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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28. 2022

<오펀: 퍼스트 킬> 리뷰

흑화한 역사


<오펀: 퍼스트 킬>

(Orphan: First Kill)

★★


 2009년 <오펀: 천사의 비밀>은 2000년대 후반에 나온 영화치고 클래식 호러 대접을 받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12살의 나이에 무시무시한 연기를 펼쳤던 이사벨 퍼만을 발굴했죠. 이래저래 영화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알기는 아는 영화지만, 의외로 개봉 당시엔 평가 면에서나 흥행 면에서나 아주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습니다. 13년의 세월을 넘어 프리퀄이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죠.



 모든 일이 있기 몇 년 전, 사린 정신병원에서 지내고 있던 에스더는 호시탐탐 노리던 바깥 세상으로 향합니다. 지낼 곳을 찾던 중 실종 아동 목록에서 자신과 똑 닮은 아이를 발견하고, 운 좋게도 미국의 부유한 집안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되죠. 그러나 제아무리 오랜 시간 실종되었다 한들 가족들이 에스더의 무언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호러나 스릴러 장르의 영화들은 제작 규모가 원체 작아 아주 큰 흥행이 아니더라도 들인 돈의 몇 배를 회수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습니다. 2천만 달러를 들여 8천만 달러를 벌었던 전편도 마찬가지였죠. 기승전결이 완전히 닫혀 끝이 난 각본이었음에도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야 했고, 뒤로 갈 수 없다면 앞으로 가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렇게 제목부터 프리퀄 향기 가득 나는 <퍼스트 킬>이 출범한 것이죠.



 감독은 자움 콜렛 세라에서 <더 보이> 시리즈의 윌리엄 브렌트 벨로 바뀌었고, 조연들도 베라 파미가와 피터 사스가드에서 줄리아 스타일스와 로시프 서덜랜드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의 주인공인 에스더 역의 이사벨 퍼만은 그대로 돌아왔죠. 12세에서 160cm가 넘는 25세로 자라났지만, <오펀>이 시리즈가 된다면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였기에 컴퓨터 그래픽과 분장의 힘을 끌어왔습니다.


 그렇게 <퍼스트 킬>은 전편 <천사의 비밀>에서 대강 설명되었던 에스더의 과거 행적을 따라갑니다. 케이트와 존이 있기 전 트리샤와 앨런이 있었습니다. 프리퀄의 숙명이라면 분명 이전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전편보다 진화된 볼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역설 아닌 역설이 있는데, 이번 <퍼스트 킬> 또한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몇 가지 비정상적인(!) 설정들로 흥미를 더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부족해도 한참 부족합니다. 전편이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회자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선사했던 결말, 그리고 12세에 불과한 나이에도 에스더라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연기한 이사벨 퍼만이었죠. 둘은 서로와 뗄 수 없는 시너지를 내며 <오펀>만의 개성을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퍼스트 킬>엔 둘 다 없습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갖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전편의 반전은 이번 편을 시작하는 전제가 되어 있고, 이사벨 퍼만은 20대의 어엿한 배우가 되었죠. <오펀>의 재료를 그대로 가져오긴 했으나, 전편의 명성을 가져왔던 가장 핵심적인 이유들을 더 이상 쓸 수가 없게 되었으니 다른 활로를 찾아야 했습니다.



 이번 영화 역시 준비해 둔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에스더의 사이코패스적인 행보는 이미 지난 영화에서도 꽤 높은 수위로 구경을 시켜준 바, 최소한 그와 다른 것을 하나 정도는 보여주어야 했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새로 등장한 캐릭터들인데, 개중에서는 줄리아 스타일스의 트리샤가 그나마 가장 큰 비중을 소화합니다. 물론 주인공은 에스더인지라 그마저도 주연급 조연의 축에도 끼지 못하구요.


 설상가상으로 프리퀄이라는 틀 자체가 줄거리의 태생적인 한계가 됩니다. 달리 말해 여기서 어떤 전개를 펼쳐도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보통의 프리퀄은 특정한 캐릭터의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존재하지만, <퍼스트 킬>은 이미 대강은 알고 있고 자세히 듣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이야기를 늘려 들려줄 뿐이죠.


 관객의 상상에 자유로이 맡기는 쪽이 훨씬 나았던 이야기를 굳이 들려주어 잠재력을 소모합니다. 에스더라는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에스더 스스로가 대단한 계략이나 신체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에스더의 주변인들이 방심을 하거나 허점을 보이는 등의 구성인지라 범용성 내지는 유통기한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죠. 그저 시리즈화에만 불을 켠 결과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새로운 캐릭터들에 나름대로 이전과는 다른 개성을 부여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전편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었던 구멍을 그대로 재현합니다. 정신만 똑바로 차리고 경찰에만 제 때 신고했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들을 사서 당하고 있는 그림의 반복이죠. 클래식 호러 시리즈들의 유명 악당 명단도 사골까지 우려낸다고 항상 지적받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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