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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19. 2021

<아미 오브 더 데드: 도둑들> 리뷰

천하제일 허술대회


<아미 오브 더 데드: 도둑들>

(Army of Thieves)

★★☆


 원작도 없는 오리지널 영화를 찍으면서 스핀오프까지 같이 제작하다니, 배짱도 좋습니다. 지난 5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좀비 영화 <아미 오브 더 데드>의 외전인 <아미 오브 더 데드: 도둑들>이죠. 원제는 <Army of Thieves>지만, 항상 국어 표기에 난항을 겪는 th 발음이 신경쓰였는지 공식 제목에 <도둑들>이라는 부제를 붙이는 걸로 만족했네요.



 평범한 은행원으로 지겨운 삶을 살고 있는 세바스찬. 평소 금고의 역사와 작동 방식에도 관심이 많은지라 시간만 있으면 터는 것도 문제는 아니지만(!), 워낙 얌전한 성격 탓에 그저 아무도 관심 없는 유튜브 동영상이나 올리는 게 낙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웬 여자가 찾아와 업계의 전설이나 마찬가지인 금고들을 털자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제의하고, 그렇게 세바스찬의 모험이 시작되죠.


 사실 각본 단계에서부터 야심차게 기획된 시리즈치고는 그리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2011년 <맨 오브 스틸>부터 2017년 <저스티스 리그>까지, 워너브라더스가 잭 스나이더라는 보물을 억누른 참사가 지금의 DC 유니버스라는 목소리가 꽤 많았죠. 그에게 전권만 부여된다면 <왓치맨>이나 <300>의 영광을 되새길 기회가 분명히 올 거라며 말입니다.



 이는 4년에 걸친 감독 본인과 팬들의 캠페인 끝에 올해 공개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서 폭발했습니다. 이랬어야 하는 영화가 저렇게 나왔으니 슬픈 일임에 틀림없고, 설상가상으로 잭 스나이더 본인이 <저스티스 리그> 3부작의 원안을 끝까지 공개하며 그 대단한 영화들을 볼 수 없게 된 현실은 더욱 슬프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죠.


 다소 엉뚱하게도 이 슬픔에서 생겨난 잭 스나이더 진심 모드(?) 신봉은 차기작이었던 <아미 오브 더 데드>로 옮겨붙었습니다. 막대한 제작비와 상상 이상의 자유권을 부여하는 넷플릭스,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로 한창 신이 난 잭 스나이더, 명작 <새벽의 저주>와 같은 좀비물이라는 거대한 덩어리들이 만나며 사람들은 당연히 엄청난 작품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막대했던 기대는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한 번에 꺼졌습니다. 막상 뚜껑을 연 <아미 오브 더 데드>는 나름대로의 진화와 발전을 거듭해 온 좀비물 가운데에서 어떤 개성도 확보하지 못했고, 아무리 못해도 명장면 하나는 기깔나게 뽑아냈던 잭 스나이더 특유의 연출도 사라지며 의문만을 남겼죠. 그리 높지 않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평균선에도 아슬아슬하며 기껏 모인 군중을 해산시켰습니다.


 보통은 1편의 성공이 최소한의 전제가 되어야 속편이나 프리퀄이 기획되고, 그 이상의 인기를 구가한 뒤에야 고려되는 것이 스핀오프죠. 그럼에도 <아미 오브 더 데드>는 1편의 제작 착수와 동시에 스핀오프를 촬영하고 속편을 기획했습니다. 그것도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도둑들이라는, 굳이 이 시리즈의 스핀오프로 기획하는 것이 맞나 싶은 줄거리를 차용했죠.



 <아미 오브 더 데드: 도둑들>은 전편에서 금고 기술자로 활약한 디터의 첫 번째 모험을 다룹니다. 잭 스나이더는 제작자로 넘어갔고, 디터 역의 마티아스 슈바이크회퍼가 감독, 제작자, 주연까지 1인 3역을 맡았죠. <왕좌의 게임>과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활약한 나탈리 엠마누엘에 루피 O. 피, 스튜어트 마틴, 구즈 칸, 조나단 코헨 등이 함께 출연했구요.


 기승전결은 아주 단순명료합니다. 업계에서는 전설로 치부되는 한 금고 제작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세 개의 금고를 만들었고, 부보다는 명예를 좇는 우리의 주인공들이 그 금고들에 도전하죠. 정확히는 도둑질 영화인 케이퍼 무비로 분류되어야 맞겠지만, 보통의 케이퍼 무비들처럼 멤버들의 개성과 매력이 흘러넘치는 가운데 합을 맞추는 영화냐고 하면 또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팀 영화인데 팀 영화가 아닙니다. 주인공은 그저 천부적인 재능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금고든 뚝딱 따낼 수 있고, 전설의 금고들은 심지어 은행에서 실제로 돈을 넣어 사용중임에도 놀랍도록 허술하게 보관되어 있죠. 보통의 도둑질 영화들이라면 금고 앞까지만 가는 데에도 엄청난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행동대장의 몇 마디와 해커의 손놀림 몇 번이면 만사가 해결됩니다.



 이는 영화가 털리는 금고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를 통해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는 세바스찬의 여정 자체에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는 결과론적인 분석에 가깝고, 금고를 터는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별볼일없는 와중에 남은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죠. 그래도 의외로 주인공인 세바스찬과 배우 마티아스 슈바이크회퍼의 얼빠진 매력 덕에 버틸 수 있는 순간이 몇 개 있습니다.


 나머지도 아주 정형적이고 단순합니다. 그나마 얼굴이 익은 나탈리 엠마누엘의 그웬돌린에게도 리더의 카리스마는 찾아볼 수 없죠. 처음부터 팀이라고 느껴지지도 않던 무매력 구성원 간의 궁금하지도 않았던 과거사, 여기저기서 때를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는 내분 등이 러닝타임을 차지합니다. 각본상의 구조로 보아도 세바스찬과는 별 상관 없는 전개인지라 뭐가 어떻게 되든 집중이 어렵구요.



 소재나 줄거리에 과분하게 배정받은 제작비 덕에 보는 맛은 있고, 그저 다이얼 돌리기로 점철된 금고털이도 일단 대충 신기해 보이기는 합니다. 세바스찬의 꿈 등 <아미 오브 더 데드>와의 연결점은 거의 억지로 유지하는 수준에 가까운데, 좀비 색을 최대한 덜어낸 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선택이 되었네요. 당연히 속편 <플래닛 오브 더 데드>에선 이 장점을 갖고 있기가 상당히 어렵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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