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Mar 30. 2022

<안테벨룸> 리뷰

허공에 분풀이


<안테벨룸>

(Antebellum)

★★


 제이 지의 단편과 칼리드의 뮤직 비디오 등 영상 제작 쪽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듀오, 제라드 부시와 크리스토퍼 렌즈의 할리우드 데뷔작인 <안테벨룸>입니다. 가수 겸 배우 자넬 모네를 주인공으로 지나 말론, 잭 휴스턴, 통가이 키리사, 키어시 클레몬스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본토에서는 지난 2020년 9월 VOD로 공개된 작품이고, 국내엔 오는 23일 극장에서 처음으로 공식 개봉되죠.



 목화 농장의 노예 에덴. 고압과 폭력으로 점철된 일상에서 허락이 없이는 입조차 열 수 없습니다. 함께 농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죽어나가지만, 백인 주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새로운 노예를 데려올 뿐입니다. 이 악몽과도 같은 삶에서 탈출만을 꿈꾸던 어느 날, 자다가 눈을 떠 보니 성공한 작가이자 사랑받는 아내, 그리고 엄마인 베로니카의 삶에 들어와 있음을 발견합니다.


 인권 운동으로 명망을 떨친 작가의 몸과 목화 농장 노예의 몸을 오간다니, 줄거리나 설정만 놓고 보면 <겟 아웃>과 <어스>의 조던 필이 한 발 정도는 걸치고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포스터엔 두 영화의 제작자가 참여했다고 적혀 있지만 조던 필 이야기는 아닙니다). 현재와 과거를 교차시켜 과거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에도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과거의 망령을 고발하기도 딱 좋은 무대죠.



 기본적으로는 미스터리 스릴러를 지향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는 결과는 펼쳐 놓았으니 이제 그것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루어지는지 설명해야 하겠죠. 영화 또한 과거 시점의 주변 인물들이 현재 시점에서 전혀 다른 직업으로 등장하는 등 계속해서 복선 내지는 떡밥을 흘리며 호기심을 주기적으로 자극하구요. 어떻게 보면 B급 영화들의 전형적인 호객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슷한 출발법을 택한 대부분의 B급 영화들은 스스로의 설정에 묶여 무너집니다. 판은 벌려 놓았지만 수습하거나 설명할 도리가 없어 대충 이리저리 썰고 끝냅니다. 다행히도 <안테벨룸>은 그것보단 고상하길 원합니다. 모든 것은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고, 실제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순간에 꽤 공을 들여 뒤통수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얼얼하게 전달하죠.



 하지만 너무나 고상하길 원했습니다. 한 발만 더 나아가도 아슬아슬한 구간에서 전력질주를 합니다.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너무나도 탁월하고 새로운 것이라고 확신한 나머지, 이런 생각을 해 낸 자신들이 의견을 관철할 권리 정도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시하고 알려주는 것을 넘어 가르치고 설교합니다. 처음 그러기 시작할 때부터 강했던 메시지는 최후반부에 접어들면 그야말로 교조적인 수준이죠.


 그쯤 되면 듣는 입장에서는 근본적인 의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이 영화는 무엇이 그렇게 잘나서 자신들이 이렇게까지 강론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되짚어간 영화의 완성도는 처음 보았을 때보다 놀랍거나 탁월하지 않습니다. 반전의 순간적인 충격으로 덮었던 결점들이 드러나고, 그것들은 다시 뒤로 향해 메시지의 정당성을 공격합니다.



 지나치게 노골적인데다가 아둔하기까지 합니다. 예의도 바르고 여리지만 당당한 피해자를 밑도끝도 없이 무례하고 사악한 가해자들이 괴롭히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이렇게 주관적인 묘사는 체제나 구조가 아닌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나 어긋남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기게 되고,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쪽에서도 선악만 뒤집어 똑같은 반박을 할 수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지닙니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는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인종에 성별을 은근히 섞어 지원군을 요청합니다. 듣다 보면 이것이 인종차별을 지적하는 것인지, 성차별을 지적하는 것인지, 혹은 흑인 여성의 차별을 지적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이죠.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상황만 죄다 모아놓고 이것이 너희들이 무시해 온 우리의 여전한 일상이라며 고함을 지릅니다.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문자 그대로 읊어대는 베로니카의 강연 장면이나, 남이 가르치는 것은 참을 수 없지만 내가 가르치는 것은 진리라는 식의 레스토랑 장면만 보아도 애초에 공정할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사건 위주의 기승전결만 따로 떼 놓았다면 그럭저럭 볼만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되었을지 몰라도, 스스로의 목소리에 취해도 너무 취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리코리쉬 피자>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