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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17. 2022

<문 나이트> 리뷰

저울 위에서 오락가락


<문 나이트>

(Moon Knight)

★★☆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관람하려면 <완다비전>의 관람이 필수였죠. 무언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듯한 디즈니 플러스의 새 마블 스튜디오 시리즈, <문 나이트>입니다. 오스카 아이작을 주인공으로 에단 호크, 메이 칼라마위, 가스파르 울리엘 등이 뭉쳤고, 이전 다른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6부작으로 기획되어 지난 5월 4일 첫 번째 시즌을 마무리지었죠.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것 같은 기념품샵 직원 스티븐 그랜트. 어느 날부터인가 기면증처럼 깜빡깜빡하는 증상에 혼란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폭력과 살육을 일삼는 용병 마크 스펙터의 인격이 그의 몸을 차지하려 하죠. 설상가상으로 그 마크 스펙터라는 사람은 이집트의 신을 모시는 고대의 수퍼히어로임이 밝혀지며 스티븐과 마크의 세기를 넘어선 모험이 시작됩니다.


 국적과 인종을 다양화하던 마블 유니버스가 이번엔 이집트로 나아갔습니다. '문 나이트'라는 이름, 미라가 떠오르는 수트 디자인만 보아도 지향점을 아주 확실히 하죠. 게다가 일반적으로는 해리성 정체성 장애로 분류될 주인공의 증상이 수퍼히어로로 활약하는 힘의 원천이라니, 이전의 영웅들과는 분명히 다른 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막 시작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꽤 급작스러운 출발입니다. 방금 만난 주인공 정신이 깜빡깜빡하는데, 환각인지 실제인지 알 길 없는 형체가 아른거립니다. 이 괴물들이 지금 주인공에게만 보이는 건지, 시청자에게만 보이는 건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이 그래서 인격이 두 개라는 건지, 누구에게 조종을 당하고 있다는 건지, 혹은 혼자 죄다 상상을 하는 건지도 궁금할 따름입니다.


 악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리를 깨서 신발에 넣고 다니는 사람이 나오더니 무엇을 찾으러 다닌다고 합니다. 그걸로 무얼 하는지 대강 설명은 해 주지만, 원체 고유명사가 많아 그래서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건지도 알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주인공 쪽이 오락가락하는지라 주인공과 대립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인 건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문 나이트>의 매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여느 영웅물처럼 선과 악이나 옳고 그름처럼 방향이 정해진 두 가치의 대립이 아니라, 동등한 자격으로 무게추의 반대 자리에 서게 된 둘의 공존을 다룹니다. 자신의 자리에서는 반대편에 선 사람이 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적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도 똑같은 이야기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주목하죠.


 각본의 종잡을 수 없음은 여기서 기인합니다. 스티븐 그랜트와 마크 스펙터는 하나의 몸을 차지한 서로 다른 인격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둘의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서로 자신이 소위 말하는 '본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죠. 문 나이트와 해로우, 콘슈와 아미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다고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서로의 옳음을 주장하며 대립합니다.



 스티븐은 온순한 성격 탓에 많은 문제들을 말로 해결하고, 혹은 아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해결해 왔습니다. 반면 다혈질의 마크는 장애물로 놓이는 무엇이든 때려 부수며 모든 것에 정면으로 돌진했죠. 상황에 따라 스티븐의 방식이 옳을 때도, 마크의 방식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난관에 하나의 접근 방식만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게으른 생각이기도 하죠.


 이집트 신인 콘슈와 아미트는 스스로의 전지전능함을 추종자들을 통해 자신의 정의관을 공고히 하는 데 사용합니다. 콘슈는 현재를 기준으로 죄 지은 자들을 벌하고, 아미트는 앞으로 지을 죄까지 내다본 뒤 현재를 벌하죠. 일반적으로 후자보다는 전자의 방식에 동의하겠지만, 무고한 피해자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논리로 아미트의 정의관 또한 꽤나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런데 스티븐과 마크 쪽이야 대립하다가 하나로 합쳐지는 전형적인 성장 스토리가 먹힌다고 치지만, 콘슈와 아미트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는 고를 수 없습니다. 여기가 바로 <문 나이트>가 스스로의 한계를 드러내는 지점입니다. 흥미로워 보이는 판을 깔고 얼추 그럴듯한 손놀림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데엔 성공하지만, 보다 보면 무언가 속고 있다는 의문이 피어오르죠.


 답이 없는 문제라서 의미가 있고, 또 스스로도 그런 질문이라서 재미있지 않냐며 들고 온 것들을 결과적으로 규정합니다. 그 과정은 당연히 주인공 세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에 과정에서도 신선함을 찾기는 어렵죠. 스티븐과 마크의 이야기에서는 캐릭터보다도 그 둘을 동시에 연기하는 오스카 아이작의 존재감이 더 큰데, 그것도 마냥 치켜세우기엔 단점과 꽉 맞물린 장점이죠.



 그 대립각에만 집중해야 했고, 또 집중하는 것이 맞는 각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꽤나 무관한 인물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비중을 가져가는데, 마크의 연인인 레일라가 대표적이죠. 캐릭터도 배우도 무색무취한 마당에 메인 악역인 해로우마저도 슬슬 빠져야 할 클라이막스에 오히려 등장을 늘리며 수퍼히어로 권선징악물의 전형성을 더할 뿐입니다. 매 순간이 시리즈엔 악수죠.


 이처럼 화면보다는 텍스트를 본래 목적으로 삼고 있기에 액션이나 영웅놀음도 애매합니다. 얼추, 대충 정의로운 신들이 인간의 몸을 빌려 세력다툼을 하는데, 이집트 신들이라 고대부터 이어진 볼거리라며 시선을 붙잡는 꼴이죠. 옳은 목적에 올바른 힘이 깃들어야 한다거나, 커다란 힘이 잘못된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때의 위험을 경고한다거나 하는 분명한 방향성도 없이 동네를 꽤 흐리멍텅하게 돌아다닙니다.



 타웨레트와의 사막 씬 등 순전히 자본력을 뽐내려 넣은 듯한 장면들도 지나치게 많고, 마치 이번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일부러 끌어올린 폭력 수위에도 고개가 갸우뚱합니다. 출발은 좋았으나 조금씩 익숙해졌고, 기어이 최후반부에서는 자신이 마블 스튜디오 작품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듯 직전까지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곳에 불시착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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