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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22. 2022

<민스미트 작전> 리뷰

사실과 사심이 뒤엉켜


<민스미트 작전>

(Operation Mincemeat)

★★★


 2016년 <미스 슬로운> 이후 간만에 돌아온 존 매든 감독의 <민스미트 작전>입니다. 콜린 퍼스, 매튜 맥퍼딘, 켈리 맥도날드, 페넬로피 윌튼, 자니 플린, 제이슨 아이삭스, 사이먼 러셀 빌 등이 뭉쳤죠. 워너브라더스와 넷플릭스가 손잡은 작품이지만, 국내엔 넷플릭스가 서비스중임에도 지난 5월 11일 정식 극장 개봉되었네요. 강력한 영화들이 포진해 있는 지금 시기엔 더욱 의외의 선택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연합군과 추축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교두보 시칠리아를 두고 팽팽한 대립을 펼칩니다. 하지만 추축군 독일의 위세가 상당해 시칠리아에는 이미 23만 병력이 주둔해 있던 상황이었죠.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연합군은 해군 정보장교 이웬 몬태규와 찰스 첨리를 주축으로 전쟁의 승기를 잡을 단 한 번의 '민스미트 작전'을 계획합니다.


 민트 어쩌고 하는 느낌 덕분에 상큼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아님 말고요), <민스미트 작전>은 이제는 하나의 세부 장르가 된 것 같은 정적인 전쟁 영화입니다. 보통 전쟁을 소재로 한다고 하면 액션은 기본에 박진감 넘치는 전장이나 살육이 범람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수천 수만의 생명을 남몰래 구했음에도 역사가 아직까지는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이나 작전을 다루는 것도 하나의 공식적인 접근법이 되었죠.



 이는 지금껏 당연히 전쟁을 카메라와 각본의 한가운데에 두었던 기존의 전쟁 영화들에서 초점을 달리하는 방법입니다. 전쟁과 전장은 무대가 될 뿐, 중요한 것은 사람이나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하죠. 소재가 워낙 호불호를 크게 타다 보니 그 자체로 진입 장벽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본능적인 경계를 타파하는 자구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민스미트 작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옮기자면 '다진 고기 작전'이 되는 극중의 주 소재는 쉽게 말해 미끼 작전입니다. 독일군을 다른 곳으로 유인할 방법을 고심하던 중 나온 작전으로, 전혀 무관한 시체를 군사 기밀이 들어있는 편지를 지니고 있다가 사망한 군인으로 위장시켜 적진에 흘리는 내용이었죠. 그를 발견한 독일군이 정말 운좋게 첩보를 얻었다고 좋아하며 자신들의 함정에 빠지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두 문장이면 정리가 끝날 내용을 <민스미트 작전>은 127분으로 늘렸습니다. 누구의 입에서 나와 어떤 기승전결을 통해 작전이 이루어졌는지, 기승전결 각 단계의 기승전결까지 파고들어 전달하죠. 한가닥씩 하는 수재들이 팀을 꾸리는 것은 맞지만, 여느 오락 영화들처럼 서로의 탁월함을 겨루며 리듬감 있는 진행을 보여주는 영화는 아닙니다. 거기서만큼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죠.


 의외로 작전명을 제목으로 삼은 영화치고는 정작 작전 내용의 비중이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습니다. 가운데에 있는 것은 맞지만, 주가 되는 사건이라기보단 큰 틀이라고 봐야 맞겠죠. 영화가 정말 다루고자 하는 것은 그 작전의 각 단계에서 보이는 우리 주인공들의 모습입니다. 콜린 퍼스의 이웬 몬태규와 매튜 맥퍼딘의 찰스 첨리, 넓게는 켈리 맥도날드의 진 레슬리까지죠.



 우리의 주인공들은 서로와 옅지만 강한 끈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전쟁 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계급 혹은 위계와는 무관한, 사람 대 사람의 관계죠. 동료, 경쟁자, 연인 등 미묘하면서도 복잡한 감정들이 스크린이라는 수면 위에 스스로의 모습을 아주 이따금씩 비춥니다. 영화는 민스미트 작전 자체의 긴장과 그 알 듯 말 듯한 감정의 긴장을 교차하려 하구요.


 시도는 흥미로우나 효과는 아리송합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 작전과 사랑은 서로 결이 전혀 다르죠. 하나를 보여주기로 한 마당이라면 다른 하나를 굳이 보여주었어야 하나 싶은 순간이 꽤 많습니다. 확실히 작전 쪽이야 세기의 실화라는 수식이 아주 과장은 아니지만, 거기서 꽃피는 감정은 오히려 영화가 굳이 선택한 소재의 신선함을 정면으로 깎는 편입니다.



 문자만 놓고 보면 관객 스스로 능동적인 의미 부여를 해볼 수도 있겠으나, 정작 영화는 뚜렷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줄기가 크게 전쟁과 사랑이라고 한다면 전쟁을 택할 시 페넬로피 윌튼의 헤스터가, 사랑을 택할 시 제이슨 아이삭스의 존이 전혀 필요없어지죠. 초월적 존재마냥 뜬금없이 각본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이안 플레밍 캐릭터는 이 느슨한 연결을 가리는 눈속임이구요.


 찰스와 이웬 모두 주인공 위치에 있으나 둘 다 애매합니다. 얕게 비유하자면 <위대한 개츠비>의 캐러웨이와 개츠비처럼 관찰자와 관찰 대상처럼 보이는데, 거기서와는 달리 <민스미트 작전>은 인물과 사건, 관찰자의 눈과 전지적 눈처럼 공존할 수 없는 둘을 끝까지 모두 욕심내죠. 결국 누구도 진정한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작전이 잘 수행될 때 나오는 박수에 그 어색함을 함께 씻어내립니다.



 물론 세기의 작전을 소재로 한 만큼 기본적인 흥미는 확보됩니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하나의 작전에 수많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노고가 담기고, 성공은 그에 이르는 과정의 모든 단계를 역사로 탈바꿈시키죠. 그러나 이는 영화가 이 작전을 끝내주게 잘 연출해서가 아니라, 작전의 얼개 자체가 보장하는 흡인력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걸 골라서 세상에 드러낸 것도 분명히 능력이라면 능력이긴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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