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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지 Aug 28. 2022

<럭> 리뷰

불운과 불행을 헷갈렸는지


<럭>

(Luck)

★★☆


 안무가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거듭난 페기 홈즈의 신작, <럭>입니다. 존 라세터를 영입한 스카이댄스 애니메이션과 애플TV가 손을 잡아 지난 8월 5일 정식 공개되었죠. 스트리밍 공개된 작품이지만,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는 극장 상영회를 열기도 했구요. 에바 노블자다, 사이먼 페그, 제인 폰다, 우피 골드버그, 콜린 오도너휴, 존 라첸버거 등이 목소리 연기를 펼쳤습니다.



 일평생 불운이란 불운은 죄다 몰고 다니던 소녀 샘 그린필드. 고아원의 아끼는 동생 헤이즐이 입양되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만을 바라던 와중, 우연히 얻은 행운의 동전을 큰 맘 먹고 그녀에게 선물하고자 합니다. 그마저도 잃어버려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던 찰나, 동전의 주인이었던 고양이 밥을 따라 들어간 곳은 상상 속에서나 볼 법한 레프러칸과 클로버의 행운 공장이었죠.


 불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운은 그보다 훨씬 큰 노력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그 진정한 영향력을 자신할 수 없기에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세상일의 성패는 운에 달려 있다는 운칠기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뭐가 어찌됐든 있으면 좋고 많으면 더 좋은 것이 바로 운이죠. <럭>의 제목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샘은 불운함의 결정체입니다. 손대는 것마다 망치고 무너지고 부서집니다. 잼을 바른 식빵을 떨어뜨리면 잼을 바른 쪽으로 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식빵이 벽을 타고 흘러내리며 잼 범벅을 하는 수준이죠. 그럼에도 그녀는 굴하지 않습니다. 매사 망가진다며 실망하는 대신 새로운 일을 찾을 긍정 에너지로 가득하고,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죠.


 그런 그녀가 맞닥뜨린 곳은 다름아닌 행운 공장입니다. 레프러칸, 유니콘, 용이 모여 살며 인간 세상으로 적절한 행운과 불운을 만들어 보내는 곳이죠. 공장은 행운과 불운의 두 구역으로 나뉩니다. 행운으로 가득한 쪽은 그야말로 두려울 것 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반명, 불운으로 가득한 쪽은 멸시를 받으며 절대로 찾아서도 언급해서도 안 될 공간쯤으로 묘사되죠.



 꽤나 픽사스러운 접근입니다. 삶의 일부인지라 모두가 주목하지 않았던 무언가와 특정한 문화 내지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섞으려 합니다. 특히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의 균형을 다루면서, 마냥 좋은 것으로 가득하기만 한 세상은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좋지 않다는 교훈을 주려 합니다. 내리막길이 있어야 오르막길이 가치가 있다는 식의 접근이죠. <인사이드 아웃>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럭>은 그를 딱히 매끄럽게 다루지 못합니다. 행운 공장의 설정부터가 그렇죠. 행운 지역의 거주민들이야 손대는 것마다 마법처럼 잘 풀려가니 당연히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행복하겠지만, 불운 지역의 거주민들은 도대체 되는 일이라고는 없음에도 한 톨의 행운에 감사하며 별다를 것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반면 행운 지역에서는 한 톨의 불운만 감지되어도 온 난리를 피우며 왕국을 뒤엎죠.



 교훈을 그저 텍스트 그대로 받아들여 적용시키려는 예시 그 자체입니다. 기승전결 혹은 개성에 녹여내는 방식은 전혀 고민하지 않았죠. 무엇이든 균형이 중요할 테니 주인공은 그걸 누구보다 먼저 깊이 깨달은 도사면 될 테고, 그런 주인공의 감동적인 연설 한 번이면 나머지 모든 캐릭터들이 감화의 눈물을 줄줄 흘리며 다들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론을 내면 그만입니다.


 때문에 막상 번드르르하게 만들어 놓은 이 행운 공장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나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외양에서 나오는 매력 정도를 빼면 볼 것이 없습니다. 각자의 생각이나 의견 따위는 없이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모든 것이 너무 감사하고 긍정적이죠. 일이 틀어져도, 목표가 박살나도, 연인을 만나지 못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다가 주인공이 해결해 주면 그제서야 고맙긴 고맙다고 하는 식입니다.



 이 거대한 공간 설정의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 샘의 존재가 일시적인 방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같은 주제의식을 다루었던 <인사이드 아웃>만 해도 기쁨이를 비롯한 주인공 일행의 활약으로 감정 구슬의 형태 자체가 바뀌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죠. 그러나 <럭>은 영화 후반부 용의 말마따나 샘이 오기 전만 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멀쩡하게 돌아갔던 곳을 원래 그대로 돌려놓는 작업에 불과합니다.


 샘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나기 전부터 자신의 삶에 가득한 불운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긍정 에너지를 내뿜는 사람이었고, 모험 후에도 여기엔 큰 변화가 없습니다. 고양이 밥과 친구들은 그 마음가짐을 본받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과 다른 무언가를 하게 되지는 않죠. 결국 샘은 사적인 욕심으로 전 인류의 행운을 없애 버릴 뻔하며(!) 민폐 캐릭터를 기적적으로 벗어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애니메이션들을 겉핥아 재현하고 있을 뿐, 줄거리와 캐릭터가 상호 조응하며 시너지를 내는 벽돌 단계의 노력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렇다고 <미니언즈>를 내놓은 일루미네이션처럼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아도 좋으니 캐릭터의 외양과 매력을 최전선에 내세울 용기도 없구요. 차라리 인간이 아닌 고양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의도치 않게 더 말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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