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것이 가리키는 있었던 것들
장편 데뷔작부터 상이란 상은 휩쓸며 할리우드의 엄청난 주목을 한몸에 안고 있는 마이클 사노스키의 <피그>입니다. 상복 터진 바로 그 장편 데뷔작이죠. 온갖 B급 C급 영화들로 점철되며 나락으로 갔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필모그래피에도 빛을 내린 작품이구요. 그 외에도 알렉스 울프, 아담 아킨 등이 이름을 올려 오는 2월 23일 국내 개봉 예정입니다.
이름을 버리고 숲속에서 트러플 돼지와 살던 롭. 그 누구보다 월등한 품질의 트러플을 찾아내는 돼지 덕에 롭과 그의 트러플은 암시장의 귀한 몸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그의 돼지를 탐내는 큰손들도 등장합니다. 어느 날 기어이 습격 후 롭의 돼지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분노한 롭은 그를 찾던 유일한 사람인 중개상 아미르와 함께 15년 전에 떠난 포틀랜드로 돌아가게 되죠.
줄거리만 보면, 그리고 그것이 서서히 시각화되는 초반부만 보면 꽤나 혼란스러운 영화입니다. 밝혀지지 않은 사연으로 은둔 생활을 하는 주인공까지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애완 돼지를 키우는 것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돼지가 하필 최상급 트러플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트러플 돼지인데, 그게 돈이 되는 것 같으니 나쁜 사람들이 그 돼지를 노리는 데부터 알 듯 말 듯한 이질감이 생겨나죠.
그런데 영화는 거기서 한 술 더 뜹니다. 돼지가 사라지자 평소 별 말도 없고 감정도 없는 것처럼 보였던 우리의 주인공이 움직입니다. 아무런 단서가 없는 와중에도 실낱같은 줄을 잡아당깁니다. 어느 곳에 가든 모르는 사람이 없고, 누굴 만나든 이 사람을 실제로 본 것에 영광과 충격이 교차하는 반응 일색입니다. 강아지와 킬러를 돼지와 요리사로 바꾼 <존 윅> 1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하지만 <피그>는 드라마입니다. 돼지를 찾아다니며 조금이라도 잘못한 것 같은 사람은 요리사답게(?) 죄다 썰어 버리는 액션을 기대하면 큰일날 정도로 느린 호흡을 자랑합니다. 애초에 롭이 과묵한 성격이라는 것 자체가 몇 안 되는 대사의 무게를 더하기 위함이기에 대부분의 러닝타임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쫓아가야 합니다. 관객은 영문도 모른 채 운전기사나 하고 있는 아미르와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의 본격적인 방향성과 메시지는 조금씩 드러나는 롭의 과거와 함께 형태를 갖춥니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트러플 돼지 달랑 한 마리만 끼고 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분명한 사연을 안고 있죠. 여느 영화라면 회상이나 독백, 그를 잘 아는 조연의 대사 등으로 너무나도 쉽게 처리할 그 사연을 <피그>는 영화의 줄기로 삼고 있습니다. 그 줄기를 한 꺼풀씩 드러내는 방식은 영화와 감독의 무기가 되겠구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극히 제한된 가운데 보여주지 않는 것에게 흥미를 맡깁니다. 지금 나오는 화면의 단서들을 능동적으로 모아 퍼즐을 맞추어나가야 합니다. 롭은 과거 어떤 요리사였고, 어떤 남편이었고, 어떤 아내가 있었으며, 어떤 일을 겪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맞추어나가야 합니다. 한 조각이라도 놓치면 완성하기 어려운 이 퍼즐은 모조리 맞추었을 때에야 의도된 효과를 냅니다.
그렇게 <피그>는 상실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의 가슴 속엔 수많은 방이 있고, 살면서 많은 것들에게 그를 하나씩 내주게 됩니다. 사람이 될 수도, 사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고 싶어서 내줄 수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내주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방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연약합니다. 조금의 충격에도 깨지거나 부서지기 쉽습니다. 그래도 수가 부족하지는 않으니 다행입니다.
그러나 한 번 부서진 방은 고칠 수 없습니다. 가리거나 잊을 수는 있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린 것은 드러날 수 있고, 잊은 것은 생각날 수 있습니다. 완전히 가렸다고 생각할 때,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할 때 다시 나타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다른 것이 다른 방에 들어가 전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오더라도 이미 생겨 버린 상처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를 더 이상 떠올리지 않는 데에, 그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는 데에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따져 보면 그에 실패한 사람보다 성공한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도, 무엇도, 어떻게도 대체할 수 없는 구멍을 안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피그>는 그 새삼스러운 소수를 바라봅니다. 동정하거나 경외시하지 않은 채 그저 같은 눈높이와 시간에서 바라봅니다.
연인을 등장시키지 않은 채 사랑을 이야기하고, 갈등을 등장시키지 않은 채 상실을 이야기합니다. 제목이 '돼지'인 영화인데 돼지 영화는 아닙니다. 이처럼 비친 그림자를 통해 형태를 짐작케 하는 영화입니다. 본디 그림자라는 것엔 명도만이 있을 뿐임에도, <피그>가 보여주는 그림자에는 왜인지 모를 채도가 느껴집니다. 특이한 소재와 특이한 연출이 맞물려 보편적인 가치를 드러내는, 성공적인 실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