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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Dec 01. 2021

<디어 에반 핸슨> 리뷰

그저 놀라운 자기 정당화


<디어 에반 핸슨>

(Dear Evan Hansen)

★★


 2012년 <월플라워>, 2017년 <원더>를 내놓은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신작 <디어 에반 핸슨>입니다. 브로드웨이를 휩쓴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로 옮겼으며, 해당 작품의 주연이었던 벤 플랫을 그대로 스크린에도 데려왔죠. 그 외에도 줄리안 무어, 에이미 아담스, 케이틀린 디버, 아만들라 스텐버그, 콜튼 라이언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개봉은 오는 17일로 잡혀 있네요.



 자신감 제로, 존재감 제로, 어딜 가든 눈에 띄지 않는 소년 에반 핸슨은 매일 스스로에게 편지를 쓰며 어제와 다른 특별한 하루를 꿈꿉니다. 어느 날 자신에게 쓴 편지가 동급생 코너의 손에 들어가고, 며칠 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그 편지를 코너의 유서로 오해하는 일이 발생하죠.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봐 주기만을 바랐던 에반은 쏟아진 관심에 코너와의 추억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로 '읭?'스러운 설정입니다. 관심이 고팠던 한 소년이 세간의 이목을 위해 일면식이나 겨우 있었던, 친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동급생과의 추억거리들을 지어냅니다. 실제로 일어난다면 도무지 멀쩡하거나 곱게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은 놀라우리만치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둘씩 꺼내드는 설정들을 팔짱 끼고 바라봐야 하죠.



 사실 뒤로 가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아무도 몰랐던 비밀이 새로이 등장해 판을 통째로 뒤집는 것도 아니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짓말을 다룬 여느 영화들처럼 파국으로 치달으며 캐릭터들을 옥죄는 영화도 아니죠. 감독의 전작들만 보아도 이성보다는 감성의 영역에서 사람의 깊고 아픈 곳을 어루만지려는 성향이 짙은데, <디어 에반 핸슨>과는 조합이 조금 이상합니다.


 결국에는 이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일이 이토록 커지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던 에반 핸슨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준비입니다. 오죽했으면, 얼마나 힘들었으면, 외로웠으면 등의 숨어 있지만 숨어 있지 않았던 수식어들을 하나씩 드러내는 식이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뮤지컬만큼 손쉬운 접근법도 찾기 어렵겠구요.



 그러나 그렇게 그러모은 준비물에도 영화의 설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에반 핸슨의 개인적 사정이 어찌됐건 최초의 잘못이 돌이킬 수 없이 불어나 꽤 많은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혔지만, 영화는 이토록 많은 타인이 결부된 사건조차 에반 핸슨이라는 개인의 성장에 이용할 뿐이죠.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가련하다는 듯 노래를 불러도 사실은 뒤집히지 않습니다.


 불행에 정도를 따지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니지만, 심지어 에반이 겪어 온 나날들은 어찌 보면 평범함의 중간 범위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불우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를 받아들이는 10대의 에반이 너무나도 감성적이고 여린 나머지 감당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묘사될 뿐, 저지른 잘못에 비할 바는 전혀 되지 못한다는 것이죠. 아픔은 상대적인 것이라 주장하기엔 본인의 아픔만 아픔이라 여기는 꼴입니다.



 게다가 영화는 에반을 제외한 모든 주조연들이 에반의 잘못을 너무나 쉽게 이해해 준다는 전개를 택하며 불 난 데 기름을 붓습니다. 다들 속도 깊고 마음도 넓어서 이미 엎질러진 물에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공익을 위한 전진을 선택하죠. 일부 정도는 실제로도 그럴 수 있겠다 치지만, 이미 슬픈 에반을 더 슬프게 만들지 말자는 결연이라도 한 듯 기계적으로 뭉치는 광경은 당연히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이미 본토에서도 숱한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벤 플랫의 10대 고등학생 연기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용감한 각본만 놓고 보아도 에반 핸슨이라는 캐릭터가 관객들의 마음에 들게 하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지만, 담임 교사라고 해도 믿을 외양으로 상처 많은 소년을 표현하기엔 제약이 많죠. 멀찍이 떨어진 무대의 뮤지컬처럼 목소리 하나만 믿고 가기엔 매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대전제를 받아들인 후에야 제대로 된 감상이나 분석이 가능할 텐데, 진입 장벽이 생각보다 훨씬 높습니다. 영화의 전개와 함께 계속해서 높아지는 통에 넘기는 점점 어려워지구요. 거기서 막혀서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멀쩡히 이해할 수 없죠. 그나마 귀에 남는 멜로디가 몇 개 있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에반의 내면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하면 달라붙어 있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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