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르게 능숙한 보물찾기
<좀비랜드> 시리즈와 <베놈>의 루벤 플레셔 신작, <언차티드>입니다. 1억 2천만 달러를 들여 톰 홀랜드, 마크 월버그, 소피아 알리, 타티 가브리엘, 안토니오 반데라스를 모았죠. 사실 감독이나 출연진보다도 너티 독의 동명 비디오게임 시리즈를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던 영화입니다. 소닉과 피카츄가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는(!) 동네의 새 도전자입니다.
어릴 적 먼저 모험을 떠난 형 샘을 그리워하며 평범한 삶을 살던 네이선.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바텐더로 일하던 술집에 웬 남자가 찾아오고, 자신을 설리라고 소개한 그는 네이선에게 일생일대의 제안을 건네죠. 마젤란이 잃어버렸다고 전해지는 천문학적 가치의 금은 물론, 평생 다시 만나기만을 기다렸던 형을 찾아주겠다는 선언에 네이선의 가슴 속 깊은 곳 잠자고 있던 모험심이 깨어납니다.
아무리 전 세계 게임 팬들의 마음을 울린 대작이자 흥행작이라고 해도 업계를 바꾸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게임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시리즈의 모를 수가 없는 주인공이라고 해도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알 사람은 손에 꼽겠죠.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과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다니, 그것이야말로 비디오게임 원작 영화들의 태생적인 장애물일 겁니다.
<수퍼 소닉>이나 <명탐정 피카츄>의 성공은 엄밀히 말하면 게임 원작 덕분이라기보다는 캐릭터 산업의 후광에 공을 돌리는 것이 맞아 보입니다. 제아무리 네이선 드레이크라는 간판 주인공이 있다 한들, <언차티드>가 영화판에서 시작부터 캐릭터의 힘을 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툼 레이더>의 성공이 안젤리나 졸리가 아닌 라라 크로프트라는 판단은 2018년 리부트의 부진을 낳았습니다.
다행히도 <언차티드>는 이보다 더 대중적일 수 없는 액션 어드벤쳐 영화입니다. 전래동화 속에서나 익숙했던 금은보화를 찾아 떠나는 모험가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영화 팬들의 가슴을 울렸죠. 언급한 <툼 레이더>는 물론 <인디아나 존스>, <캐리비안의 해적>, <내셔널 트레져>, <쥬만지>, <정글 크루즈> 등 무대와 연령대를 가리지 않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캐릭터 관계도도 이보다 전형적일 수 없습니다. 혈기왕성하지만 우유부단하지 않은 주인공, 듬직한 동료, 연인과 라이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이성 친구, 분명 주인공만 없으면 전 세계 보물은 다 차지할 수 있었을 것만 같은 2% 모자란 악역까지. 굳이 <언차티드>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장르 영화의 재료는 충실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를 바탕으로 한 기승전결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서를 얻어 무언가를 찾아내고, 찾아낸 무언가로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는 구조가 반복됩니다. 가벼운 음모와 배신이 양념으로 들어가며 목숨이 오가는 가운데 피어나는 전우애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래도 1억 달러를 넘게 들인 블록버스터다 보니 극장에서 보면 좋은 최후반부 하이라이트도 준비해 두었구요.
단서의 난이도와 영화의 수위 정도가 타겟 연령층을 결정합니다. 주인공이 똑똑하다고 느껴지면 어른용, 열심히 한다고 느껴지면 아동용(!)이겠죠. 발판을 잘못 밟았을 때 튀어나온 화살을 피하면 아동용, 꽂혀서 해골이 되면 어른용이겠습니다. 의외로 영화의 재미를 가르는 것은 연령층보다도 일관성이죠. <도라와 잃어버린 황금의 도시> 아래로 스러져간 블록버스터들이 그를 증명합니다.
애석하게도 <언차티드>도 그 마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조 단위의 보물을 놓고 인류 최후의 재벌이 온갖 사악한 척은 다 하다가 정작 중요한 순간엔 어설프기 짝이 없는 모습이 대표적이죠. 최악의 냉혈한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소꿉놀이나 다름없는 네이선의 임기응변에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애초에 보물을 가질 자격이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단서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놓고 열쇠인 건 끝까지 열쇠라서 성의가 없어 보이고, 열쇠인 줄도 모르고 갖고 다니던 것도 열쇠라서 성의가 없어 보입니다(?). 차라리 주인공만 타고난 아주 특수한 조건이 있거나 보물을 이 날 이 시간에만 찾을 수 있는 시공간의 제약이 있다면 모를까,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이제껏 누구도 이걸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서서히 말이 안 되기 시작하죠.
스타일링도 별 차이가 없는 와중, 실컷 때려 놓고 상대가 아픈 것 같으면 괜찮냐고 물어보는 네이선의 모습에선 피터 파커의 향기가 지나치게 강합니다(심지어 여기서도 "kid"라고 불립니다). 마크 월버그의 설리와 소피아 알리의 클로이는 왜인지 딱 한 자리만 남아 있는 네이선의 옆자리를 두고 경쟁하는데, 한 명이 나오면 다른 한 명이 나오지 않는 1차원적 구성 때문에 누구도 자리의 주인으로 보이지는 않죠.
각본은 평범하거나 안정적이지만, <언차티드>라는 껍데기나 톰 홀랜드라는 주연이 오히려 그를 갉아먹습니다. 둘 다 정반대의 효과를 한껏 기대한 채 큰 맘 먹고 가미한 것들이라 꽤나 서글픈 결과물이죠. 이 영화를 보기로 한 이유가 순전히 원작 시리즈나 배우라면 모를까, 남들과 다르려고 선택한 것들이 남들과 똑같아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