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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May 31. 2022

<애프터 양> 리뷰

순간을 쪼개 만든 영원


<애프터 양>

(After Yang)

★★★☆


 단편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에서 2017년 존 조 주연의 <콜롬버스>로 장편 데뷔한 코고나다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애프터 양>입니다. 매번 10분도 되지 않는 영상들만 제작하다가 꽤 드물게 내놓은 장편인데, 동시기에 애플TV 작품치고는 상당한 화제를 모은 <파친코>의 일부 에피소드를 제작하기도 했네요. 콜린 파렐, 조디 터너 스미스, 저스틴 H. 민, 헤일리 루 리차드슨 등과 함께했습니다.



 단란한 4인 가족 제이크, 키라, 미카, 그리고 양. 양은 입양된 미카의 적응을 돕기 위해 구입한 안드로이드였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성품으로 어엿한 가족 구성원 역할을 해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원인 모를 오류로 양이 작동을 멈추고, 제이크는 가족들을 위해 양을 수리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던 중 양의 몸 속에 존재조차 몰랐던 메모리 뱅크가 있었음이 밝혀지며 제이크는 그를 찬찬히 들여다보기 시작하죠.


 화면 구성부터 특이합니다. 화면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고, 인물을 아주 가까이에서 바라보거나 배경선이 완전히 평행이 되도록 정면에서 바라봅니다. 색감은 몽환적이라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영화를 찍던 감독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금방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안드로이드를 등장시켜 인간 실존을 이야기한다니, 꽤 잘 맞는 소재를 골랐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가족처럼 여기던 안드로이드가 작동을 멈추고, 그의 가족이자 구매자인 제이크가 양을 위해 나섭니다. 그의 부인인 미카는 양을 한낱 안드로이드로만 생각하는 반면, 그의 딸인 미카는 이제 없이 살 수 없는 오빠로 여깁니다. 제이크는 극과 극인 둘의 딱 중간쯤에 위치합니다. 지금껏 내 가족에게, 나에게 양은 어떤 존재였는지, 나아가 양 그 자체는 무엇인지, 누구인지 끝없는 꼬리의 질문을 맞이하죠.


 비슷한 소재로 하나의 세계관을 창조한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려 보면 <애프터 양>은 더없이 소소한 편입니다. 최소한 외양으로는 인간과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안드로이드가 있다면,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분하는 그 미묘한 선이 무엇일지 탐구해 보아야겠지요. 어쩌면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이 되고 싶어할 거라는 생각조차도 더없이 오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발견하게 되겠구요.



 <애프터 양>은 본인이 던진 그 질문을 관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곱씹게 만듭니다.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구분될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대담하게도 먼저 기회를 줍니다. 등장 시점부터 안드로이드임이 공표된 인물들도 있지만, 꽤나 의도적으로 구분하기 어렵게 묘사되는 인물들도 있죠. 약간의 힌트는 있지만, 그것이 힌트라는 것조차 밝혀지지 않기에 망상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그렇게 의심하던 사람들도 어쩌면 정말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우기지 않고 구분하는 것이 어렵겠다고 느낄 때쯤, 영화는 기억을 내밉니다. 양과 대화하는 인물들은 이따금씩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의도적으로 강조하려고 반복하거나 기계적 오류가 난 것처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말을 전혀 다른 말투로 반복하죠. 마치 같은 순간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억될 수 있을 보여주듯 말입니다.



 이것이 <애프터 양>이 기억의 가치를 전하는 방법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안드로이드를 안드로이드답게 만드는 것을 따지는 것 자체가 잘못된 출발선입니다. 모두 존재가 존재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입니다. 서로는 서로의 기억이 되고, 수많은 인종이 얽힌 인류처럼 도무지 섞일 수 없으리라 여겼던 것들이 얽혀 사회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얼핏 이해하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지나고 보면 영화는 메모리 뱅크라는 직설적인 단서를 이미 주고 시작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양을 되살릴 열쇠였고, 동시에 영화를 이해할 열쇠였습니다.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새로운 기억이 되듯, 세상에 드리운 가지들은 서로와 엮여 또 다른 가지가 됩니다. 시간 앞에 삶과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가지가 있었다는 기억마저도 새로운 가지가 됩니다.



 메시지가 워낙 단순하고 강렬해 사실 영화보다는 단편이 어울릴 법한 각본입니다. 충분히 흥미로운 묘사지만, 어찌됐건 안드로이드 비스무리한 것들을 소재로 그 이상의 장르적 재미까지 녹여낸 상위 호환들이 너무나 많기도 하죠. 살짝 과장을 보태면 <블레이드 러너>에서 룻거 하우어의 로이 베티가 남긴 마지막 대사를 곱씹는 순간만으로 <애프터 양>의 의의를 포괄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he Tann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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