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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Nov 19. 2021

<장르만 로맨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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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만 로맨스>

★★☆


 조은지 배우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자 류승룡, 오나라, 김희원, 이유영, 성유빈, 무진성, 오정세, 류현경 등이 뭉친 <장르만 로맨스>입니다. 한창 <입술은 안돼요>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다가 막판에 제목을 변경한 듯하죠. 오는 17일 개봉 예정인데, 딱 일주일 뒤에 개봉되는 <연애 빠진 로맨스>와 비스무리한 제목 탓에 살짝 혼선을 부를 것 같기도 합니다.



 한때 잘 나가는 소설가였지만 7년째 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 김현. 10년 전 이혼한 전처 미애, 고등학생 아들 성경과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집안 사정과 질풍노도의 사춘기 문제로 심심찮게 엮이곤 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정신없는 관계도에 출판사 동료 순모, 옆집 여자 정원, 등단을 꿈꾸는 제자 유진이 끼어들며 이들의 사생활은 오늘도 평범과는 거리를 둡니다.


 맨날 보면 로맨틱 코미디만큼 흔한 것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어째 오랜만입니다. 보통은 등장인물들의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소위 말하는 막장(...)으로 치달을 확률이 올라가죠. 청춘 남녀의 풋풋한 첫사랑보다는 겪을 것 다 겪고 알 것 다 아는 사람들의 만남에서 뽑아낼 그림이 더 다양하기는 할 테니까요. 어찌됐든 다양한 관객층은 후자 쪽에 얻어걸릴 공감대가 더 많기도 하겠구요.



 바로 그 곳이 <장르만 로맨스>가 집중한 지점입니다. 관계의 다양성이죠. 고등학생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누가 뭐라든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신만의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목록에 보통 연애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쉽게 떠오를 법한, 비슷한 연령대의 남녀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빠져 있죠.


 사랑이라는 것은 그 소유자조차도 자신의 의도대로 다룰 수 있는 감정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겨나 자신도 이겨낼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제 3자들이 재단하려면 얼마든지 재단할 수도 있고 그 결과도 본인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 또한 맞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도대체 어떻게 할 수가 없음이 사랑의 마력이기도 하죠.



 얼핏 보아도 아주 형이상학적이거나 철학적인 주제는 아니지만, 영화는 이를 표현하는 데 있어 살짝 치사하다 싶은 쉬운 길을 선택합니다. 주인공을 작가로 설정하고, 그가 써내려간 책의 주제와 영화의 주제를 일치시킵니다. 극중 주인공이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장면은 자연스럽게 영화의 부연 설명이 되죠. 가만 두어도 알 수 있는 바를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설명하자니 조금 모양이 빠집니다.


 결정적으로, 대부분의 포스터와 예고편엔 영화에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관계가 의도적으로 빠져 있습니다.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여러 관계들 중 가장 큰 존재감을 차지할뿐더러, 로맨틱 코미디 쪽을 제외한 영화 자체의 기승전결과도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죠. 똑같이 미혼모 소재를 다루면서도 홍보 단계에서는 정반대로 접근한 <굿바이 싱글>와 <애비규환> 중 전자 쪽입니다.



 최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이제 웃기기는 충분히 웃겼으니 하고 싶은 말 하겠다는 듯 소소한 조연들의 소동은 대강 마무리를 짓는데, 워낙 초장부터 거미줄처럼 얽힌 인간관계를 촌극으로 풀어낸지라 완성도에 금이 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두 명만 쏙 빼내서 둘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에는 나머지 사람들과 주고받은 영향을 끝까지 보여줄 책임을 스스로 만들어낸 탓입니다.


 사랑의 자유로움을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뻔뻔함과 쿨함으로 응대하려는 영화치고는 실망스러운 선택입니다.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피하려고 내린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놓고 불륜으로 시작하는 영화인지라 딱히 설득력은 없죠. 반대로 꼭 진지하게 전하고 싶어서 아껴 두었다고 말하기에는 다른 인물 관계와 이리저리 뒤섞이며 농도가 지나치게 떨어집니다.



 대사빨 세워 보려 분위기에 어긋난 명대사나 에피소드도 집어넣어 보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고, 연기 연습 중인 배우 지망생이라는 캐릭터 특성이 실시간으로 반영된 듯한 몇몇 조연들의 연기력은 전체 장면의 몰입을 깨뜨리는 수준입니다. 불쾌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결과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한껏 쿨하려는 외양에 비하면 내실의 강단이 준비되지 않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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