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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19. 2021

<강릉> 리뷰

무뎌서 그저 찌르기만


<강릉>

★★☆


 윤영빈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자 유오성, 장혁, 오대환, 김준배, 박성근, 신승환, 이채영, 한선화 등이 뭉친 <강릉>입니다. 두 주연배우는 지난 2015년 방영된 <장사의 신 - 객주 2015>에서도 호흡을 맞춘 바 있죠. 포스터 디자인과 '범죄 액션 누아르'라는 카피만으로 꽤 많은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개봉은 오는 11월 10일로 예정되어 있네요.



 강릉 최대 조직의 실권자로 차기 리조트 사업을 책임지게 된 길석. 평화와 의리를 중요시하며 질서있게 살아가던 그의 앞에 야욕으로 타오르는 남자 민석이 나타납니다. 조직의 규칙을 중시하며 살아가던 그들에게 민석은 존재만으로 크나큰 혼란을 가져오고, 눈 앞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그의 전진은 피할 수 없는 대결을 향해 나아가죠.


 시류에 구애받지 않는 느와르입니다. 장르 자체가 시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굳이 나서서 신경을 쓸 필요까지는 없는 장르죠. 딱 봐도 남자 냄새 풀풀 풍기는 <강릉>은 그 특성에 영화의 모든 것을 바쳤구요. 좋게 수식하자면 '정통'이라는 단어가 나와야 맞지만, 기본은 보장한다는 말이 꼭 훌륭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구조는 상당히 간단합니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먹고 잘 싸우면서(?) 잘 살고 있던 동네에 미친개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외부인이 들어옵니다. 가는 곳마다 걷잡을 수 없는 피를 흩뿌립니다. 최고의 부나 명예를 노리는 것 같지도 않고, 그저 자기만족을 위해 칼춤을 춰 대는 것 같아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작았던 바람은 태풍이 되고, 이 높이까지는 올라오지 못하리라는 안심도 등불이 되고 말죠.


 사건들도 단순하고 반복적입니다. 여기서 썰고 저기서 써는 그림의 반복이죠. 도대체 저런 실력으로 지금까지 어떻게 강릉 바닥을 휘어잡았는지 모를 정도로 한 명의 천편일률적인 계획에 차례대로 무너져내립니다. 핸드폰보다 더 열심히 가지고 다니는 사시미로 흥건한 액션도 크게 보는 맛은 없고, 어차피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 탓에 그저 인물 관계도의 진척을 위한 장치들 중 하나에 불과하죠.



 그 와중에도 동종 영화 특유의 명대사 시간은 잊지 않습니다. 사람이란 어떻고 인생이란 어떻다며 세상 따위 살 만큼 산 사람들의 잠언 배틀이 이어지죠. 급소에 날리는 칼과 같은 회심의 대사를 날리면 어떻게든 그를 이후에 다시 들고 와서 복선으로 삼는, 지극히도 영화적인 합입니다. 듣기에 따라 충분히 명대사로 삼을 순간도 더러 있지만, 워낙 타석에 자주 서는 터라 타율은 애매모호하죠.


 부산, 목포, 인천 등 특정한 지역을 무대로 삼은 영화들 중에서는 제목을 지명으로 지을 정도로 애정이 극진한 편입니다. 극중 '우리 편' 사람들은 모두 사투리를, 그와 대립하는 '너네 편' 사람들은 모두 표준어를 구사하는 구도에서부터 출발하죠. 그 잘난 외부인은 모르는 우리들만의 은은한 매력을 지닌 도시로 묘사되는데, 사실 무대보다는 캐릭터가 강조되는 영화인지라 혼자만 신나 보일 때가 많습니다.



 <강릉>의 몇 안 되는, 하지만 강력한 장점은 캐릭터에 있습니다. 개중에서도 장혁의 민석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죠. 뚜렷하고 강인한 목적 의식으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행보를 보이지만, 특정한 지향점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장애물로 인식하는 야생동물이죠. 그렇다고 여느 실패한 스릴러들이 그러하듯 극악무도함을 강조하다가 우스꽝스러워지는 실수를 저지르지도 않습니다.


 다행히도 영화는 민석과 같은 캐릭터가 주연이 아닌 주연급 조연일 때 가장 큰 잠재력을 발휘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보여줄 것은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은 보여주지 않죠. 균형추의 반대편에서 서로의 존재감을 증폭할 유오성의 길석이 여러모로 제 역할을 해 주지 못하는 와중에도 마수를 뻗치며 꽤 강렬한 캐릭터 하나는 뇌리에 남기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인물 관계도와 거기서 빚는 사건들은 또 다시 전형과 반복으로 채워집니다. 심지어는 서로 형님 동생 하는 뒷세계 사람들끼리의 느와르로 시작한 영화는 유오성을 캐스팅한 김에 <친구> 흉내도 내고 싶어합니다. 난데없는 우정, 같은 조직폭력배 사이에 들이대는 선악의 잣대 등 가진 재료로 낼 수 있는 결론을 뒤섞으며 아무 것도 아닌 곳에 떨어지고 말죠.



 기본은 하지만 그 이상은 하지 못합니다. 소위 말하는 '진한' 감성을 추구했으나 지향하는 만큼의 농도는 나오지 않았죠. 제목을 다른 어떤 지명으로 바꾸어도 무방한 줄거리임에도 굳이 강릉을 고집했고,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고 있다는 그 외로운 자신감은 하릴없이 엉뚱한 곳을 맴돕니다. 이토록 칼질이 난무하는 영화에 꽤 평범하다는 말을 붙이는 기분도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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