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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Feb 07. 2022

<경관의 피> 리뷰

익기도 전에 뒤집기만


<경관의 피>

★★☆


 2011년 <아이들...> 이후 10년만에 돌아온 이규만 감독의 신작, <경관의 피>입니다. 일본 작가 사사키 조가 2008년에 내놓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으며, 해당 소설은 본토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된 바 있죠. 국내판 영화는 소설의 일부만을 옮긴 작품이구요. 조진웅, 최우식, 박희순, 권율, 박명훈 등이 출연해 오는 1월 5일 개봉 예정입니다.



 동료 경찰의 비도덕적 수사를 법정에서 증언할 정도로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신입 경찰 민재. 그를 높이 사 은밀히 접근한 황 계장은 민재를 평소 눈엣가시였던 광역수사대 반장 강윤의 감시자로 투입합니다. 그렇게 출처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두르고 범죄 소탕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강윤과의 동행이 시작되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세력전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더욱 큰 비밀을 향해 달려갑니다.


 초중반부는 흥미롭습니다. 경찰의 뒤를 캐려 잠입한 경찰이라는 설정과, 막대한 후원금을 끼고 법의 경계선에서 수사하는 경찰이라는 설정 둘 다 별개의 영화로 다루어도 충분한 무게감을 갖고 있죠. 서로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상황, 정의와 도덕 사이에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상황 모두 각자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한 긴장으로 무장하고 있는 덕입니다.



 시점으로 따지면 최우식의 민재가 주인공이 맞지만, 흡인력의 대부분은 조진웅의 강윤 쪽에서 발생합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고급품을 두르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대담한 결정에 주저하지 않는 카리스마까지, 영화와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내리는 수사물 속 경찰 내지는 형사 캐릭터들 중에서도 자신만의 색을 확보하죠. 사건의 전개 면에서나 작품의 의의 면에서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는 인물입니다.


 여기서의 의의란 경찰의, 나아가 정의의 정당한 집행 방식 그 자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부패한 경찰'이라는 소재는 지금껏 수많은 창작물에서 수도 없이 다루어졌지만, 흘러들어온 검은 돈을 사리사욕이 아닌 정의의 집행에 사용되는 경우는 꽤나 특이하죠. 막대한 돈은 불가능했던 무언가를 가능케 하는 수단이 되기 쉽고, 출처와 과정이 어찌됐건 더 큰 정의로 귀결된다면 옳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의문입니다.



 비슷한 소재를 차용한 경우 대부분은 '공권력이 어쩌지 못하는 나쁜 놈들을 우리의 방식으로 때려잡는' 소규모 조직을 다루곤 하죠. 그들의 뜻을 따르는 자금줄 한 명을 등장시켜 귀찮은 설명을 퉁치는 편이구요. 그러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간 <경관의 피>는 잔챙이를 주기적인 정보원으로 삼아 더 큰 물고기를 노리고, 야쿠자에게 빌린 돈으로 마약 사업에 동참해 일망타진을 노리는 식입니다.


 이 논쟁거리를 바탕으로 복잡다단한 인물 관계도를 펼치는 중반부까지는 자연스러운 흥미를 유지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관객들은 신입인 민재의 시점에서 기관 내부에 이미 깊이 뿌리내렸던 것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당연히 모든 것이 새롭고 어리둥절합니다. 애초에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는 일들이 너무나도 당연히 자행되는 광경의 마력도 그 당황스러움을 바탕으로 하죠.



 그래서 영화는 여러 겹으로 숨긴 진실을 스스로의 무기로 삼기로 결심했습니다. 쉽게 말해 '반전의 연속'이죠.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눈에는 이렇게 보였던 것이 사실은 이런 것이었고, 알고 보니 그것 또한 또 다른 사실을 향해 있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여러 번 속는 거야 재미만 있다면 얼마든지 속아 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억지를 쓰기 시작하는 터라 실패하게 되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날벼락처럼 떨어지는 건 반전이 아닙니다. 범인을 색출하려던 중 최후반부에 갑자기 튀어나온 새로운 인물이 범인이라고 하면 그건 반전이 아니죠. 어쨌든 이런저런 근거와 복선이 있었다며 관객들의 의심을 부르는 떡밥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데, 이 구조가 여러 겹이 되면 각본 자체의 불필요하거나 고의적인 도발이 됩니다. 반전을 위한 반전을 집어넣으며 억지를 부리게 된다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최우식의 민재는 처음부터 무색무취했던 통에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지만, 초중반부를 이끌었던 조진웅의 강윤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조연들이 소모품으로 전락합니다. 정확히는 주연들이 각본의 소모품이 된다면 조연들은 소모품의 소모품이 되죠. 반전의 근거를 제공하려고 전체적인 그림은 물론 각자의 개성과도 어긋난 장면들을 집어넣는 탓입니다.


 이 접근이 앞서 언급한 정의관 논쟁과 옮겨붙으면 또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정답이 없어서 매력적인 소재에 정답을 정하는 것만큼 김빠지는 것도 없죠. 그러나 <경관의 피>는 반전을 위해 선악 구도를 인위적으로 매만지며 저울의 위가 아닌 저울 자체를 건드립니다. 후반부에 접어들면 사실상 옳은 사상과 옳지 못한 사상이 아닌,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귀결되며 논쟁의 의미를 크게 떨어뜨리죠.



 하나의 몸에서 나온 손발의 합이 애매합니다. 마약 조직의 타진이라는 기본 줄거리는 상당히 시시한 편인데, 그 빈 자리를 채우는 재료들이 어느 순간 서로와 뒤엉키면서 듬성듬성한 골조를 노출시키죠. 사족으로 자막이 절실한 몇몇 장면들 탓에, '경관의 피'가 아닌 '경찰의 피'로 나오는 대사 탓에 그러지 않아도 골치아픈 관계도에 쓸데없는 물음표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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