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킴지 Aug 28. 2022

<불릿 트레인> 리뷰

난사해서 맞힌다 한들


<불릿 트레인>

(Bullet Train)

★★☆


 스턴트 배우에서 액션 영화 감독으로 나선 데이빗 리치의 신작, <불릿 트레인>입니다. <아토믹 블론드>로 데뷔하고 <데드풀 2>에 이어 내놓은 작품이니 방향성 하나만큼은 뚜렷하다고 할 수 있겠죠. 제작비는 9천만 달러 정도로 아주 높지는 않지만, 브래드 피트를 주인공으로 아론 테일러 존슨, 조이 킹,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앤드류 코지, 사나다 히로유키, 로건 레먼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평생 불운의 아이콘이나 마찬가지였던 자신의 삶을 한탄하는 유명 킬러 레이디버그. 복통으로 빠진 동료 대신 투입된 이번 임무는 일본의 고속 열차에 탑승해 가방 하나를 가져오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역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잔악무도하기로는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킬러들이 같은 열차에 타고 있었음이 밝혀지고, 우리의 주인공 레이디버그는 오늘도 투덜대며 무사히 내리기만을 기도합니다.


 주연 브래드 피트와 아론 테일러 존슨은 내한을 확정지었고, 개봉 전 주 주말 이틀 동안은 유료 시사회까지 잡혔습니다. 영화는 잘 나왔으니 개봉 전에 입소문을 어떻게든 끌어올리려는 전략이죠. 특히 브래드 피트의 과거 내한작들을 살펴보면 <머니볼>, <월드 워 Z>, <퓨리> 등 평균 이상의 재미를 보장했던 영화들이라 이번 <불릿 트레인>에도 비슷한 기대를 갖기는 충분합니다.



 영화는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꽤나 순수한 액션 영화입니다. 제목 그대로 일본의 고속 열차를 무대 삼아 끝없이 질주하죠.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주조연들은 열차 안에서 죽고 죽이는 싸움을 이어가는 와중,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렇게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한 날 한 시에 모이게 되었는지 조금씩 밝혀지는 구성입니다. 그 중심엔 이 모든 것과 가장 상관없는 우리의 주인공 레이디버그가 있구요.


 정말 많은 면에서 감독의 전작 <데드풀 2>와 유사한 영화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맡은 레이디버그는 입담 면에서나 몸놀림 면에서나 가면을 벗고 조금 더 사회화된 데드풀에 가깝죠. 어떤 상처를 입어도 금방 재생되는 불사신쯤 되어야 가질 수 있는 여유로 무장해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은 채 최근 인생 공부를 하고 있다며 어디서 주워들은 명언을 한두 개씩 꺼내드는 모습은 영락없는 그 영웅입니다.



 사실 캐릭터 개성으로 따지면 레이디버그보다는 아론 테일러 존슨의 탠저린과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의 레몬이 훨씬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극중 등장하는 여러 조연급 킬러들 가운데 가장 비중도 크죠. 어쩌면 주인공인 레이디버그보다도 많은 것을 들려줍니다. 둘이 우리가 몇 명을 죽였냐며 카메라를 쳐다보며 투닥대는 초반부 장면은 앞으로 펼쳐질 영화의 분위기와 지향점을 한 번에 요약하죠.


 레몬과 탠저린은 한 청년과 가방을 교토 역까지 모셔가야 하고, 레이디버그는 그 가방을 중간에 가로채야 합니다. 동행하는 그 청년은 이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조직 보스의 아들이죠. 여기에 정체불명의 소녀 프린스가 야쿠자 집안의 손자를 건드려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까지 나선 와중, 동물원에서 탈출한 독사까지 실려 기차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그야말로 골때리는 대환장 파티입니다. 한 곳에 있을 수도 없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벌어지는 유혈의 현장이죠. 모두가 무언가를 죽이거나 죽이려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데, 막상 그렇게 피를 보면서도 도대체 정확히 어떤 이유로 자신이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일단 칼을 든 사람이 앞에서 뛰어오고 있으니 제압부터 하는 것이 우선이겠지요.


 정리되는 듯 정리되지 않는 중구난방의 각본을 한 데 묶는 유일한 구심점은 액션입니다. 사실 <아토믹 블론드>의 맨몸 액션은 샤를리즈 테론의 노력과는 별개로 손에 꼽을 수준은 되지 못했고, <데드풀 2>의 액션은 애초에 초능력을 기반으로 했던지라 스케일이 훨씬 컸죠. <불릿 트레인>은 그 둘을 한데 섞은 느낌인데, 초능력쯤 있어야 칠 수 있는 뻥을 B급의 병맛으로 채웠습니다.


 채우긴 채웠는데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B급과 액션이 흔치 않은 조합도 아니지만, 보통 이런 경우 정말 단순한 각본을 토대로 90분 내외로 깔끔하게 끊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불릿 트레인>은 수많은 인물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한데 엮은 126분짜리 영화입니다. 그것도 딱히 유기적이라기보다는 열차 칸을 이어붙이듯 킬러 한 명씩 더 넣으면 무한히 길어질 수 있을 것처럼 보이구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비 꼬아놓지는 않았으나, 어느 정도 돌아 돌아 가는 것은 사실인지라 더 짧고 간단한 길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물론 들려주어야 하는 이야기를 제 때 들려주지 않은 이유 또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무언가가 툭 튀어나오는, 골때리는 전개의 일환이기는 하지요. 그 갖은 노력의 평가는 완성된 그림의 만족도에 달려 있는데, <불릿 트레인>은 거기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굵직한 인물들 중 최소한 한 명은 덜어냈어야 하는데, 여러모로 조이 킹의 프린스 쪽이 매력도가 떨어집니다. 애초에 일본의 고속 열차, 야쿠자 등을 소재로 삼은데다 오프닝 크레딧이나 극중 캡션 또한 영어와 일본어를 병기하는 등 일본색이 짙은 영화인데, 프린스는 캐릭터 자체가 그 영향의 연장선으로 보이죠. 여기에 엮인 야쿠자 집안 이야기는 레몬과 탠저린 쪽 이야기와는 분위기도 꽤 달라 영 이질적입니다.



 누구는 평생 불운했다며 투덜거리고 누구는 평생 운이 좋았다며 흡족해하는 모습도 <데드풀 2>에서 행운이 초능력이라던 도미노 생각이 왕왕 나는데, 후반부엔 이걸 영화의 전면으로 당겨서 주제의식으로 반영합니다. 인생이란 무릇 사필귀정이자 새옹지마라며, 길흉화복은 상대적인지라 손바닥을 뒤집으면 삶과 죽음도 바뀔 수 있다고 이야기하죠. 그렇다고 영화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아주 진지하지는 않습니다.


 제작비 최소 절반은 토마스 기차 쪽에서 내지 않았을까 싶은 개그는 높지도 않았던 타율이 점점 무리수를 향해 달려가고, 데드풀이어서 웃겼던 데드풀식 입담을 아무 정보도 능력도 없는 아저씨가 하고 있으니 패러디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많아집니다. 한없이 가벼운 와중 한없이 진지하고, 한없이 잔인한 와중 한없이 1차원적인 등 쉽게 섞이지 않는 것들을 그저 병치하며 시너지를 내길 기대하죠.



 분위기 하나만큼은 뚜렷해 누군가의 취향을 맞춤 저격하기는 좋지만, 상업적인 피칠갑 액션 영화임에도 마냥 대중적이지는 못합니다. 뭐 하나 생각대로 흘러가는 것이 없어 고생 고생 생고생을 하다가 막판에 빛을 보는 구성이라고 하면 가이 리치 감독의 초기 조폭물을 떠올리기 쉬운데, 때깔이나 스케일은 훨씬 대단함에도 역시 그런 영화에선 딱딱 들어맞는 각본의 아귀가 우선임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슈퍼 펌프드: 우버 전쟁>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