에서부터 호기심을 자극하고, 액션부터 드라마까지 꽤 장대한 장르적 잠재력 또한 갖고 있죠.



 물론 그만큼 조심해야 할 이유도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다루게 되는 모든 재료들의 균형점을 잘 인지해야 하죠. 일단 대한민국 군대에서의 탈영은 앞뒤가 어찌됐건 명백한 범죄 행위이기에 지나친 동정이나 이해를 유도해서도 안 되지만, 한편으로는 단순히 선과 악의 대립으로 나쁜 놈들 때려잡는 전개로 가기엔 그 아래에 깔린 이유를 살펴볼 이유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쉽게 갈' 자리가 많으나, 그 중 하나라도 넘어갔다간 작품성을 크게 내줄 여지도 매우 큽니다. 그냥 생각 없이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 패고 잡아넣으면서 한 회 한 회 연명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렇다면 이런 무대와 주인공을 택할 이유를 통째로 날리는 것이죠. 거기에 더해 연출자의 사상과 사고방식을 문제삼는 논란도 있을 수 있겠구요.



 바로 그런 면에서 <D.P.>는 상당한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6부작 대부분의 회차는 각각 한 명의 탈영병을 잡아내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되는데, 모두의 사연은 '대한민국 군대'라는 조직의 구성과 의미를 되짚어볼 각기 다른 조각으로 구성되어 있죠. 외부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최소한의 상식이나 합리성도 통하지 않을 수 있지만, 고착화된 체계가 서로와 달라붙어 떨어지지 못하는 곳이죠.


 공식적인 휴전국에서 군대를 이토록 비판적으로 해부하는 접근이 시청자 공감의 원천이라는 사실 자체가 다시 한 번 그 폐쇄성을 증명합니다. 군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군내 가혹 행위나 잊지 못할 선후임, 진급과 명성에 눈이 멀어 무마되는 사건 등 있어서는 안 되지만 공공연히 존재하는 병폐를 피부로 체험했기 때문이죠. <D.P.>는 6부에 걸쳐 그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려 하구요.



 물론 마냥 의미 전달에만 정신이 팔린 것도 아닙니다. 그와 같은 군대 이야기를 베이스로 탐정 수사물의 재미와 두 주인공의 개성으로 시너지를 노리고, 한 명 한 명 살아있는 조연들의 활약까지 겸해 인물과 사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하죠. 매 화 새로이 등장하는 인물들도 후반부에 재활용하거나 더 큰 그림의 획으로 사용하는 등 1차원적으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극의 가장 큰 동력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구교환의 한호열과 조현철의 조석봉이 되겠습니다. 호열은 두 명이 헤매던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지면 세 갈래가 아닌 게 다행이라며 위안을 삼는, 낙천과 여유를 겸비한 모범적 리더죠. 민간인과 군인부터 문제의 발생과 해결, 나아가 캐릭터와 시청자에 이르기까지 양 극단 사이를 매끄럽게 잇는 도개교 기능을 톡톡히 해냅니다.


 1화에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틈틈이 예고하는 석봉은 매 화를 거듭하며 작년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도 비슷한 잠재력을 선보였던 조현철 배우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혀 떨칩니다. 그렇게 조금씩 커지던 석봉의 존재감은 후반부에 걸쳐 작품의 주제의식을 본격적으로 폭발시키고, 앞선 등장인물들의 사연과 기승전결을 모아 한 줄의 대사로 함축하죠.



 다른 에피소드들과는 부정적인 의미로 결이 다른 3화 <그 여자>나 지나치게 퍼즐과 같은 그림 완성에 집착하는 4화 <몬티홀 문제> 등 에피소드별 완성도를 파고들 수도 있겠지만, 그 에피소드들 역시 주조연들의 개성을 더하고 시즌 전체의 진행에 기여하는 등 최소한의 존재 의의는 지키는 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짧게만 느껴졌던 6부작 구성이 적정 선이었다고 느껴지기도 하구요.


 오히려 모든 등장인물들 중에서는 정작 주인공인 정해인의 준호 쪽이 비중에 비하면 떡밥이나 흡인력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만, 다음 시즌들에서 풀어내려 의도적으로 보따리를 풀지 않은 감도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상병이라는 설정이었으나 여기서는 갓 입대한 이병으로 변경된 것만 보아도 긴 여정을 예고하는 듯하죠. 이 정도의 완성도라면 누구나 환영할 만한 각색이겠습니다.



 한없이 인간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음에도 신파로 빠지지 않았고, 메시지의 의미만 강조하며 창작물이 응당 갖춰야 할 재미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방송사 눈치 안 봐도 된다며 신나서 자극적인 연출과 설정으로 출신 성분을 뽐내지도 않았구요. 군대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중 훌륭하다고 손꼽히는 작품들이 왕왕 있지만, 대중성까지 잡아낸 사례로는 아마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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